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 비정규직 향했던 칼날, 이번엔 정규직이다

너의길을가라 2014. 11. 2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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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장면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이뤄지던 순간이다. '더 마트'의 정규직인 동준(김강우)은 회사의 부당해고에 맞선 비정규직의 싸움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본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부당해고는 비정규직의 일, 즉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정규직들도 연봉계약직으로 전환시키고 '더 마트'를 매각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되어 버렸다.



동준은 청소원 순례(김영애)의 병문안을 간 자리에서 노조를 합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한다. 혜미(문정희)는 '비정규직들이 나서서 싸우는 동안 뭘 했냐'고 따져 묻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동료들의 말에 이내 감정을 수그러뜨린다. 혜미는 동준에게 '왜 함께 싸우려고 하느냐?'고 묻고, 동준은 '나의 일이 됐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말한다. 결국 동준은 노조위원장을 맡아 기나긴 싸움의 최전선에 서게 된다.


현실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벽'이 자리하고 있다. 회사 내에서 받는 연봉, 처우 등에서 나타나는 차이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간극도 매우 크다.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우리를 엮지 말라'고 말한다. '자본 vs 노동자'라는 도식을 거부하고 노동자 내에서도 '계급'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정규직만을 탓할 수는 없다. 노동자를 '분리'시키는 것은 '자본'의 오래된 숙원과도 같은 과제였다. 나뉘어진 노동자는 그만큼 다루기가 쉽게 때문이다.



지난 24일, 기획재정부 이찬우 경제정책국장은 "고용의 유연성이 균형을 잡는 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방향을 잡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정규직 해고에 대한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하는 내용들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고용의 유연성(해고)이 균형을 잡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서 정규직 해고에 대한 요건을 합리화한다는 것은 결국 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지금의 비정규직처럼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 국장은 "비정규직 처우개선은 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부담이 생기는 것인데, 이익의 균형을 어디서 잡을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얘기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 합의를 이뤄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기획재정부는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비정규직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정규직조차도 비정규직화하겠다?


ⓒ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국민일보


비정규직을 향했던 칼날이 언젠가는 정규직을 향할 것이라는 전망은 서서히 현실에서 증명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외로운 싸움을 '남의 일'처럼 응시했던 정규직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카트>에서도 잘 표현된 것처럼, 실제로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처럼 여겨졌고 또 그래야만 했다. 당장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걸고 나서 싸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자본은 영악했고,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고용의 유연성의 균형을 잡겠다', '정규직 해고에 대한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칼날의 방향이 정규직을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정년이 60살까지 늘어난 상황에서 누가 정규직을 뽑으려 하겠나.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이제 싸움의 구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은 불가능하다. 각개전투(各個戰鬪)는 필패를 부른다. 이 거대한 싸움의 정체는 '자본 VS 비정규직'도 아니고, '자본 VS 정규직'도 아니다. 바로 '자본 VS 노동자'의 싸움이다. 이 지독한 싸움은 '너'의 싸움이 아니고, '나'의 싸움도 아니다. 바로 '우리'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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