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임 병장의 진실은 무엇일까? 4번의 공판 과정을 들여다보다

너의길을가라 2014. 11. 2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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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장의 진실'은 무엇일까? 지난 6월 21일 강원 고성군 22사단 GOP(일반전초)에서 동료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동료 병사 등 5명을 살해하고 7명을 다치게 하고 탈영했던 임 병장은 23일 오후 자살 시도 끝에 생포됐다. 임 병장과 군의 쫓고 쫓긴 '42시간 40분'은 실시간으로 언론을 통해 중계됐고, 군의 잇단 헛발질은 헛웃음을 유발시킬 정도였다. 군의 민낯이야 하도 자주 봐야서 생경하진 않았지만 볼 때마다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역을 불과 3개월 앞둔 임 병장이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이다. '집단 따돌림' 때문이라는 임 병장 측의 주장과 집단 따돌림은 없었다는 군과 유족 측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 공판 절차 내내 이어졌다. 어느 한 쪽에 쉽사리 무게를 두기보다는 양 측의 의견을 골고루 들어가면서 과연 어느 쪽의 주장이 진실일지 조금 깊이 들어가보도록 하자.



[제1차 공판]


"공소사실 인정합니다. 무죄를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병영 내 집단 따돌림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입니다."


2014년 9월 18일. 육군 제1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제1차 공판이 열렸다. 군 검찰은 13분 동안 임 병장의 공소 사실을 낭독했다. 임 병장이 수류탄 투척 후 동료 병사들을 추격하면서 조준 사격을 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는 주장이었다. 한편, 임 병장의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대체로 맞습니다"라고 짧게 대답하며 공소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변호인은 임 병장의 볌행 동기를 밝히는 데 집중했다. 바로 '집단 따돌림이 실제 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변호인이 제시한 근거는 '13-8 소초'에서 발견된 캐리커처 그림이었다. 임 병장의 분노를 폭발시켜 총기 난사로 이어지게끔 만들었던 결정적인 요소이자 증거물이었다. 변호인은 "캐리커처 그림은 임 병장의 후임 병사들이 그린 것으로, 임 병장을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희화화했다. 일부 그림은 따가운 눈총을 받는 임 병장을 표현했는데, 이것만으로도 임 병장은 부대 내에서 집단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가족 측은 임 병장의 범행이 집단 따돌림 때문이라는 주장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유가족 대표인 권선언 씨는 "피해 장병 유가족 모두가 진심으로 임 병장을 용서하고 임 병장을 살려줬으면 한다"면서도 "이 범행을 집단 따돌림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취했다. 피해 장병인 (병장이었던) 김은현 씨도 "평소 조용한 성격의 임 병장은 소초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집단 따돌림도 없었는데 왜 참혹한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며 집단 따돌림설(說)을 부인했다.



[제2차 공판]


"소초원 40여 명 중 임 병장이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진술한 소초원은 3∼4명에 불과하다"


2014년 10월 23일. 제2차 공판에서는 1차 공판에서 제기됐던 '집단 따돌림'에 대한 변호인과 군 검찰 측의 논박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논점도 이전보다 또렷해졌다. 변호인은 임 병장의 후임과 동기 5명의 병사를 '집단 따돌림'을 입증할 증인으로 신청했고, 증인신문을 통해 임 병장이 후임병들로부터 무시를 당했고, 병사들뿐만 아니라 군 간부에게서도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을 밝혀냈다.


한편, 군 검찰은 6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수사 기록과 CCTV 등의 증거물, 증거목록을 제출하면서 "소초원 40여 명 중 임 병장이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진술한 소초원은 3∼4명에 불과하다. 따돌림 행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단적 따돌림이나 괴롭힘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를 통해 군 검찰의 전략은 분명해졌다. '따돌림'은 존재했지만 그것이 '집단' 따돌림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유가족 측은 1차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집단 따돌림'이 원인이었다는 임 병장 측의 주장에 반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6월 30일 JTBC의 보도에 따르면, 임 병장이 자신에게 살해된 5명의 장병들 가운데 4명은 따돌림과 관련이 없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설령 변호인 측의 주장처럼 '집단 따돌림'이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희생된 장병의 다수가 그와 관련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점일 뿐만 아니라, 공판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교착' 사유이기도 하다.



[제3차 공판]


2014년 11월 7일. 제3차 공판도 이전 공판과 마찬가지로 '집단 따돌림'에 대한 주장과 반박이 계속 됐다. 임 병장의 후임이었던 황 상병과 부소초장 이 중사에 대한 증인 신문과 반대 신문이 이어졌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 상병 : (증인 신문) 소초일지에 선임병인 임 병장을 희화화한 그림을 그린 것은 사실이지만 임 병장의 기분이 나쁘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임 병장을 선임병으로 대우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고, 군 검찰에서도 처벌을 각오하고 그렇게 진술했다. (반대 신문) 임 병장이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톡톡 치면서 반복적으로 관등성명을 말하도록 한 일도 있었는데, 이 같은 일로 짜증이 날 때마다 소초일지에 임 병장의 그림을 그린 기억이 있다.


