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이케아의 일본해 표기, 동해(東海)가 처해있는 현실을 보여주다

너의길을가라 2014. 11. 2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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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가구업체인 이케아(IKEA)가 국내에 상륙한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의 분위기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국내 가구업체의 '짬짜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존재했던 만큼 가구계의 유니클로로 불리는 이케아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었다. 이른바 '이케아 태풍'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케아가 저지른 두 가지 실수 때문에 현실에서는 '미풍'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케아가 저지른 첫 번째 실수는 '가격 정책'이었다. 지난 13일 이케아는 한국어 홈페이지를 통해 8천여 개 제품과 가격을 공개했는데, 이를 통해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판매제품을 고가로 책정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톡홀름 쇼파'는 국내 가격이 일본에 비해 100만 원 비싸게 책정됐고, '베스토 부르스 장식장'은 한국 정가가 44만 9,000원인데 비해 미국에서는 211.65달러(23만 3,000원)에 팔리고 있다.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앤드류 존슨 이케아코리아 세일즈 매니저가 나서서 "한국 판매제품이 비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반대로 한국이 더 저렴한 제품도 있다. 이케아는 국가별 상황에 맞춰 1년에 한 번 가격을 책정한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게다가 (2만 9,000원에서부터 시작되는) 배송서비스 가격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이 불만은 쌓여만 갔다.



가격 논란에 이어 이케아를 궁지로 몰아놓은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일본해' 표기 논란이었다. 이케아의 공식 홈페이지에 동해가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된 사실과 그동안 이케아가 일본해로 표기된 대형 세계 지도를 미국 등에서 장식용 벽걸이 상품으로 판매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 그래도 가격 차별 때문에 불쾌해하고 있던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지난 19일, 이케아코리아의 리테일매니저인 안드레 슈미트는 세계 지도에 대해 수정 여부를 논의 중이라면서 "동해 표기 논란과 관련해 한국 소비자에게 사과 드린다"는 입장을 발표했지만, "제품 안전성에 위험이 있을 때만 리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면서 해당 제품을 리콜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과연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이러한 이케아의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당연히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케아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경기도의회 새정치민주연합 김영환 의원은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는 이케아 제품 불매 결의안'을 21일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감히(!)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이케아는 타도의 대상인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것이 단순히 이케아의 잘못인 것일까? 물론 새로운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으로서 철저한 사전조사가 부족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얽히고설킨 역사에 대해 깊은 지식이 있을 리 없는 스웨덴의 기업이 그 조그마한(상대적으로) 바다의 이름이 '동해'인지 '일본해'인지 알 게 무엇이란 말인가?


경제력으로 보나 국력으로 보나 일본이 대한민국보다 훨씬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결정적으로 '외교력'에서도 멀찌감치 앞서 있지 않은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동해'라는 표기보다 '일본해'라는 표기가 더 널리 상용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한인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버지니아주 한인들은 '동해병기 법안'을 통과시켰고, 뉴욕 주 한인들도 이를 위해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주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제작하는 안내지도 '동해'는 '일본해'라는 명칭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만큼 '세계'는 한국과 일본 간 영유권 분쟁에 대해 별다른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외국의 영토 분쟁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결국 정교하고도 발빠른 일본 정부의 움직임이 '동해'를 '일본해'로 바꿔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머리를 박고 반성을 해야 할 일이다.


- 부산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실려 있던 지도 -




지난 3월, 부산시가 개설한 부산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지도에는 버젓이 '일본해'라는 표기가 한글로 적혀 있었다. 지난 16일에는 동원 F&B와 BHC치킨의 홈페이지에서도 '일본해' 표기가 발견됐다. 구글에 제공한 지도를 확인 없이 사용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21일에는 '밴드'를 운영하고 있는 네이버의 자회사 캠프모바일의 홈페이지에서 '일본해' 표기 지도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쯤되면 '이케아'에게만 레이저를 쏘는 것이 민망한 수준이다. 국내 기업들조차도 '일본해' 표기 지도를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사용하는 상황에서, 외국 기업인 '이케아'만 탓하는 것이 도리어 부끄러워진다. 우리에게 '동해'는 당연히 '동해'이지만, 어느덧 세계는 '동해'를 '일본해'라고 부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넋놓고 있는 사이에 일본 정부는 차근차근 집요한 준비를 해왔다.


단순히 이케아 불매를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하는 국가와 기업이 이케아뿐이겠는가? 구글 지도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국가와 기업들은 '일본해' 표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것이고, 그렇게 시나브로 '동해'는 '일본해'로 인식되어 갈 것이다. 이번 이케아 상륙을 통해 우리는 '동해'의 불안한 처지를 더욱 실감나게 깨달아야만 한다. '일본해' 표기는 이케아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안일함과 대한민국 정부의 무능함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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