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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출근>이 보여준 대기업의 상명하복 문화

너의길을가라 2014. 9. 2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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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출근 시간. 왜 직장인들은 '모두' 1층 로비에서 한참동안 줄을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기다림의 시간은 하염없이 계속되고, 이러다가 혹시 지각을 하진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시계를 들여다본다. 왜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장면 2. 점심 시간. 왜 직장인들은 이토록 길고도 긴 '밥줄'을 인내해야 하는 것일까? 어째서 같은 시각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각에 후식(각종 음료)을 먹어야만 하는 것일까? 부서 별로 출근 시간을 조절하고, 식사 시간을 조정한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혼란' 아닐까?



장면 3. 후식 시간. 왜 직장인들은 먹고 싶지도 않은 후식을 먹기 위해 볼불복에 참여해야만 하는 것일까? 먹고 싶은 사람만 자신의 돈을 지불해서 구입하면 안 될까? 팀원 간의 화합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이나 성향을 존중될 수 없는 것일까?



tvN <오늘부터 출근>은 관찰카메라의 직장 버전이다. 연예인들을 대기업에 투입해 1주일 간의 '직장 체험'을 하게 하고, 그 모습들을 관찰카메라에 담아 다양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취지이다. 방송 2회 차를 맞은 <오늘부터 출근>은 대한민국 대기업 문화의 명(明)보다는 암(暗)을 더 잘 드러내주고 있다.


<오늘부터 출근>에서 나타난 소위 '대기업 문화'라는 것이 비단 LG유플러스만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촬영의 배경이 되는 것이 LG유플러스이다보니 심지어는 "왜 업계 3위밖에 하지 못하는지 알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방송을 통해 보여진 '대기업 문화'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



입 사 후 첫 출근. 부푼 꿈을 안고 집을 나서 사무실로 들어왔건만 이들에게 주어진 업무는 없었다. 가장 큰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을 이들에게 주어진 몫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신입사원들이 그 시간동안 부서의 분위기를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둘러대겠지만, 그것을 꼭 망부석처럼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파악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차라리 업무에 빠르게 녹아들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 렇게 눈치를 보는 시간이 계속되고, 드디어 신입사원들에게 '첫 업무'가 주어졌다. 부푼 꿈을 안고 지시 사항을 확인해보지만, 이게 웬일인가? 그들에게 주어진 '첫 업무'는 다름 아닌 그저 '잡일'이었다. 은지원과 로이킴은 '택배 부치기'를 부여받았고, 박준형과 김성주는 '창고 비품 정리'에 나서야 했다.


선배들의 눈치를 살피며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보다야 무슨 일이든지 하는 편이 심적으로 훨씬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성주의 말처럼 '과연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거지?'라는 의문을 던질 만큼 '업무 관련성'이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홍진호에게 주어진 '업무'는 정수기 물통을 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신입이 전담해서 해야 할 일이라나? 대기업에서 정 수기의 물이 떨어진 것을 확인한 사람이 물통을 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인 모양이다. 신입은 정수기의 물이 떨어져 하늘 같은 선배님들이 물을 마시는 데 불편이 없도록 수시로 정수기 물통을 체크해야만 한다. 정말이지 한심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바로 기업 내에 뿌리박힌 '상명하복 문화'였다. 이는 직장 동료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준을 넘어 철저한 복종을 강요하는 강압적인 모습이었다. 출근부터 시작된 윗사람 눈치보기는 하루종일 이어졌고, 비위를 맞추고 아부를 떨어야만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가 있었다.


회 의 시간이 다가오면 신입은 선배들이 어떤 음료를 마실 건지 미리 주문을 받고, 음료를 사러 가는 것은 물론 회의실에 세팅까지 마쳐야 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후배에게 '존대말'을 썼다가 상사로부터 '후배한테 그래?'라는 질책을 들어야 한다. 서로 존대말을 쓰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까? 무조건 선배는 후배에게 하대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식사 시간에도 '상명하복'은 여전히 이어졌다. 팀원들끼리 우르르 몰려가서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해야만 하고, 팀 장이 숟가락을 놓으면 다른 직원들도 식사를 멈춰야 했다. 옆에 있던 직원은 '상사의 식사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아부성 멘트까지 서슴없이 날리고 있다. 후식을 먹기 위해 또 다시 우르르 몰려가서도 배달은 막내의 몫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여기가 군대인지 사회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더 가관이었던 것은 '회식'이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 즉 비공식 업무시간이라나?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는 순서와 잔을 놓는 순서도 윗사람에서 아랫사람 순으로 정해져 있었고, 이를 어길 시에는 사나운 눈초리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상사를 향해 건배를 제안하면서 '찬양의 멘트'를 바치는 것은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직원들은 앞다퉈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고, 찬양의 멘트를 부르짖는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윗사람의 몸에 빗방울이 닿을까 우산을 씌워주며 택시까지 잡아주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상명하복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오늘부터 출근>은 본래의 기획의도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바로 대한민국 대기업 문화의 실체를 드러내주는 것 말이다. 과연 기업이 효율과 창의성을 생명처럼 여긴다는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제 분명히 알았다. 여전히 대한민국 대기업은 '상명하복 문화'에 젖어있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개인들을 길들여가고 있다.


창의성을 말살하는 폭압적인 구조는 말할 것도 없다. 청바지를 입어서도 안 되고, 양말은 검은색에 발목을 가리는 것을 신어야만 한다. 세세한 복장까지도 규율에 포함시켜 지적하는 기업 문화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의 개성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갑갑한 조직 문화 속에서 무언가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 아닐까?


신입사원이 기본 업무에 익숙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신입사원이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 당연히 '참신함' 아닐까?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펼쳐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있겠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에 가까웠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조직 생활에 길들여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착실하게 길들여진 직장인들로 가득한 대기업 그리고 대한민국. 우리의 미래가 어떠할지를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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