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성희롱엔 농담으로 대응? 고용부의 괴상한 면접 요령, 그게 현실

너의길을가라 2014. 11. 1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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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채용정보 사이트 '워크넷'에 성차별적인 면접 요령이 모범답안으로 실려 있어 네티즌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특히 성희롱과 성차별 등 불합리한 사회적 문제들을 규제하고 시정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면접 모범답안'으로 사실상 성희롱과 성차별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내용들이 실려 있었던 것일까? 여성흡연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은 딱히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성희롱에 대해서는 '질문'과 '답변' 모두 문제가 있었다. 우선, '지나치게 예민한 여성 사원에게 곤란을 당한 회사도 있다'는 등 질문 속에 이미 성희롱 문제를 '지나치게 예민한 여성 사원'이 일으키는 분란으로 여기는 시각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답변'은 더욱 가관이다. 성희롱은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차이" 때문이라나? "성에 대한 가벼운 말 정도라면 신경을 쓰지 않겠고, 농담으로 잘 받아칠 정도의 여유도 필요하다"는 답변을 달아 놓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결혼은 언제 할 예정인가'라는 질문에는 "'현재로서는 결혼 계획이 없다'고 답해야 한다. 업무를 제대로 할 만하면 퇴사하는 일이 흔하기에 결혼 예정자나 오래된 애인이 있으면 채용을 꺼린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일에 열중하고 싶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성명을 통해 "여성 구직자에게만 결혼 계획이나 육아 문제를 질문하는 것은 명백한 성차별인데도 이를 규제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성차별을 인정하고 있다. 여성을 부차적 업무를 하는 보조노동자나 임신·출산 전까지만 일하는 임시노동자로 본 것"이라고 고용노동부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돼 삭제했다. 정확한 게재 경위를 파악한 뒤 고용정보원 직원을 대상으로 성교육 등을 검토하겠다"며 꼬랑지를 내렸고, 관련 내용도 금세 삭제됐다.


관련 내용이 삭제되고, 고용정보원 직원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실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현실'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눈가림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성희롱 또는 성차별에 있어서는 이론과 실제의 괴리가 특히 심하다. 어쩌면 워크넷에 실려 있는 면접 요령은 그러한 현실을 매우 적극적으로 반영한 실용적인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고용노동부가 할 짓은 아니지만 말이다.



tvN 금토드라마 <미생> 5국에서는 직장 여성이 겪는 성차별과 워킹맘의 딜레마가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도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능력으로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는 선 차장도 한꺼풀만 들여다보면, 결국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고충을 겪는 워킹맘이었다.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결국 개인의 희생말고는 답이 없었다. 또, 여성들이 상시(常時)로 당하는 성희롱 문제는 또 어떠했는가?


드라마에서 마부장은  "그게 어떻게 성희롱이냐. 그렇게 파진 옷 입은 걔가 잘못 아니냐. 그렇게 파진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일 때마다 가리기에 '그럴거면 왜 그런 옷을 입고 왔냐'고 한 게 성희롱이냐"며 당당히 소리쳤다. "'내놓고 다녀도 볼 만한 것도 없네' 라고도 했잖냐"며 불쾌함을 드러낸 선 차장에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러니까 그 말이 성희롱이냐. 커피 좀 타오라는 것도 성희롱 시집 못 간 것 걱정하는 것도 성희롱이란다. 이렇게 기 센 여자들 때문에 살 수가 없다"며 항변(?)했다.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성에 대해 회사는 고까운 시선을 보내고, 임신을 한 여성에 대해서 불편한 시선을 대놓고 보내곤 한다. 직장 내 성희롱은 너무도 빈번히 일어나는데, '워크넷'의 질문처럼 가해자들은 '(지나치게) 도량을 넓혀'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현실이 이러하니, 약자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은 알아서 길 수밖에 없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및 성추행을 당했을 때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한 비율이 절반 이상인 60.3%(복수응답)나 됐다. 이유는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63.4%, 복수응답),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 같아서'(44.4%),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43.1%) 순이었다. 『삼성을 살다』의 이은의 씨처럼 상사의 성희롱에 맞서 싸우는 선택을 하는 여성은 극히 드물다. 그녀는 5년여의 싸움 끝에 승소했지만, 이런 피 말리는 기나긴 싸움을 개인이 감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희롱을 당하더라도 '농담으로 받아치는 여유'를 가져야 하고, 결혼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다. 일에 열중하고 싶다'고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바꿔나가야 할 고용노동부가 앞장 서서 '면접 요령'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그저 존재의 이유를 상실했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한편,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성희롱과 성추행에 대한 왜곡된 시각들은 또 어떠한가? <미생>에서 그려진 성희롱에 대해서는 그토록 분개했던 여성들이 개그우먼 맹승지의 사례에서는 이중적인 태도가 엿보이는 점은 씁쓸하기만 하다. 맹승지는 한 방송에서 "한 선배와 단둘이 남았을 때 성추행을 당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오히려 날 이상한 사람을 만들었다"며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 중에는 "같은 여자로서 이런 말 하긴 싫지만 맹s 니가 너무 싸보여 얕보인 게 아닌가 싶다. 풍행을 단정히 해라"는 글이 달려 있었고, 찬성과 반대의 비율은 2 : 1 이상이었다. 여기에는 맹승지에 대한 악감정이 포함된 것 같지만, 그 부분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성추행(성희롱)에 대한 인식, 그것도 여성의 시각이 과거의 매우 보수적인 남성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바꿀 생각은 않고, 이를 적극 반영(?)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면접 요령. 그리고 성추행(성희롱)을 바라보는 (남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들의 이중적인 시각.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 만약 당신이 실제로 면접을 보게 됐을 때, 합격할 생각이 있다면 '워크넷'의 모범답안처럼 이야기해야 할 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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