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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 거부? 강제 채혈? 노홍철의 음주운전을 둘러싼 오해와 왜곡

너의길을가라 2014. 11. 1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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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두 편의 글을 통해 '노홍철 음주운전 사건'을 다룬 바 있다. 사건이 발생했던 초기부터 언론들은 부정확한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주장'이 '팩트'가 되어 돌아다녔고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음주량이 얼마이건, 운전 사유가 무엇이건 간에 '술을 마시고 운전했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그럼에도 일부 팬들은 균형을 잃고, 노홍철의 주장만을 근거로 옹호하기에 바빴다.



앞선 두 글은 왜곡된 사실과 위험한 쉴드에 대한 글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또 한 번 글을 쓰는 까닭은 노홍철이 요구했던 채혈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여전히 왜곡된 사실들이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팩트부터 확인해보자. 강남경찰서는 채혈 측정으로 인한 노홍철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05%라고 밝혔다. 이는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치다.


결국 와인 한 잔을 마셨다는 노홍철의 주장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물론 이를 탓할 생각은 없다. 일반적으로 음주 단속에 걸린 운전자들은 자신이 마신 술의 양을 실제보다 적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한 병을 마셨다면 2~3잔 정도라고 말하는 게 보통이다. 서류에 기재하기 위해 묻는 것일 뿐, 어차피 측정을 하면 수치가 나오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물론 이 글은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나열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이미 넘칠 만큼 쏟아진 노홍철 비판에 발을 뻗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로 '채혈'과 관련한 잘못 알려져 있는 사실들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홍철이) '채혈을 요구'한 것을 매우 잘못된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사람들은 채혈을 마치 '특혜'로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비판을 하더라도 정확한 법과 상식에 근거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관련 법률인 도로교통법 제44조부터 확인해보도록 하자.


제44조(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운전 금지)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등을 운전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경찰공무원은 교통의 안전과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거나 제1항을 위반하여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등을 운전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운전자가 술에 취하였는지를 호흡조사로 측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운전자는 경찰공무원의 측정에 응하여야 한다.

제2항에 따른 측정 결과에 불복하는 운전자에 대하여는 그 운전자의 동의를 받아 혈액 채취 등의 방법으로 다시 측정할 수 있다.


도로교통법 제44조는 음주운전을 금지하는 내용과 이를 단속하는 과정과 방법을 담고 있다. 제2항에서는 음주 운전자가 경찰공무원의 측정에 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3항에서는 측정 결과에 불복하는 운전자는 채혈 등의 방법으로 다시 측정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경우가 채혈까지 이어지는 가장 일반적인 케이스다.


광주경찰청 제공


음주 단속은 기본적으로 1. 음주 여부 확인 2. 음주 측정 의 두 단계로 나뉜다. 도로 주행 시 경찰관(대부분 의경)이 경광봉을 흔들며 정차를 요구한다. 그리고 음주 여부만 확인할 수 있는 측정기를 운전자의 입 쪽으로 가져간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짧은 '삑!' 소리와 함께 초록불이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술을 마신 상태라면 긴 '삑!' 소리와 함께 빨간불이 들어오게 된다. 음주 사실이 확인된 운전자는 일단 차에서 내리게 되고, 경찰관이 차를 갓길에 주차한다. 이때 운전자는 음주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 이동한다.


경찰관은 음주 운전자에게 최초 음주 시간 등을 묻고, 입 안을 헹굴 물을 제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시간(음주시부터 구강내잔류 알콜 소거에 20분 소요)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과대 측정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음주 측정을 했을 때, 수치가 0.05% 이상이 나오면 정치 수치에 해당하므로 단속이 된다. 물론 그 미만이 나온다면 훈방 조치된다.


음주 측정 끝에 수치가 0.05% 이상이 나왔을 때, 운전자의 선택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를 수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측정 결과에 불복하고 채혈을 요구하는 것이다. 도로교통법 제44조는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채혈 요구는 특혜가 아니라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노홍철은 음주 측정을 하지 않고(거부하고) 바로 채혈을 요구했잖아?!



