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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 드라마 저주 끝낸 <키스 먼저>, 감우성과 김선아였기에 가능했다

너의길을가라 2018. 2. 2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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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드는 겨울의 바닷가. 두 남녀가 그런 바다를 묵묵히 바라보며 서 있다.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일까. 둘 사이의 거리는 제법 멀다. 카메라는 그들로부터 한참 떨어진 뒤편에서 움직임을 주시한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사연을 가진 이들일까. 곧바로 내래이션이 잔잔히 깔린다. 정호승의 '봄길'이라는 시다. 목소리는 감우성의 것이다. 


감미로운 목소리에 참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담담함과 단호함, 얼핏 회한도 보인다. 그럼에도 희망이 내재돼 있다. 어떤 기대가 있다. 이윽고 여자가 남자를 향해 걸어 온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모든 게 계획이었냐고 묻는다. 남자는 사랑은 계획에 없던 일이라며 실수였다고 말한다. 실수라는 말에 여자는 힘이 빠진다. 헛웃음과 함께 흐르는 눈물이 더욱 슬프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주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이하 <키스 먼저>의 첫 장면이다. 감각적이고, 감성적이다. 또,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자연스레 저 두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모든 게 '계획'이었냐고 따질 수밖에 없는 여자의 처지는 무엇일까. 그에 대해 '실수'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남자의 심정은 무엇일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잽싸게 누르려던 리모컨에서 손을 뗀다. 결정했다, 이 드라마를 보기로. 


8.1%(1회)-10.5%(2회). 얼마만의 두 자릿수 시청률인가. 월화드라마의 오랜 기근, 저조한 시청률이 저주처럼 월, 화를 맴돌았던 시절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상승세는 지속됐다. 지난 8회에선 12.4%까지 치솟았다.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는 tvN <크로스>는 3.671%, MBC <하얀거탑 리마스터드>는 3.5%, KBS2 <라디오 로맨스>는 3.4%에 그쳤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경쟁이 되지 않는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난다. 지구를 몇 바퀴 돌아서라도 결국엔 만나게 된다. 운명처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도 언젠가는 만난다. 피하고 또 피해도 반드시 만나고야 만다. 숙명처럼."


<키스 먼저>는 '어른 멜로'를 표방한다. 중년(中年)들의 현실적인 로맨스라고 할까. 좀더 감각적으로 표현하자면 '성숙한 사람들의 서툰 사랑'을 다룬다. 때에 따라 과감하게 '19세 등급'도 달고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에로틱한 건 아니다. 끈적이는 것도 아니다. 물론 도발적인 대사들과 장면들이 나오지만, 거기에 감성이 묻어 있기 때문에 야하기보다 묘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안순진(김선아)과 손무한(감우성)은 배우자들의 배신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딱히 내색하지도 않는다. 말그대로 '안고' 살아갈 뿐이다. 애써 떠벌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을 하려 들지도 않는다. 중년이란 무엇일까.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아픔에 익숙한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요당하는 세대가 아닐까. 무뎌져야 하는 나이 말이다. 


한번도 (제대로) 웃어본 적 없고, 한번도 (제대로) 울어본 적 없는 두 사람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짠하다. 그러나 그들이 '오늘만 살자'고 다짐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된다. 6년 전 승무원과 승객으로 만나 흔들리는 기체에서 "이대로 추락했으면 좋겠어요."라며 삶보다 죽음을 갈구했던 두 사람은 윗층(501호, 무한)과 아래층(401호, 순진) 이웃으로 만났다. 그리고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간다.



감우성과 김선아, 두 배우는 <키스 먼저>의 최고의 자산이다. JTBC <품위있는 그녀>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재확인시킨 김선아는 특유의 코믹 연기와 함께 진지한 감정선까지 노련하게 연기한다. 또, 감우성은 어떠한가. 감미로운 목소리와 깊은 눈빛은 여전히 빛난다. 거기에 보다 깊고 성숙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설득한다. 역시 김선아, 역시 감우성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감우성은 "내 심장이 하라고 했다"고 밝혔을 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는데, SBS <연애시대>(2006) 이후 오랜만에 자신의 꼭 맞는 옷을 입은 듯하다. <키스 먼저>는 감우성의 목소리를 통해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다. 내레이션이나 시를 읽어주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감우성 사용법을 제대로 꿰고 있다는 인상이다. "자러 올래요?"라는 대사를 저토록 감성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키스 먼저>이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산만한 스토리 전개는 집중력을 저해하는 요소다. 또, 무한의 딸 이든(정다빈)의 연기는 과하고, 청력을 잃은 바리스타 여하민(기도훈)의 연기는 다소 아쉽다. 순진의 친구 미라 역을 맡은 예지원의 활약이 돋보이지만, 그 외의 캐릭터들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약점이다. 그럼에도 감우성, 김선아 두 배우의 존재감은 <키스 먼저>를 기대하게 만드는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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