이 중사 : ("B급 관심병사인 임 병장을 잘 관리해야 할 소초 간부들도 '슬라임' 등 임 병장의 별명을 부른 것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임 병장 뿐만 아니라 다른 소초원들에게도 친밀감을 주려고 별명을 부른 것이다. 임 병장이 별명을 부르는 것에 대해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는 것도 잘 몰랐다. 소초원 36명 중 서열이 6위인 임 병장이 소초원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평소 소초원들과 잘 지냈던 것으로 안다. 오히려 임 병장이 범행을 저지르고서 변명으로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고 하는 것 같다.


변호인이 주장했던 '집단 따돌림'에 대해 관련 증인들이 부인하는 증언을 함으로써 상황은 급변했다. 황 상병은 '선임병으로 대우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하면서도 오히려 임 병장이 황 상병에게 '머리를 톡톡 치면서 반복적으로 관등성명을 말하도록' 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증언은 소심한 성격에 위축되었을 것처럼 여겨지던 임 병장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중사는 임 병장의 '집단 따돌림' 주장을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 난 후 변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4차 공판]


2014년 11월 20일. 제4차 공판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변호인 측은 임 병장의 선임병, 동기병, 후임병 등 4명을 증인으로 신청해 '집단 따돌림'을 입증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증인들은 "그런 일은 없었고 보지 못했다. 집단 따돌림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며 전면 부인했다. 또, "후임병은 물론 동기병도 임 병장을 고의로 소외시킨 적이 없었다. 임 병장이 외로워 보인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조용한 그의 성격 때문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재판부는 임 병장의 범행 동기를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치료감호소 정신감정을 유치하기로 직권 결정했다. 이에 따라 5차 공판은 정신 감정이 끝난 후에 열리게 됐다. 이러한 공판 내용에 대해 임 병장은 "(제가) 자살하기 전에 남긴 유서를 보면 (진실을) 알 것이다. 죽으려는 사람이 거짓을 이야기하겠느냐"며 울먹였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열린 4번의 공판의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선, 임 병장의 주장, 다시 말해서 '집단 따돌림이 있었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은 '군이 입을 맞췄다'고 생각할 것이다. 집단 따돌림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결국 당시 소초원 40여 명의 다수를 비롯한 군 간부들은 '공범'으로 엮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책임의 소재가 부대뿐만 아니라 군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집단' 따돌림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일부의 문제(일탈)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형사소송법에서는 죽기 직전에 남긴 유서나 메모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죽음을 각오했거나 죽음에 이른 상태에서 하는 말에는 진실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임 병장이 자살 직전 남겼던 유서도 이와 같다.


물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임 병장의 주장을 100% 신뢰하고, 군과 다른 장병들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임 병장이 관심병사로 관리되고 있었다는 점, 제1차 공판에서 변호인이 임 병장에 대해 "중학교 시절부터 '왕따'를 경험한 임 병장이 이른바 '상상 살인'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설명했던 점 등은 임 병장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

거짓말을 하면 입을 다물어 손목을 잘라버린다는 '진실의 입'에 관한 전설처럼 진실과 거짓이 명확히 구분되었으면.. -


재판이 진행 중에 있고,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조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힘들겠지만, 최소한 어떤 식으로든 '따돌림' 비슷한 형태의 괴롭힘은 존재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 그것이 '집단적'으로 '체계적(조직적)'으로 행해지진 않았을 수 있다. 현재 군 검찰에서 주장하는 것은 '개별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이고, 그것이 군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에 대해 군이 기존에 취해왔던 입장이이도 하다.


지난 6월 23일, 정락인 전 시사저널 기자가 <미디어오늘>과 했던 인터뷰 내용은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을 만큼 의미있다. "사건이 터지면 군은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하는데 숱하게 터진 군대 내 자살사건과 같이 특정 개인에게 돌리거나 피의자와 피해자에게 돌려 근본적인 군의 내부의 문제를 은폐하거나 엄폐했는데 이번 사건도 그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건의 원인을 분명하게 밝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을 통해 사건의 진상이 분명히 밝혀질까? 군으로부터 결코 독립적이지 않은 '군 검찰'과 '군사법원'이 주도하는 재판에서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수 있을지 의문 부호가 무한대로 달라붙는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국민들이 신뢰를 보낼지 의문스럽다.


현재까지의 공판 진행 상황만 놓고 보면, 결코 임 병장에게 유리한 구도로 흘러가고 있진 않아 보인다. '정신 감정'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임 병장은 이대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 과연 군은 얼마나 책임을 지고 쇄신과 변화를 할 것인가? 또 다시 '한 사람'의 문제로 '군 문제'를 축소 · 은폐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군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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