13일 한 매체는 '노홍철이 측정기를 손으로 밀며 아예 입을 대지도 않아 실랑이가 한동안 계속됐다'고 보도했고, <디스패치>는 '1차 호흡 측정을 거부하고 채혈 측정을 받았다'고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대해 노홍철은 사과문을 통해 "음주 측정 당시 경황이 없어 머뭇거린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음주운전이라는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최대한 경찰의 지시를 순순히 따랐습니다. 더군다나 측정기를 손으로 밀치며 강하게 거부했다는 '실랑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또, 노홍철은 "음주 측정 거부로 애를 먹던 경찰은 노홍철의 의사와 상관없이 병원으로 데려가 음주 측정을 위해 채혈한 것"이라는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호흡 측정이 아닌 채혈 검사를 하게 된 경위는, 현장에 있던 검문 중이던 경찰에게서 음주 측정 방법들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현장에 도착한 매니저와 의논 끝에 채혈 검사를 제가 선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측정 거부'라는 등의 논란이 벌어지고, 노홍철이 연예인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체표 대신 채혈한 것이라는 '특혜' 논란도 함께 붉어졌다. 우선, '노홍철의 의사와 상관없이' 채혈을 했다는 한 매체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당연히 아닐 수밖에 없다. 경찰은 '강제채혈'을 할 수 없다. 채혈은 '운전자의 동의를 받아'야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혈을 하려면 채혈 동의서에 본인이 서명을 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강제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약 음주 운전자가 음주 측정을 거부한다면 경찰은 교통단속처리지침 제38조(측정요령) 제11항에 따라 음주 측정 불응에 따른 불이익을 10분 간격으로 3회 이상 명확히 고지하고, 이러한 고지에도 계속해서 측정을 거부한다면 측정결과란에 측정거부X로 기재하여 주취운전자 적발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 물론 실무에서 이런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어지지 않고 '측정 거부 끝 측정' 혹은 '채혈 요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제38조(측정요령)


④운전자에 대한 음주측정 결과 혈중알콜농도 0.05% 이상으로 주취운전자 적발보고서를 작성하여야 하는 때에는 피측정자에게 측정결과와 채혈에 의한 측정방법이 있음을 고지하여야 하며, 체포시에는 미란다원칙을 명확히 고지하고 이의가 없음을 확인한 후 별지 제16호 서식의 주취운전자 정황진술보고서에 정확하고 상세하게 기록하여 공소유지 등을 위한 수사자료를 확보하여야 한다.

⑥피측정자가 채혈을 요구하거나 측정 결과에 불복하는 때에는 주취운전자 적발보고서를 작성한 후 즉시 피측정자의 동의를 얻어 가장 가까운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별표 제1호에 의한 방법으로 채혈한 혈액을 별지 제17호 서식에 의하여 반드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의뢰 하여야 한다.   

음주정도 측정시 처음부터 채혈을 원하는 운전자에 대하여는 주취운전자 적발보고서 측정결과란에 채혈요구X로 기재하여 작성하고 전산입력하며, 감정결과에 따라 주취운전자 적발보고서를 별도 작성하여 합철․처리한다. 


'교통단속처리지침'에는 채혈 요구의 두 가지 유형이 모두 명기되어 있다. ④항에서는 음주 측정 결과 0.05%이상(정지 수치)이 나왔을 때 피측정자에게 채혈에 의한 측정방법이 있음을 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⑧항에서는 '음주정도 측정시 처음부터 채혈을 운전자'에 대한 규정이 나와 있다. 결국 호흡에 의한 음주 측정을 하지 않고, 곧바로 채혈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주 단속에 걸려보지 않은 일반 시민들로서는 당연히 '채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측정 방법에 호흡 측정과 채혈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고, 운전자는 어떤 방법을 선택할지 결정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채혈은 호흡 측정에 비해 수치가 더 높게 나오기 때문에(채혈 수치가 더 낮은 경우는 20번 중 1~2번에 불과)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따라서 불복의 수단으로 채혈을 요구하는 것은 정말 억울할 경우에나 하는 것이지 기분 따라 할 일은 아니다. 벌금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자칫 정지가 취소로 되는 경우까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음주 측정을 하지 않고 곧바로 채혈을 요구한 것은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놀랍다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다. '특혜'라고 볼 일은 더더욱 아니다.



언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한 것이 '측정 거부'라는 표현은 실제의 상황보다 훨씬 더 위험하게 읽힌다. 음주 단속을 할 때, 순순히 온힘을 다해 측정기에 바람을 불어 넣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호흡이 부족한 '척'을 하며 바람을 적게 분다. 측정기 속으로 일정한 공기가 들어가야 측정이 완료되기 때문에 이렇게 '꼼수'를 부리면 당연히 측정기는 오류가 나게 된다. 대부분 음주 측정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여러 번 반복된다. "더더더더더더더~!"라는 경찰관의 외침과 함께 말이다.


노홍철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바람을 적게 불었든, 측정을 피하거나 늦추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든 이렇듯 측정을 거부(사실상 기피)하는 것은 대부분의 음주 운전자들이 보이는 행동이고, 그가 채혈을 요구한 것은 당연한 권리의 행사이다. 음주운전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노홍철을 비판하는 것은 개인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 정확하지 않은 사실(혹은 법 지식)을 토대로 왜곡된 내용을 퍼뜨리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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