'터키는 위험하지 않아?'
최근 들어 해외 여행을 곧잘 다니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으레 묻곤 했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야?" "응? 이번엔 터키, 이스탄불에 다녀오려고." 그렇게 대답하면 반드시 같은 질문이 되돌아 왔다. "터키는 위험하지 않아?"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스탄불은 '황색 경보(여행 자제)'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지난 8월 22일을 기점으로 이스탄불을 제외한 터키의 전 지역이 황색 경보에서 남색 경보(여행 유의)로 하향 조정됐지만, 여전히 이스탄불은 황색 경보 지역으로 남아 있다.
터키가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은 지리적 요소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터키는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이슬람 국가, Islamic State)의 본거지였던(과거형으로 표현한 까닭은 지난 8일 BBS방송은 IS가 시리아의 거점을 모두 잃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게다. 지난 2016년 6월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테러가 발생해 무려 45명이 사망했던 사건에 대한 기억과 같은 해 7월 발생했던 쿠데타 미수 사건도 큰 몫을 할 테니 말이다.
터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
아타튀르크 공항의 보안 검색대. 공항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든 짐을 검사 받아야 한다.
그래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는 대답할 수 없지만,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불안하거나 공포가 잠재돼 있진 않다고 말할 순 있다. '테러'로 치자면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 등에서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므로 안전 지역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대한민국에 머무는 게 최선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위험은 사실상 제로로 수렴한다. 그런데 세계인들은 북핵의 위협을 상시로 받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가장 걱정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확률을 따져보더라도 여행지에서 테러로 인해 죽게 될 확률은 교통사고로 인해 죽을 확률보다 훨씬 미미하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4,292명이라고 하니,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위험이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애초에 여행에는 '위험'이 내포돼 있다. 달리 말하면 여행은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무언가를 얻는 도전 행위다. 물론 가능하면 그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계획을 짜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리 겁을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
9월의 터키(뒤늦은 여행기다)는 엄청나게 뜨거웠다. 수직으로 내려꽂히는 뜨거운 햇볕이 그 주범이긴 했지만,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수많은 여행객들이 내뿜는 열기도 제대로 한몫했다. 주요 관광지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고, 트램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이스탄불은 '터키는 위험하지 않아?'라는 두려움의 만류를 과감히 떨쳐버린 사람들이 발산하는 호기심과 에너지로 가득했고, 그 속에서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또 하나의 작은 깨달음이었다.
갈라타 탑
'위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그 화두를 좀더 이어나가보자. 실제로 이스탄불이 위험한 까닭은 다른 데 있었다. 첫날 공항에서 블루 모스크(Blue Mosque) 근처의 숙소로 이동한 후 간단히 짐을 풀어놓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금세 저녁이 돼 주변은 어두워졌다. 비행기가 1시간 이상 연착된 탓에 생각했던 일정보다 늦어졌다. 예정대로라면 16시 10분에 도착했어야 했지만, '공항 사정'이라는 이유로 1시간 이상 지체됐다. 좀더 느긋하게 첫날을 보내려던 계획이 뒤틀어졌다.
곧바로 숙소 밖으로 나간 까닭은 오로지 하나였다. 야경! 여행 첫날의 기대감과 흥분감을 가장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은 바로 그 도시의 최고의 뷰포인트(viewpoint)를 찾는 것이다. 도쿄에 도쿄타워가 있고, 파리에 에펠탑이 있다면, 이스탄불엔 갈라타 탑(Galata Tower)이 있다. 갈라타 탑은 비록 높이가 67m밖에 되지 않지만, 신시가지의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 제법 괜찮은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트램(T1)을 타고 카라쾨이(Karaköy) 역에서 내리고 길을 건넜다.
여기에서부터 '위험'이 시작된다. '밤'의 이스탄불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어두침침하다는 표현이 좀더 정확할 것 같다. 스산한 느낌마저 감돈다. 갈라타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술에 취한 노숙자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펴고 있었는데, 그 중 몇몇은 갑자기 다가와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랍인 남성 2명이 다가왔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더니 사진을 찍어달라는 게 아닌가. 어려운 일도 아닐 뿐더러 여행 첫날의 긍정적인 기분이 가득해 기꺼이 응해줬다.
사진을 찍어준 후 가던 길을 가려는데 따라붙으며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반갑다. 어디에서 왔냐?", "갈라타 탑으로 가는 거냐? 우리도 갈라타 탑에 올라가는 중이다.", "나는 OOO이고, 얘는 XXX이다. 너의 이름은 뭐냐?", "XXX은 두바이에서 놀러 왔다.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3일을 머물 예정이다. 넌 언제 여기 왔냐?", "혼자 왔냐, 그렇다면 같이 움직이자.",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다.", "갈라타 탑에 갔다가 이스티클랄 거리를 들리고, 뮤직 페스티벌에 갈 건데 같이 가는 게 어때?"
이스티클랄 거리
정말이지 쉴 새없이 말을 걸어 왔다. 만약 '터키 술값 사기'와 관련한 뉴스와 '호객꾼을 조심하라'는 여행 책자의 경고를 숙지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경계를 풀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수법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친근하게 접근한 후 '함께 다니자'고 제안하는 등 쉴새 없이 대화를 걸어 정신을 사납게 만든다. 작업 대상의 경계심을 푸는 그들만의 사기 전략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작업 장소로 가기보다는 관광지를 진짜 '구경'하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찍어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 다음에는 결국 '술집'으로 가게 되는데, 그 전에 카페나 식당에 들리거나 길거리 음식을 사먹으며 자신이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경계심을 풀게 만드는 전략의 일부다. 그렇게 술집에 따라가게 됐다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만원에 달하는 요금이 청구된다. 사기꾼들은 자신들이 절반 혹은 1/N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술값 지불을 거절하는 행동을 취하면 험악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고 한다.
갈라타 탑까지 맹렬하게 따라붙으며 말을 걸어오던 그 터키 사기꾼들을 떼어놓느라 제법 힘이 들었다. 갈라타 탑으로 가는 길이 워낙 음침해 재미삼아 몇 마디 나누긴 했지만,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과 한마디도 섞지 않는 것이리라. '이스탄불의 명동'이라 불리는 이스티클랄 거리(Istiklal Avenue)도 한번쯤 가볼 만 하지만, 그곳의 밤문화를 깊이 체험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듯 싶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 정신도 없을 뿐더러 사기꾼들로 득실대는 곳이니 말이다.
'친절하게 다가오는 터키인'을 조심하자. 동양인을 향해 접근하는 그들은 사기꾼일 확률이 100%에 가깝다. 말도 받아주지 말고, 눈길도 주지 말자. 그렇다고 모든 터키인을 경계할 필요는 없겠지만, '형제의 나라'라는 듣기 좋은 말에 취해 마음을 활짝 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지갑까지 몽땅 열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터키가 진짜 위험한 이유는 '테러' 때문이 아니라 동양인 남성을 타깃으로 잡고 접근하는 '사기꾼(호객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위험은 거대하고 엄청난 것에서부터 오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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