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내부 고발을 바라보는 시선,<미생>이 던진 고민에 응답하다

너의길을가라 2014. 11. 2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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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드라마에 이토록 많은 이야깃거리가 담겨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바로 <미생> 말이다. 직장인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 깊은 공감을 얻고 있는 <미생>은 그동안 학벌에 의한 차별과 낙하산 문제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고, 워킹맘들이 처해 있는 현실과 성차별과 성희롱 등 회사(사회)에서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대우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보여줬다. 또, 접대 문화 등 사회 내에 만연해 있는 폐습(弊習)을 꼬집기도 했던 미생이 이번에는 '내부 고발'을 조명했다.



tvN 드라마 <미생> 11국에서는 요르단 사업과 관련해 박 과장(김희원)의 비리를 밝혀낸 공으로 오 과장(이성민)이 차장으로 승진했지만, 영업 3팀은 회사 내에서 내부 고발의 불편한 시선을 받는 장면들이 그려졌다. 12국에서는 장그래(임시완)이 파격 제안한 요르단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들이 묘사됐는데, 영업 3팀을 바라보는 타 부서의 부정적인 시선과 영업 3팀 내부의 균열과 혼란이 그려졌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권선징악'이고, '정의로운 일'이었지만, 내부의 사정은 천지차이였다. 내부고발의 대가는 혹독했다. 회사 내에서 영업 3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고발자'를 대하는 것이었고, 부담스럽고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비리 때문에 엎어진 요르단 사업을 영업 3팀에서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마 부장은 "누가 떡 먹다가 죽었는데 그 떡을 주워먹는 꼴"이라며 영업 3팀을 강하게 비난했다.



"지금 사내에서 영업 3팀 바라보는 시선들 모른데요? 가뜩이나 내부고발자 보는 분위기잖아요. 모두들 편치 않아 한다고요"라는 장백기의 말대로였다. '내부 고발자'가 발 디딜 곳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미생>의 경우에는 '개인'이 아니라 '팀'이기 때문에 훨씬 나은 상황이다. 서로 기대고 위로할 상대가 있다는 것만큼 위안이 되는 것은 없다. 장그래의 담담한 목소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내부 고발'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3팀 내에서 오 차장님과 우리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지만 복도만 나서도 우리 3팀을 보는 남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영업 3팀이 한 일은 단지 팀 차원의 태만한 사람을 혼내준 것이 아니라 회사의 곪아가는 환부를 도려낸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팀은 내부고발로 인한 불편한 시선을 받고 있었다. 왜 조용히 처리하지 못했느냐, 동료를 버리고 이익을 취했느냐, 너희들은 깨끗하냐, 사직서를 낸 상무님과 전출된 사람들에 대한 동정론이 회사 전산망을 타고 전파됐다. 하지만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조금씩 불편해질 거다. 절대 반응하지 말고. 중요한 건 해야할 일을 했다는 거야. 이것만은 놓치지 말고 가자"


"오 차장님은 가이드를 만들어줬다. 우리는 동의했다. 견뎌내는 일만 남은 거다"


ⓒ 한겨레


"옳고 그름을 외면한 채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비겁하고 소극적인 태도. 정말 부끄럽게도 (나는) '영혼 없는 공무원' 그 자체였다." - 장진수, 『블루 게이트』 -


<미생>이 던진 서브를 리시브하는 차원에서 '내부 고발'에 대해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문득 '내부고발학(學)'이라는 장르가 생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내부고발사(史)'를 한꺼번에 정리한다거나. 내부 고발자는 공익 제보자라는 공식 명칭 이외에 영어로는 1972년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정보 제공자의 암호명 '딥 스로트'에서 유래한 '딥 스로트(deep throat), 영국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어 위법 행위를 지적했던 것에서 유래한 '휘슬 블로워(whistle-blower)'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한국 사회에 불어온 자유의 바람은 내부 고발을 촉발했다. '내부 고발자'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등장한 건 1990년 이문옥의 양심선언이 계기였다. 이문옥 당시 감사원 감사관은 재벌의 로비로 감사원 감사가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또, 재벌 기업의 부동산 보유 비율이 은행감독원의 발표(1.2%)보다 훨씬 높은 43.3%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도 함께 알렸다. 결국 그는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구속됐지만, 이후 그를 옹호하는 여론과 시민 단체의 요구로 한 달 보름 만에 풀려났다.



