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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가게 찾아 영종도까지 간 이유, 특별한 공간 '수, 분'에 반했다

너의길을가라 2024. 8. 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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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알고 있다는 건 엄청난 지름길을 알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신뢰할 수 있기에 선택과 관련한 불필요한 과정이 생략된다. 그만큼 편하고 용이하다. 인생을 수월하게 살고자 한다면 분야마다 나만의 전문가를 가급적 많이 알아두면 된다.

작년, 강릉을 여행 때 '수수하'라는 소품 가게(공방)에 들렀는데, 소품들이 죄다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특히 유리 공예로 만든 선인장이 눈길을 사로잡았었다. 강릉 시내를 걷다가 홀린 듯 '수수하'로 들어갔던 까닭은 내, 외부 인테리어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가게 이름처럼, 내부의 수수한 분위기를 상승시켜주는 '식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참 정성스럽게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쏙 들었던 소품을 하나 구입한 후, 식물의 출처에 대해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사장님, 여기 있는 식물들은 어디에서 사오셨어요?"
"제 친구가 꽃집을 하거든요. 근데, 위치가 좀 멀긴 한데.."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친구는 닮는 걸까, 닮은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걸까. 이쯤되면 어딘지는 상관 없었다. 전문가를 찾는 데 위치가 뭣이 중할까. 추궁(?)에 가까운 집요함으로 원하던 답을 얻어냈다. 인천 영종도에 있는 '수, 분'이라는 꽃집이었다.

수, 분
주소 : 인천 중구 관창로 16 1층
영업 시간 : 10:00-18:00(일요일 휴무)


지난 주, 작정하고 시간을 내서 영종도로 향했다. 아내가 샵을 오픈할 때 선물로 데려왔던 해피트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4년 만에 생을 마감하기도 했고, 집에도 새 식구를 맞이해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던 차였다. '수, 분'이라면 식물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줄 것 같았다.

가게 문 앞에 있는 올리브 나무부터 심상치 않았다. 일반적인 꽃집에서 볼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사장님의 공력이 느껴졌다. 내부로 들어가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에 분재 나무들이 시선을 강탈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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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께 강릉 얘기를 했더니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 손님은 드물지 않았을까. 대화를 몇 마디 나눈 후 확신할 수 있었다. 사장님이 식물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자신의 직업에 대한 프로 의식이 얼마나 강한지 말이다.

방문 당시 '수, 분'에는 (사장님 기준으로) 식물들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판매가 꽤 되기도 했고, 최근에 농장을 방문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했다. 어떤 면에서는 '알짜배기'만 남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가격이 제법 나가는 녀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할까.

사장님은 식물이 많이 없는 편이라 했지만, 주변의 일반적인 꽃집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식물들이 많아서 구경하는 맛이 쏠쏠했다. 10년 이상 된 분재도 많았다. 물론 오래될수록 가격은 높았다. 호기심 많고 질문도 많은 우리였지만, 사장님은 풍부한 지식을 토대로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셨다.

아내의 원픽은 덴드로칠럼 테넬럼(Dendrochilum tenellum)이라는 독특한 모양의 난이었다. 이른 봄에 아이보리색 꽃이 피어나 매력적인데, 꽃이 진 후에도 자연스러운 라인이 수수하니 예쁘다. 무엇보다 공간을 돋보이게 하는 힘을 지녔다. 관리는 쉬운 편이라 부담이 없다.

실제로 테넬럼은 시중에 드문 편이다. 사장님에 따르면, 전문적으로 키우는 농장이 한 곳뿐이라고 하니 구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수, 분'의 테넬럼의 특별함은 그 풍성한 '숱'에 있다. 사장님은 이 정도 숱의 테넬럼은 없을 거라며, 오랜 세월 정성들여 키워 잎이 무성한 테넬럼을 소개하셨다.

'수, 분'에는 식물도 식물이지만, 화분이 참 멋스러웠다. 화분은 곧 식물의 집인데, 어떤 집에 담느냐에 따라 식물이 훨씬 더 빛난다는 점에서 센스를 엿볼 수 있는 포인트이다. 물론 식물에 대한 애정도 파악할 수 있다. 테넬럼이 담겨 있는 화분도 유명한 분이 직접 빚은 것이라고 들었다.

테넬럼의 가격은 (화분 포함) 42만 원. 혹자는 식물 하나가 뭐 그리 비싸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 식물을 키우기 위해 들인 공과 애정 등을 고려하면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좋은 식물이 공간을 어떻게 바꾸는지 안다면 그 가치를 폄훼할 수 없으리라.

사장님은 애지중지했던 자식을 보내는 기분이었던 모양이다. 팔기 전에 사진을 좀 찍어두겠다고 말씀하셔서 마음이 괜시리 짠하기도 했는데, 사실 강릉의 '수수하'에서도 같은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순수한 사장님의 마음이 느껴져 '업(業)'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테넬럼 말고도 몇 녀석을 더 데려오고 싶었지만, 사장님이 9월 초에 농장을 다녀올 예정이라는 얘기를 듣고 좀더 기다리기로 했다. 테넬럼처럼 한눈에 반해 운명이라고 받아들일 녀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도 '고액의' 원픽 계약을 성사시켰기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사장님은 상세한 관리법이 적힌 카드를 건네 주며 잘 키워달라고 당부와 부탁을 하셨다. 우리는 혹시나 테넬럼에 문제가 생기면 즉시 연락을 드리고, 관리를 위해 데려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테넬럼과의 귀갓길은 충만함 그 자체였다. 또 한 명의 '전문가'를 찾았기에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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