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거를 내가 스스로 디스해야 하네." (백종원)
백종원이 골목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쇠락한 식당들의 문제점을 분석해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시하던 때였다. 당시 그에게 줄기차게 제기된 요청이 있었다. '더본코리아', 그러니까 백종원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점검을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홍콩반점', '새마을식당' 등의 맛이나 위생 상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일관된 불만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할까.
백종원은 2024년의 시작과 함께 자신의 유튜브 채널 '백종원 PAIK JONG WON'에 '[내꺼내먹]'이라는 콘텐츠를 공개했다. 제주도의 '연돈'을 찾아가고, '빽보이피자'에서 직접 피자를 주문했다. '홍탁집'을 기습해 달라진 게 없는지 체크하고, '원주 칼국수'에서 사장님의 손맛을 담기도 했다. 백종원이 '내꺼내먹'을 하며 등잔 밑을 살필수록 요구는 본격화됐다.
수많은 댓글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걸까. 4월 29일, 백종원은 '초심 잃은 새마을식당? 제꺼 긴급 점검 들어갑니다'라는 영상을 게시했다. 서울의 한 새마을식당을 찾은 백종원은 초창기의 단출했던 메뉴와 달리 늘어난 차림표를 보다가 "원래는 열탄불고기 먹고 김치찌개에 밥 먹으면 됐는데"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메뉴의 간소화는 그의 대표 철학이 아니던가.
열탄불고기와 7분 김치찌개를 주문한 백종원은 추억에 잠겨 고기를 굽더니 "고기는 센 불에 구워서 불이 팍 붙어야 맛있"다며 고기 굽는 법을 설명했다. 또, '고기가 탄다', '연기 난다'는 컴플레인이 많아 숯불을 가스 불로 바꿨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백종원은 "편리한 운영으로 바꿨더니 매력이 없어졌"다며 "장사하는 사람이 불편해야 손님이 즐거"워한다는 평소 지론을 언급했다.
잠시 후, 주방에서 끓인 김치찌개가 나오자 백종원은 "(이전에는) 7분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운영하기 힘들다고 바뀌게" 된 점을 지적했다. 백종원은 새마을식당 사장에게 메뉴판을 간소화하고 7분 김치찌개도 예전 방식으로 되돌리도록 조치했다. 결국 해답은 '초심'이었다. 해당 영상은 35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됐다.
'엄청 달고, 면을 잘 안 털어서 그런지 싱겁다.'
'홀에서 먹는데도 면이 불어 있고, 짜장 소스가 뭉쳐있다.'
'짜장 소스가 부족했고 달걀이 타서 나왔다.'
백종원의 등잔 밑 살피기 행보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6월 3일에는 '[내꺼내먹_홍콩반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의 말씀이 맞았어요...'라는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서 백종원은 직원들과 함께 '홍콩반점'의 메뉴를 직접 먹어보고 평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 제작진은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로 가장해 전국의 홍콩반점 매장을 돌았다.
무려 한 달여간 이어진 점검 끝에 여러 문제들이 접수됐다. 배달 음식을 받아본 백종원은 "여러분들의 말씀이 맞았"다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실망한 그는 "내가 내 걸 스스로 디스해야 하네."라고 자괴감을 느꼈지만, 이내 작정한 듯 냉정한 평가를 쏟아냈다. 삶은 지 오래된 면의 식감, 일관성 없는 짜장 소스의 간, 탕수육의 제멋대로인 튀김옷과 튀김 정도에 대해 쓴소리가 이어졌다.
특히 D 지점의 짜장면과 짜장밥을 먹어보고서는 "이 집은 레시피를 창조했나 봐."라고 혹평했다. 백종원은 "이런 집들 때문에 잘하는 다른 홍콩반점들이 욕먹고 있"다며 점주들이 간단하게 따라해도 기본은 나올 수 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해당 솔루션은 11일, '[내꺼내먹_홍콩반점 2편] 지금도 계속 변화 중입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에 담겼다.
더 나은 개선 방향을 찾기 위해 오래 고민했다는 제작진은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열심히 변화 중이라며 의지를 내비쳤다. 백종원은 홍콩반점 283개 지점의 주방에 약 30만 원 상당의 모니터를 설치했다. 점주들이 레시피 영상을 보며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본사 차원의 지원과 재교육은 다행히 효과가 있어 백종원은 뿌듯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백종원의 이와 같은 행보는 매우 인상적이다. 얼핏 셀프 디스를 하며 제 살 깎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정반대이다. 최근 백종원표 식당들에 실망해 발길을 돌린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홍보 전략이기 때문이다. 또, 직접 프랜차이즈를 점검하고, 점주들의 재교육까지 책임진다는 점에서 대표로서의 책임감도 엿볼 수 있다.
한편, 17일 더본코리아 산하 브랜드 '연돈볼카츠'의 점주들이 최소한의 수익률 보장을 요구하며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등 단체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본사가 월 3천만 원 이상의 예상 매출액을 제시하며 가맹점주들을 유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본코리아는 "계약 체결 시 전국 매장의 평균 매출액·원가비중·손익 등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제시해 허위·과장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17개의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보유 중인 더본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4106억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45.5%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 이익은 0.6% 감소한 255억 원을, 당기순이익은 31% 증가한 209억 원을 각각 기록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더본코리아는 기업공개(IPO) 절차에 돌입했다. 백종원의 브랜드 챙기기는 기업 가치 재고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민감한 시점에 점주들과 불거진 갈등은 더본코리아 입장에서 난감한 일이다. 게다가 백종원의 솔루션을 거부하고 촬영이 동의하지 않은 홍콩반점 점주들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무너진 동네 상권을 살리고, 전통 시장을 부활시키고, 지역 축제를 활성화시킨 '만능치트키' 백종원은 지금의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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