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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사회로 가는 길' 막는 막연한 두려움, 우리는 얼마나 준비됐나

너의길을가라 2021. 3. 2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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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를 받아들이기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1990년대 들어 급격한 기후 변화의 증거들이 포착됐으나 그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간빙기, 태양 흑점 등 여러 가설이 제기됐다. 하지만 과학은 산업혁명 이후 계속된 화석연료의 사용 등 '인간 활동'을 유력한 원인으로 꼽았다. 2013년 기후 위기의 책임이 인간일 확률은 95%까지 높아졌다. 이제 부정하기 힘든 진실이다.

2015년 열린 파리기후협약은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자고 선언했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지구의 평균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1.1도가 올랐다. 상황이 좋지 않다. 어쩌면 인류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원을 찾는 일이 아닐까.

여러 대안들 중에서 '수소 에너지'는 유력한 선택지로 꼽힌다. 지난 26일 방송된 KBS1 <다큐온> '수소사회로 가는 길'은 조만간 세계가 수소를 주에너지원으로 하는 산업구조로 재편되리라고 전망한다. 이미 각국은 수소사회에서 좀더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수소사회로 가는 길은 얼마나 진척됐을까. 그 길목에서 대한민국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제주에서는 수소 드론을 이용해 해상인명구조 훈련이 진행 중이다. 체공 시간이 2시간 가량으로 기존 배터리 드론(30분)에 비해 훨씬 더 길다보니 활용도가 높다. 서핑객들도 수소 드론이 존재에 한결 안심이다. 수소 드론은 그밖에도 외딴 섬으로 물자를 실어 보내는 용도로도 쓰인다. 이처럼 수소 에너지는 다양한 분야에 접목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독보적인 건 역시 수소 자동차일 것이다.

"수소에 대해서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어요?"
"수소 폭탄, 그것이 많이 알려졌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런 불안감이 얼마나 크겠어요."

수소차는 탄소 배출량이 제로이기 때문에 '달리는 공기청정기'라고 불린다. 그래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수소차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2021년 1월 기준 대한민국의 수소차 수는 1만 1천여 대이다. 그러나 전국의 수소 충전소 수는 55개에 불과하다. (전기차 등록대수는 13만 대이고, 전기차 충전소는 전국에 3,730개, 충전기는 9,261개이다.)

당장 수소차를 사더라도 충전 대기시간이 걱정인 실정이다. 우리는 수소자동차로 대표되는 활용 분야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고 평가받지만, 사회적 인프라는 뒤쳐져 있다. 정부는 2022년까지 수소 충전소를 300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이어져 부지 선정에 애를 먹고 있다. 수소에 부정적 인식, 다시 말해 수소 폭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2019년 5월 강릉과학산업단지에서 발생한 수소탱크 폭발 사고가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폭발로 3300㎡ 규모의 건물이 뼈대만 남을 정도로 파손됐고, 폭발음이 7~8㎞ 밖에까지 들렸다. 물론 '수소 폭발'은 중수소나 삼중수소와 같은 특수 수소를 섭씨 1억도 이상의 고온에서 터뜨릴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나 전문가들은 수소가 프로판가스보다 더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인식은 실제를 압도하는 법이다. 비행기 사고가 자동차 등 여타 운송수단보다 안전함에도 그 임팩트 때문에 두려움을 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프랑스의 경우에는 파리 시내 한복판인 알마 광장에 무인 수소 충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일본도 주택가 한가운데 충전소가 들어서 있다. 수소차를 타는 사람들은 큰 불편함 없이 충전소를 이용하고, 주변에 거주하는 시민들 역시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프랑스의 경우, 관련 법규를 꼼꼼하게 제정해 시민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토론과 합의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었다. 일본 아이치현은 수소 에너지 홍보관과 이동식 수소 충전소가 설치돼 시민들이 쉽게 다가갔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도 이어졌다. 이처럼 정부와 자자체가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다.


"화석연료는 자연에서 채굴방식으로 채취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석연료를 가지지 못한 국가는 에너지를 가질 수 없는 불운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소 에너지는 그 많은 에너지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현장에서 바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부산대 권순철 교수는 소전해 기반 수소연료전지보트와 수소연료전지 농장 등을 만든 자칭 수전해 전도사이다. 그의 'waterboat'는 물 500ml 한 통만 있으면 2시간 가량 운행이 가능하다. 권 교수는 완전한 그린에너지를 꿈꾸며 연구를 계속해 왔다. 그가 자랑하는 수전해 수소는 천연가스를 개질해 만드는 개질 수소와 석유화학제품 공정에서 부산물로 생기는 부생수소와 달리 탄소배출이 '0'이다.

수소 에너지는 자연에서 채굴하는 석탄이나 석유 등 화석연료와 달리 접근성이 훨씬 뛰어나다. 또, 국가간 자원 격차나 불균형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권 교수는 수많은 에너지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현장에서 바로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물만 챙겨서 다니면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권 교수는 수전해 기술이 발전이 미래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라 거듭 강조한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조합이 이욱태 이사장은 태얄열과 수소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 제로 하우스'를 직접 지었다. 그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물을 연료통에 집어넣어 에너지를 생산한다. 물론 아직 완전하진 않다. 그러나 기술이 좀더 발전하면 에너지 완전 자립을 꿈꿀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의 희망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다가올 현실이 되지 않을까.

눈앞에 닥친 기후 위기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수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지구적 노력이 요구된다. 대체 에너지로 재생 에너지를 활용하는 문제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사안이다. 수소 에너지는 상당히 매력적인 대안이고,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수소 사회로 가는 길' 앞에 우리는 얼마나 체계적인 준비를 하고 있을까. 다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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