내부고발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1990년대이다.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불법사찰 폭로사건(1990년 10월), 군 내부의 부재자투표 비리를 폭로한 이지문 중위 사건(1992년) 등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가 되면서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내부 고발의 범위가 확대됐다. 주한민군의 포름알데히드 무단방류, 인청공항 부실시공, 사학재단이나 민간기업 내부의 비리 등이 모두 '내부 고발'을 통해서 밝혀졌다.


2003년에는 대한적십자사 직원들이 적십자사의 혈액 관리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언론에 폭로했고,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 산하에 혈액관리 전담부서가 신설 등 안전한 혈액 관리를 위한 혁신이 이뤄졌다. 또, 공지영 작가의『도가니』의 배경이 됐던 광주인화학교의 성폭행 사건도 교사 전응섭 씨의 신고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대표적인 내부 고발 사건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국가 · 사회의 부패와 비리들이 '내부 고발'을 통해 밝혀졌다. 집단과 조직, 더 나아가 사회의 암(癌)적인 부분들을 도려내기 위해서 '내부 고발'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내부 고발'은 응당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외국 기업의 경우에 내부 고발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데 반해 대한민국에서는 '배신자'로 낙인 찍히고 결국 사회에서 매장되어 버린다.


내부 고발자들의 70% 이상이 고발에 따른 '보복'을 당했다며 보호를 신청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감봉, 전보 조치, 재계약 취소, 파면 등 직접적인 보복도 겁이 나지만,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미생>에서처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일 것이다. 그야말로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고 할 수 있다.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앞서 잠깐 언급했던 이지문 중사)는 "성공적인 내부고발이 되기 위해선 내부고발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내부고발한 내용이 진실규명으로 이어져 이에 합당한 처분이 이뤄져야 한다. 사실 성공적인 내부고발은 겨우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며 부정적인 내부고발의 역사를 담담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오히려 내부고발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3조(국가 등의 책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공익침해행위의 예방과 확산 방지 및 공익신고자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11조(인적사항의 기재 생략 등) ① 공익신고자등이나 그 친족 또는 동거인이 공익신고등을 이유로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조사 및 형사절차에서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제7조, 제9조부터 제12조까지의 규정을 준용한다.


제12조(공익신고자등의 비밀보장 의무) ① 누구든지 공익신고자등이라는 사정을 알면서 그의 인적사항이나 그가 공익신고자등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 또는 보도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공익신고자등이 동의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13조(신변보호조치) ① 공익신고자등과 그 친족 또는 동거인은 공익신고등을 이유로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입었거나 입을 우려가 명백한 경우에는 위원회에 신변보호에 필요한 조치(이하 "신변보호조치"라 한다)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위원회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경찰관서의 장에게 신변보호조치를 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제15조(불이익조치 등의 금지) ① 누구든지 공익신고자등에게 공익신고등을 이유로 불이익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② 누구든지 공익신고등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공익신고자등에게 공익신고등을 취소하도록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



물론 내부고발자, 즉 '공익신고자'를 위한 법이 존재한다. 바로 2011년 제정된 공익신고자 보호법이다. 공익신고자의 인정사항이 공개되지 못하도록 하고, 공익식고자에게 불이익이 가해질 경우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문제는 전체 법률의 15% 정도만 보호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정부 기관이 아닌 언론에 제보하면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게 된다.


이지문 상임이사는 "공익제보자가 합리적인 보호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기업 내부에서 승진 가산점을 주는 등 혜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고,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사회 전반에 내부고발자는 배신자, 고자질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돼 있다.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강력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내부 고발이 조직의 '종양'을 도려내고, 장기적으로는 비리와 부정을 막을 수 있는 '예방약'(기업건강 챙기는 예방주사.. 내부고발을 허하라)이라는 것은 정설이다. 다수의 사람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내부 고발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경멸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멸시와 부정으로 그득하다. 그것이 '정의'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이 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4대강 사업 · 자원 외교 · 방산 비리를 의미하는 '사자방', MB 정부의 대표적인 비리 등 대한민국 사회에는 여전히 밝혀내야 할 사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결국 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외부적인 접근만으로는 어렵다. 내부 고발, 다시 말해 공익 제보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건 '양심'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인생이 달린 문제다. 내부 고발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정부, 공익 제보자의 신변과 사회적 지위를 지키지 않는 정부. 어쩌면 거대한 비리와 부패를 방치하고 묵인하고 있는 가장 큰 책임자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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