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사형제 폐지,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풀어야 할 문제

너의길을가라 2014. 11. 2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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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검찰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주요 사건들의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월 24일에는 '윤일병 폭행 사망사건'의 주범인 이 병장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2014년 10월 27일에는 하루에만 3명의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11월 14일에는 동거녀 집주인 부부를 살해한 양 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결과는 '예고된' 참패였다. 60대 재력가를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됐던 김형식 서울시의원은 27일 열린 1심(국민참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아 논란이 됐던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11월 11일 열린 1심에서 징역 36년을 선고받았다. 울산 여대생을 '묻지마 살인'했던 장 씨는 11월 21일 열린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미집행 사형수는 기존의 58명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됐다.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끔찍하고 참담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사형'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지만, 법원은 '다행스럽게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있다. (최근) 스코어는 0-3. 나머지 두 명의 피고인에 대해서는 사형이 선고될까? 아무래도 그 두 재판의 결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일보


대한민국의 경우 지난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수가 처형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사형 집행은 없었다.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는 기준인 10년을 훌쩍 넘어 17년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사형을 폐지한 나라는 98개국, '사실상 사형 폐지국'은 42개국이다. EU의 경우에는 아예 사형제가 있는 국가는 가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만큼 사형제를 바라보는 선진국의 시선은 단호하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의 유인태 의원은 10년 만에 사형 폐지 법안을 다시 제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 17일에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발제자로 나섰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수정부가 사형제 폐지를 추진하는 게 효과적이고 쉬울 것이다. 진보정부 기간에 유지됐던 사실상의 사형폐지 상태를 오히려 보수정부인 박근혜 정부가 법률로 확정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국 교수는 '사실상 사형 폐지국'에서 (법률적으로) 완전한 사형 폐지국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로 "이명박 전 정부에서 3명 정도를 실제 집행하려다가 외교부와 시민사회의 반대로 집행을 유보한 적이 있고,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반드시 집행해야 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사형제 자체가 폐지되지 않는 이상 언제든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물론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와 달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사형제'에 우호적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응보(應報)형주의를 형벌의 본질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죽음으로라도 죗값을 치러야 한다', '범죄자 목숨과 인권만 중요한가',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라는 근거들은 생각보다 설득적이다. '당신 가족이 피해자였어도 그럴 수 있어?'라는 감정적인 접근도 한몫한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당사자'인 유인태 의원의 대답은 무엇일까?


"민간에게 응보 욕구라는 게 있어서, 그 사형 집행이 피해자의 어떤 감정에 일시적으로 조금 위안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요. 그건 순간뿐이거든요. 오히려 피해자들의 삶에 계속 어떤 정신적, 물질적 지원, 사회적인 관심, 공동체, 이런 것을 우리 국가와 사회가 해야 될 일이지, 그냥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그 놈 죽였으니까, 내 할 일 다 했다, 사실상 우리나라 지금 그렇게 방치하고 있지 않습니까, 피해자에 대한 아무런 지원이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런 방향으로 가야지, 사형 집행을 했다고 해봤자 그 한 순간 아마 조금의 위안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건 그 순간으로 끝나는 거거든요." (11월 18일, 한수진의 SBS 전망대)


사형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감성적인 접근이 아닌) 논리적인 이유는 '흉악범죄 억제 효과'일 것이다. 하지만 UN의 두 차례에 걸친 조사(1988년과 2002년)에서 사형과 흉악범죄 억제 간에는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사형제도가 있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흉악 범죄가 발생하고, 사형제를 폐지한 18개 주와 사형제가 있는 32개 주의 살인사건 발생률에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급기야 캐나다의 경우에는 사형제를 폐지한 이후 피살률이 줄어들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무엇보다 '오판의 가능성'은 사형제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 21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는 살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살던 윌리 브리지맨이 39년 만에 무죄로 풀려났다. 당시 12살이었던 한 증인이 법원에서 자신의 증언이 거짓이었다고 밝히면서 살인 혐의를 벗게 된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딸을 죽인 방화범으로 몰려 종신형을 받았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던 이한탁 씨도 7번의 항소 끝에 25년 만에 무죄로 석방됐다.


아무리 과학 수사가 발달하고, 공정한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린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오판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국가'라는 이름을 빌려 다른 누군가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 국가는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일까? 유인태 의원의 말처럼 "사형수들이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국가가 할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우선, 사형제의 대안으로는 '감형과 가석방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과 '감형과 가석방을 금지하는 상대적 종신형' 등이 있다. '절대적 종신형'은 사면이나 감형 · 가석방이 아예 불가능하다.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가둬둔다는 점에서 사형보다 더 잔혹한 형벌일 수 있다.


하지만 절대적 종신형에 대해서는 "수형자의 자유권과 인간존엄이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질적으로 침해한다(주현경 충남대 교수)"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상대적 종신형은 어떨까? 종신형을 바탕으로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면이나 감형 · 가석방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무기징역형과 차별성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사형제의 대안으로 종신형을 선택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절대적 종신형'이 더 많은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극악무도한 범죄로 무참히 희생된 사람들. 그 억울한 죽음, 그 고통스러운 아픔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 죽음을 또 다른 죽음으로 갚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미국의 연쇄살인사건으로 인한 피해자 가족들의 모임에서도 사형제 폐지 운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 유영철에게 피해당한 가족 중에서 사형제 폐지 운동에 나서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도 '네 부모 혹은 자식이 범죄로 그렇게 죽었어도 사형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참혹한 질문을 가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 (10월 10일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맞아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낸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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