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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 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한 재해석 시도.. 과연 통할까?

너의길을가라 2014. 9. 2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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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빈틈이 없었다. SBS 드라마 <비밀의 문> (윤선주 극본, 김형식 연출) 첫 회를 보고 난 후의 소감은 그 짧은 한마디로 충분할 것 같다. 사실 '한석규'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도 모든 설명이 되지 않았던가? <비밀의 문>을 향해 쏟아지는 찬사 속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것으로 이 드라마에 대한 무한한 기대를 표현하고자 한다.



사극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아역 배우를 등장시켜 시청자들을 서서히 극의 흐름 속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느긋한 예열 작업을 통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면서 극의 이해를 원활하게 하는 친절한 전개 방식이다. 두 번째는 폭탄을 안기듯 급박한 전개를 통해 시청자들의 혼을 빼버리는 것이다. 미스터리 형식을 취했을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충분한 사전 설명이 없기 때문에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다.


"수결을 하시면 용상은 저하의 것이나 아니면 죽음 뿐이다"


<비밀의 문>은 30년 전 왕세자였던 영조(한석규)가 김택(김창완)과 노론의 압박 속에 '맹의'에 수결을 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첫 회 내내 반복적으로 언급됐던 '맹의'는 왕세제였던 영조와 노론의 정치적 야합의 산물이다. 맹의가 존재하는 한 영조는 노론에게 발목이 잡혀 있을 수밖에 없고, 노론은 그 약점을 빌미 삼아 영조를 견제하고 심지어는 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누릴 수 있다.


물론 '맹의'는 역사적 팩트가 아니라 상상력에서 비롯된 드라마적 장치다. 물론 그 안에 담겨 있는 역사적 함의마저 거짓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영조와 노론은 애증의 관계라고 할 만큼 정치적으로 얽히고설킨 미묘한 관계였다. 노론은 왕세제였던 영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한편으로 영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는 그 '정치적 빚'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했다.



그에 대한 복잡한 설명을 없애고, '맹의'라는 상징물을 전면에 꺼내는 <비밀의 문>은 자칫 시청자들에게 어렵고 불편한 드라마로 비칠 수 있었다. 그 약간의 난해함을 무난하게 덮어버린 건 역시 한석규의 호연(好演)이었다. 도입부의 2분 남짓되는 짧은 시간동안 한석규는 표정 연기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압도하며 '영조'라는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긴 설명보다 그의 연기가 오히려 더 적확한 이해를 도왔다고나 할까?


쏟아지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비밀의 문' 첫 회의 시청률은 8.8%에 불과했다. 지난 주에 막을 내린 <유혹>에 비해 2% 떨어진 수치다. 최근 웰메이드 드라마들의 성적이 신통찮았던 점에 비춰보면, <비밀의 문>의 시청률도 낙관하긴 이르다. 명품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았던 <괜찮아, 사랑이야>의 경우에도 10%안팎의 시청률에 그치지 않았던가.


물론 <비밀의 문>의 경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가족들이 함께 둘러앉아서 즐길 수 있는 사극을 포맷으로 하고 있다는 장점과 잇따르고 있는 호평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점이 변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미스터리' 장르가 갖고 있는 '어려운 드라마'라는 높은 진입 장벽을 얼마나 낮추느냐가 관건이다.




"병이 발작할 때에는 궁비와 환시를 죽이고 죽인 후에는 문득 후회하곤 하였다" (한중록)

"애민하는 마음이 깊어 성군의 자질이 충분했다" (정조의 추도문)



한편, <비밀의 문>이 시도하고 있는 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한 역사적 재해석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질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기존의 역사학계에서는 영조를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비정한 혹은 치매 걸린 늙은 왕으로, 사도세자의 경우에는 '한중록'에 근거해서 광기에 사로잡혀 미쳐버린 왕세자로 이해했다. 하지만 <비밀의 문>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父子)를 바라보고 있다.


<비밀의 문>은 <영조실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사도세자가 15세부터 28세까지의 대리청정 기간동안 무난하게 정사를 이끌었던 점에 방점을 찍고 있는 듯 하다. 사도제사의 죽음을 노론과의 정치적 싸움에 따른 패배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도세자에 대한 한중록과 정조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이러한 재해석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근거다.


'강력한 왕권을 지행하는 영조와 백성들을 위한 공평한 세상을 꿈꾸는 세자 이선의 갈등이야기에 궁중 미스터리'가 제작진이 내걸고 있는 <비밀의 문>의 시놉시스인데, 여기에서 '공평한 세상을 꿈꾸는'이라는 수식어를 갖다붙인 부분은 다소 과한 설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사도세자에 대한 재해석은 '역사 왜곡 논란'의 주요한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한 번은 영조가 돼서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다"


지난 2011년 방영됐던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석규(세종)가 보여준 연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 그 이상이었다. 한석규의 열연과는 별개로 <뿌리깊은 나무>는 후반부로 가면서 판타지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많이 가미되면서 드라마가 산으로 가는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비밀의 문'에서는 그런 불안 요소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다'는 한석규의 말처럼 '비밀의 문'에서는 배우들의 내면 연기가 보다 충실하게 담길 것으로 보인다. 대사뿐만 아니라 표정과 호흡, 그리고 여백마저도 연기로 승화시키는 한석규의 연기를 마음껏 감사할 수 있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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