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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굿 리메이크' <굿 와이프>

너의길을가라 2016. 8. 2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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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 전부터 잔뜩 기대를 품었던 드라마가 숨막히도록 재미있는 1회로 보답을 해줄 때 그 짜릿함이란! 첫회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회까지 집중해서 시청했던 드라마와의 이별은 착잡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하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3.966%로 출발한 시청률은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리며 마지막 회에서 어느새 6.232%까지 올랐다. '유종의 미를 거뒀다'는 표현이 이토록 적절할 수 있을까. tvN 금토드라마 <굿와이프>가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거두며 성대한 종영을 맞았다. 드라마 방영 전과 초반까지만 해도 '전도연의 복귀작', '동명의 미국 드라마의 리메이크'라는 '좁은' 타이틀로 화제를 모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포커스가 확장되면서 훨씬 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풍성했다. 곧 추석이 다가오니, '한가위 같았다'고 비유해 볼까? 우선, 2009년 미국 CBS에서 처음 방송된 이래 7시즌을 이어 온 원작의 짜임새 있는 설정과 탄탄한 구성은 드라마 성공의 초석이었다. 물론 훌륭한 원작의 유무가 언제나 '굿 리메이크'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정서적으로 우리와 훨씬 친근한 일본 드라마의 경우에는 오히려 큰 실패를 경험한 예가 많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SBS <심야식당>과 KBS2 <내일도 칸타빌레>이다.



또 하나의 리메이크 작품인 KBS2 <직장의 신>이 김혜수의 능력에 상당 부분 의지하면서도, '계약직'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자아낸 데 비해 <굿 와이프>는 '현실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드라마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검사와 변호사(의 경우는 이제 사정이 좀 다르지만)가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삶의 방식'에 있어 괴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굿 와이프>는 '배우'가 절반(은 되려 너무 낮춰 부른 감이 있다) 이상을 차지한다. 


'법정 드라마'를 표방하는 <굿 와이프>는 매 에피소드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리메이크'했다. 가령, 검사의 성접대 사건, 성매매 여성의 성폭행 사건 의뢰, 항우울제 관련 의료 소송, 판사의 뇌물 수수 등을 비롯해 사회적 이슈들을 제시하고, 태아를 사람으로 볼 수 있느냐와 같은 법리적 논점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냉정히 평가하자면 <굿 와이프>는 '사건'속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실패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법정신이었지만, 매회마다 전환되는 사건들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산개됐다. 


그러니까 일정한 '주제 의식' 속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전개된다는 느낌보다는 개별적인 사건들이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초점은 변호사 김혜경(전도연)의 성장에 맞춰졌는데, 집중력의 결여가 다소 아쉬웠다. 반복되는 법정신(매번 그 판사에 그 검사에 그 변호사라니)은 시청자들에게 긴장감을 앗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tvN <시그널>과 같은 파괴력을 갖지 못한 건 당연했다. 이처럼 순식간에 흩어진 사건들 사이로 빛나는 건 오로지 '연기'였다. 




주, 주연을 가리지 않고 출연진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칸의 여왕(구닥다리 같지만)'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큼 전도연의 연기는 완벽 그 자체였다. 그는 스스로 돋보일 줄도 알았고, 상대 배우를 받쳐주며 시너지 효과를 끌어내는 데도 탁월했다. '전도연의 3분 법정신'은 <굿 와이프> 명장면 중의 하나이고, 연기 경력이 거의 없다시피한 나나를 최고의 기대주로 발돋움시키기도 했다. 유지태는 전도연이라는 바탕 위에서 마음껏 춤을 췄고, 윤계상은 어느덧 원숙한 배우의 태가 났다.


이태준(유지태)와 대립각을 세웠던 최상일 검사 역의 김태우, 그 사이를 오가는 기회주의자인 박도섭 검사를 연기한 전석호 등도 각자의 캐릭터를 극 중에 잘 녹아냈다. 익살스러운 이혼 전문 변호사 데이비드 리로 분한 차순배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역시 MJ로펌의 공동대표 서명희를 연기한 김서형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연기 경력과 능력에 비할 때 적은 분량이었지만,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그만한 연기자는 없었다. 


