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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에 집 주소를 쓰라고? 수원 영통구의 일방통행식 쓰레기 실명제

너의길을가라 2016. 4. 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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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에 우리집 주소를 쓴다? 깨끗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초석이 될 것인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것인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가 재활용품과 음식물쓰레기 분리배출을 '더' 정착시키기 위해 종량제 봉투에 '주소'를 쓰는 실명제를 시범운영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9월 강원 평창군이 시행했던 종량제 봉투 실명제를 벤치마킹한 것인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생략한 영통구의 경우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반발'이 목격된 건 '아고라(agora)'의 청원 게시판(수원시 영통 쓰레기에 상세 주소를 쓰라니요? 저는 반대합니다.)이었다. 스스로를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맹달'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아침(에) 아이 등원을 시켜주며 이상한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면서 영통구가 시행하고자 하는 쓰레기 실명제에 대해 '차근차근' 그리고 '조목조목' 불만을 제기했다. 


대한민국은 분리수거 세계 1위(대한민국의 쓰레기 재활용 비율은 61%로 OECD 국가 중 3위)인데, 쓰레기 배출양이 많은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과 가정보다 쓰레기 배출양이 훨씬 많은 기업들이 있을 텐데 제대로 감시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부분은 공감대를 자아냈다. '자체 건의'에 의해 진행된 평창과 달리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무시'한 영통구의 일방통행이 문제라는 지적도 '사이다'였다.



"이젠 종량제 봉투를 구입하면 실명제 스티커에 주소를 먼저 적는 것이 생활화됐다. 어느 집에서 배출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보니 분리수거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 (평창군 평창읍의 한 주민)


"우리 동네에선 종량제 봉투에 집 주소를 적어 놓지 않거나 제대로 분리 배출하지 않으면 아예 수거를 해 가지 않는다" (평창군 평창읍 주민 이용운 씨)


평창시가 '쓰레기 실명제'를 시행하게 된 계기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진부면 주민들의 '자체 건의' 때문이었다. 평창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미탄면 창리에 위치한 환경센터로 옮겨지게 되는데, 중량제 봉투에 음식물 등이 함께 들어 있는 경우 수거차량을 되돌려보내도록 조치된다. 그 뒤처리는 환경미화원과 주민의 몫인데, 이 때문에 발생하는 '악취'도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다. 


참다못한 진부면 주민들은 자체적인 '대책회의'를 통해 '쓰레기 실명제'를 건의했고, 이때부터 약 2달 동안 종량제 봉투에 자신의 집 주소를 적어 배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참여율은 100%(4,355세대 9,416명)까지 올라갔고, 종량제 봉투에 음식물 쓰레기를 몰래 넣는 비양심적인 사람도 없어졌다. 이 고무적인 성과에 평창군은 '쓰레기 실명제'를 모든 지역으로 확대 적용했다. (지난 2월 기준 참여율 85%)




"실명제 도입 이후 쓰레기 발생량이 줄고 있고 쓰레기 처리 예산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이순덕 평창군 청소행정계장)


"올림픽을 개최하는 평창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쓰레기 봉투 실명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된다면 선진국형 친환경 생활문화를 더 일찍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심재국 평창군수)


분명 효과가 있었다. 소각 폐기물 수거량이 하루 평균 24톤에서 15.7톤으로 줄어들면서 연간 약 2억 5~6천 만 원의 예산 절감을 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쓰레기를 줄였다는 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평창군의 경우는 주민들의 자체적인 고민과 건의에서 출발해서 그 목표를 달생했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사례가 됐다.


문제는 이 정책을 다른 지자체에서도 '아무런 고민 없이' 무작정 갖다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당장 영통구가 맞닥뜨린 '역풍'만 해도 그러하다.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힌 맹달이라는 누리꾼은 "쓰레기만 봐도 가족 구성원을 알 수 있고 여성 혼자 사는 집인지 판단이 가능하다"면서 "개인쓰레기에 상세주소를 붙여 낸다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 범죄 악이용 가능성이 걱정"된다고 주장했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아무래도 평창군 진부면(전체로 확대 시행되긴 했지만)과 수원시 영통구는 인구 수라든지 그 구성에 있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야만 한다. 2016년 3월을 기준으로 평창군의 인구는 4만 3,278명(2만 541세대)이고 수원시 영통구는 33만 7,337명(12만 5,633세대)이다. 단지 '숫자'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대 구성'에 있어 '시골'과 '도시'의 차이를 간과할 수 없다. 평창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대 구성원의 평균 연령이 현저히 낮고, 여성만으로 구성된 '1인 가구'가 많을 수밖에 없는 영통구가 아닌가? 옆집에 누가 사는지 쉬이 알 수 있는 시골과는 달리 도시의 삶은 '콘크리트'에 가로막혀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주소를 거짓으로 써낼 경우라든지 그러 인한 이웃과의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물론 그런 문제들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 수 있다. 자연스레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으로 시간이 지나면 차차 사라지게 될 여지가 높다. 역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정보 유출'과 '범죄 악용' 소지가 높다는 것인데, 그동안 성범죄를 비롯해서 끔찍한 '강력범죄'에 많이 노출되어 있던 수원 시민의 입장에서 '쓰레기 실명제' 도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 참고로, 우린 '상당히' 잘 하고 있다. 채찍보다는 당근이 필요한 것 아닐까? -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 혹은 '혼합배출로 인한 예산 낭비를 줄여야 한다' 등의 명제들은 더할나위 없이 '옳다'. 그 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구상하고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 '주민들의 의견 수렴'이라는 '(필수적) 절차'를 생략한다면, 그건 '영혼 없는' 행정적 편의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설득해야만 한다.


당장 쏟아지는 '항의'와 '반발'을 보라. 애초에 '수렴' 절차를 거쳤다면, 예상할 수 있었던 문제점들을 체크하고 대안을 모색했을 것이 아닌가? 평창군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았던 문제점(개인정보 유출과 범죄 악용)이 수원시 영통구에서는 민감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수원시 관계자는 "우려가 제기된 각종 부작용과 의도적 오작성에 대한 대책은 아직 마련 못했다"고 말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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