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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 연예

'삼시세끼'보다 '스페인 하숙'이 더욱 정감가는 이유는?



"처음에.. 한국인 줄 알았어요, 갑자기. 이럴 리가 없는데."


저마다 삶의 고민을 안고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그 여정에서 '유해진'을 만날 줄 누가 알았을까. 그것도 고된 여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당도한 '알베르게(albergue)'에서 말이다. 하룻밤을 묵어갈 숙소가 필요했던 터에 '스페인 하숙'이라 쓰인 반가운 한글 간판에 이끌려 왔지만, 그곳에 유해진이 있을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마치 무엇엔가 홀린 기분이었으리라. 


"네,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리셉션(reception)에 앉아 태연히 손님을 맞이하는 유해진이라니! 젊은 순례자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선 '얼음'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기 스페인 맞아?'라는 의심은 자연스웠다. 겨우 정신을 차릴 만하니, 이번에는 차승원과 배정남이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건네는 게 아닌가. 스페인의 작은 마을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에 내걸린 비현실적인 간판을 보고 알아차렸어야 했을까. 놀랍고도 행복한 홀림이다.



tvN <스페인 하숙>은 나영석 PD가 <삼시세끼>를 만들고자 했다가 '그건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 다른 걸 한번 해보자'고 해서 탄생한 프로그램이다. 차승원과 유해진의 돈독한 관계, 그 케미가 자아내는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삼시세끼>와 다름 없지만, 그들에게 산티아고 순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하숙집 운영을 맡김으로써 변주를 줬다. 거기에 막내 배정남을 투입해 새로운 그림을 이끌어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민감한 지표인 시청률도 호조세(好調勢)를 보이고 있다. 1회에서 7.591%(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로 산뜻한 출발을 했고, 2회는 8.345%로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나영석 PD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을 거뒀다고 말하면 너무 성급한 걸까. 혹자들은 '도전'이라는 말에 의아함을 드러낼지도 모르겠다. 나 PD의 예능이 죄다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영석의 예능은 다 거기서 거기 아냐?' 


나영석 PD의 방송이 모두 유사해 보이는 건, 바로 '소재의 반복성' 때문이다. 그의 예능에는 어김없이 '여행'과 '요리'가 등장한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경험이지만 워낙 많이 다뤄져 식상하고, 요리는 철저히 일상에 속한 일이라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나PD는 그 두 가지가 '결합'되면 예외적인 사건이 벌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을 뿐더러 이를 통해 매혹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 



거기에 대중들의 판타지를 녹여냄으로써 특별함을 더한다. 의미를 불어넣고, 여운을 자아낸다. 스토리텔링에 능하다. 나영석 PD를 칭찬하는 것과 별개로, 그가 만드는 예능들이 전반적으로 유사성을 띠는 건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앞서 출생의 비밀을 설명했다시피) <스페인 하숙>도 <삼시세끼>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나 PD의 예능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유사함 속에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난데없이 고백하자면, tvN <삼시세끼>보다 <꽃보다 할배>(나 <꽃보다 청춘>, <알쓸신잡>)가 좋고, <꽃보다 할배>보다 <스페인 하숙>(이나 <윤식당>)이 좋다. 이건 단순한 취향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차이'에 대한 접근이다. 다시 말하면 연예인들끼리 모여서 투닥투닥하는 것(도 재밌지만 그)보다 다른 세계를 누비며 지평을 넓히는 게 좋다는 뜻이고, 그보단 사람들과 어울리며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다.


"어제보다 많으면 좀 북적북적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재미도 나고 힘도 나고 그럴 텐데."


<스페인 하숙>에는 '교류'가 넘친다. 순례자들과의 예기치 않은 만남들이 잔뜩 준비돼 있다. 고립된 이야기가 매번 아쉬웠던 <삼시세끼>와는 상반된 분위기다. 어떤 손님이 찾아올지, 얼마나 많은 손님들이 찾아올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설정은 만남을 더욱 값지게 만든다. 순례자들에게도 뜻깊은 추억이지만, 차승원과 유해진, 배정남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이 된다.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따스한 온기가 전해진다.



차승원이 정성스럽게 차린 '임금님 밥상'을 마주한 도시행정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오랜만에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아침까지 듣든치 챙겨먹은 그의 얼굴이 한결 편안했다.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 세 사람의 배웅 속에 다시 순례길에 나선 청년의 발걸음에는 힘이 넘쳐 보였다. 아마 순례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에 있어서도 큰 에너지를 얻지 않았을까?


유해진의 반가운 인사에 얼음이 된 청년은 예상치 못한 행운에 얼마나 가슴이 설렜을까. 또, 외국인 순례자들 역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방송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라 할지라도 매사에 대충이 없는 차승원과 유해진의 진심은 충분히 전해졌으리라. 그들의 만남을 통해,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인 우리들도 더불어 감동을 받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방송의 진정한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영석 PD는 그 지점을 누구보다 잘 찾아내는 사람이 분명하다. <삼시세끼>도 좋지만, 사람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하숙> 시리즈가 앞으로도 쭉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차승원의 음식은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