서명희는 김혜경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절묘한 팀플레이를 보여주는 등 김혜경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단(나나)의 양성애자 설정이라든지 대한민국의 법조계(법정)과는 거리감이 있는 모습은 다소 어색했지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표현돼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중반 이후 '불륜'으로 치닫는 전개는 일부 시청자들의 불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사랑과 삶에 있어서 비주체적이었던 김혜경의 성장을 그려내기 위한 '갈등'으로 볼 여지가 컸다.



"와줘서 고마워"

"사건 자료 내일까지 부탁할게. 잊지마"


<굿 와이프>가 선택한 '파격적인 결말'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여야 할 것 같다. 김혜경은 서중원(윤계상)과의 사랑을 이어가면서도 이태준과 이혼을 하지 않고, 서로의 실리를 위한 '파트너'로 남기로 결정했다. '쇼윈도 부부'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이태준은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한 도구로 '아내' 김혜경을 활용했고, 김혜경은 변호사로서의 성공을 위해 이태준을 활용했다. 다소 길지만, 이 엔딩에 대한 전도연의 인터뷰를 인용해보기로 한다. 


"처음 나온 대본에는 김혜경이 기자회견에 안 가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점점 이태준이란 인물을 이해하게 되더라. 15년 살면 미운정 고운정 다 들지 않나? 그 넓은 어깨가 작아보이는 순간이 있더라. 김혜경이 이태준을 따뜻하게 한 번 안아주면 어떨까 싶었다. 이태준을 이해해주는 인물이 있다면 김혜경이라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한국 정서상 김혜경을 나쁜 여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포용하는 여자로 보이길 바랐다. 포용하는 유일한 여자가 김혜경이 아닐까 싶었고 그런 의견을 이정효 PD에게 제시했다. 서중원(윤계상)과 양다리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선택을 해준 김혜경의 심경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결론적으로 보면 쇼윈도 부부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어느 누구와도 결론이 지어진 결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포츠조선>, 전도연 "충격 결말? 시청자 이해해줄 거라 믿었다" 눈물


한국 드라마에서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이 파격적인 결말은 사실 <굿 와이프>의 특권이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김혜경이라는 캐릭터는 전도연의 연기가 더해져 시청자들로부터 '이해'를 얻었다. '불륜'이라 치부할 수 있지만, 그 관계는 단지 쾌락이나 일탈에 묶여 있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동지, 친구의 성격도 강했다. 서중원은 김혜경과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고 말했고, 김혜경은 서중원과 함께 있을 때 오롯이 그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또, <굿 와이프>는 줄기차게 김혜경의 '성장'을 이야기했다. 물론 그것을 일반적인 의미의 '성장'이라 말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정의', '진실'에 무게를 뒀던 아마추어 김혜경은 점차 프로로서의 자각으로 나아간다. 의뢰인을 지키는 것이 변호인의 존재 이유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나중에는 '승리'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다. 이제 김혜경에겐 로펌의 이익이 우선이고, 비록 그가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자신의' 의뢰인의 이익를 추구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김혜경의 선택은 갑작스럽기보다는 충분히 설득적이다.



만약 <굿 와이프>가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의 결론을 따랐다면 어땠을까? 김혜경은 15년 전 사랑하는 남자 이태준의 미래를 위해 그가 저지른 교통사고를 뒤집어 썼다는 사실을 언론에 밝혔을 것이다. '정의'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린 이태준은 몰락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김혜경은 남편과 이혼하고, 서중원에게도 이별을 고한 채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는 삶을 선택했지 않을까. 그리고 몇 년 후라는 자막이 뜨고, 다시 변호사로서 복귀한 김혜경의 당당한 걸음. 그 정도에서 "그동안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의 자막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굿 와이프>는 그 전형성을 탈피했다. 그야말로 <굿 와이프>에 걸맞은 신선하고도 짜릿한 결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가치는 충분하다. 누군가의 김혜경이 아니라 김혜경,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김혜경 변호사에게도 박수를 보내도록 하자.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가능성은 낮지만) 혹시 시즌2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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