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여행기

가평의 숨겨진 명소, '노랑다리 미술관'을 가다

너의길을가라 2016. 8. 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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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加平)' 여행은 뻔하다? 


가평은 경기도(에 속해 있지만)와 강원도 사이에 '딱' 위치해 있다. 서울에서 춘천을 통하는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가장 밀접한 휴양지이기도 하다. 경기도의 관광지 수는 총 240개인데, 그 중 가평에 27개(11.3%)가 있다. 대한민국 대표정원으로 불리는 '아침고요수목원'은 115만 8천 명(2015년 기준)이 찾은 대표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렇듯 여전히 가평은 인기 있는 관광지임에 틀림 없지만, 약간의 아쉬움 혹은 부족함이 느껴진다.



수상 레저를 즐기는 등 '휴양'만을 위한 것이라면 충분할지 모르지만, 여행객을 위한 '볼거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명소가 '아침고요수목원'과 '남이섬', '쁘띠프랑스' 정도인데, '남이섬'은 '드라마의 상술'이 만들어낸 허상의 공간이라 할 만큼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 입장료(10,000원)도 비싼 편이다. 프랑스 풍의 건물들과 생택쥐페리 기념관이 있는 '쁘띠프랑스'도 입장료(8,000원)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가평은 '휴양지'로서 어느 정도 매력(그럼에도 성수기의 바가지는 생각보다 심각하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에 비해 근처의 '관광지'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하다. 가평이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선 '또 다른 공간'들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가평 특유의 '아기자기함'을 간직하면서도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 '입소문'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 말이다. 그런데, 마침, 그런 곳이 얼마 전 문을 열었더라.



그 곳은 바로 '노랑다리 미술관'이다. 청평 군내(지도에서 왼쪽)에서 춘천 방향으로 청평호를 낀 도로를 달리다보면 '노랑다리 미술관'이라는 곳을 만날 수 있다. '남이섬'을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길이다. 근거리에 '쁘띠프랑스'도 있어 찾는 데 어려움을 겪진 않을 것이다. 표지판이 작아 놓칠 수 있지만, 네비게이션이 있으니 문제가 되진 않는다. 




주차장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오면 '노랑다리 미술관'의 '노랑다리'를 만날 수 있다. 삐딱하게, 대충 걸린 듯한, 저 무신경한 현수막이 오히려 인상적으로 와닿는다. 왠지 조금 '독특'한 장소일 것 같다는 예감이 마구마구 들지 않는가? 





목재로 된 다리는 '차원의 문'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곳을 지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야.'라고 속삭이는 듯 하다. 다리 중간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36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라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만약 봄이나 가을이었다면 잠시 앉아서 주변의 경치를 만끽하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카페'이자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음료를 주문하면 미술관 관람이 무료다. 음료의 값은 모두 5,000원이다. 이제 내부로 들어가보자. 



메뉴는 다양하지 않지만(사실 이 정도의 다양성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요즘 카페는 지나치게 메뉴가 많다), 더위에 목을 축이기엔 더할 나위 없다. 커피를 마신 지인은 '맛'이 괜찮단다. 무엇보다 굉장히 친절하셨는데, '옥수수'가 좀 남았다며 좀 나눠 주시기도 했다. (그 때문'만'은 아니다!)






내부의 아기자기하면서 분위기 있는 소품들이 눈길을 끈다. 감각적이고, 예술적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곤 못 배길 정도다. 진열돼 있는 재봉틀이 인상적이다.




안쪽에서 바라본 바깥의 초록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공간의 위력 때문일까. 이번에는 '숟가락'이 잔뜩 세워져 있는데, 마치 바람에 눕는 풀처럼 보이지 않는가? 



여자 화장실은 여성의 속옷으로, 남자 화장실은 넥타이로 구분해 놓았다. 성(姓) 이미지에 대한 1차원적인 구별(어쩌면 화장실이야말로 성 이미지의 구별이 무의미한 공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속옷'과 '넥타이'는 좀 뻔하지 않은가?)이라 조금 아쉽긴 하지만, 화장실 내부만큼은 널찍하고 깨끗했다. 다만,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이 완벽히 구분된 게 아니라 '소리'는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구조였다. 





주문 했던 음료를 받고, 에어컨이 있는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장실 옆쪽으로 나 있는 내부의 통로를 따라 (아주) 조금만 이동하면 바로 미술관이 나온다. 문이 열리면 바로 보이는 홀(방)의 모습이다. 오래된 라디오(?)들이 '전시'돼 있고, 여러 장식품들이 '장식'돼 '미술'을 이루고 있다. 한 쪽에는 잡지들이 특정한, '규칙적인 '쌓임'을 이루면서 '예술'이 돼 있다. 







천장을 비롯해서 바닥까지 모든 '곳'이 '미술'을 위한 '공간'이 된다. 그리 넓지 않은 크기에도 눈길이 닿는 곳마다 '신기'한 작품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꽉 찼다'는 만족감을 준다. 키보드 자판과 카메라를 활용해 '물고기'를 형상화한 작품도 흥미롭다.



소개가 늦었다. 패션 1세대 디자이너, 아티스트 손일광 씨다. '노랑다리 미술관'을 직접 지은 사람이자 10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만든 사람이다. 처음에는 윗옷을 벗은 '아저씨(좀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할아버지)'가 물건들을 옮기고 있어서 '이 사람 누구지? 일하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그가 바로 손일광 씨였다. 그의 나이가 77세라는 것이 믿겨지는가?  





손일광 씨는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짧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붙여져 있는 검은색과 하얀색 키보드를 두고 그는, '감옥에서나 쓸 만한 물건'이라 말했다. 설명을 듣고, 저 익숙한 물건들을 바라보니 정말 숨이 막혀왔다. 도대체 우리는 왜 '알록달록' 예쁜 키보드를 갖지 못한 걸까? 





단지 '숟가락'일 뿐이지만, 앞뒤로 붙여진 이것들은 '오목 거울'이고, '볼록 거울'이 된다. 절반의 오목 거울은 나를 거꾸로 비추고, 절반의 볼록 거울은 나를 똑바로 비춘다. 그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작은 물건 하나가 나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것처럼, 작은 생각 하나가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뻔한 메시지'이지만, 이렇듯 '예술'을 관통하니 매우 강렬한 힘을 갖지 않는가?



숟가락과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접하는 물건인 '변기'. 그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됐다. 일상성에서 전복의 쾌감을 누리는 것 말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맛있는 음식'이었던 그것이 변기에 앉에 배설하는 순간, '더러운 오물'이 된다. 몸에 품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그 '더러움'을 인식하지 못하지 않는가. 결국 '본질'은 같다. 관념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말라.  




저 볼펜으로 수정된 전화번호는 손일관 씨의 흐릿해진 기억력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100여 개의 전화번호를 외웠지만, 이젠 아내의 것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벅차시다나? 명함을 만들 때 자신있게 전화번호를 말했지만, 알고보니 틀린 번호여서 죄다 저리 고쳐야만 했다고 한다.




미술관 위쪽에 조성된 작은 정원이다. 역시 날씨가 워낙 더워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물러날 도리밖에 없었다. '노랑다리 미술관'은 지난 5월 7일 개관식을 가진 터라, 아직 사람들에게 생소한 공간이다. 그 이름,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아직까지' 이 곳은 가평의 '숨겨진 명소'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입소문'을 통해 널리 알려져 가평의 '히든 카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공간이 제한적이라서 많은 관광객을 동시에 수용하기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다녀가는 게 좋다. 좋은 공간을 미리 알고 '소유'하는 기쁨을 느끼기에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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