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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회담>과 기미가요, 두 번의 사과로는 부족한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4. 10. 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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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일이 잘 풀릴 때 더욱 조심하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JTBC <비정상회담>은 최근 가장 핫한 예능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외국인들이 출연해서 하나의 주제에 대해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알아간다는 참신한 기획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으면서 방송마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때로는 심도 있는 토론이 이어졌고, 때로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게다가 개성 강하고 섹시 '터지는' 출연자들의 매력은 20~30대 여성 시청층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프로그램 성공의 바로미터인 시청률에서도 상승 곡선을 그리며 순항 중이었다. 지난 27일 방송은 시청률조사기관 TNmS의 경우 4.7%, 닐슨 코리아의 경우에는 5.41%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렇듯 승승장구하며 탄탄대로를 달릴 것만 같았던 <비정상회담>이 제작진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인해 좌초 위기에 놓였다.


"일본 천황의 통치 시대는 천년 만년 이어지리라. 모래가 큰 바위가 되고, 그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 (기미가요의 가사 일부)



사건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지난 27일 방송에서는 일본 배우 다케다 히로미츠가 기존의 일본 대표인 테라다 타쿠야를 대신해 출연했는데, 그의 등장과 함께 나온 배경음악이 바로 '기미가요[君ガ代]'였던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기미가요는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노래로 1880년 메이지 일왕의 생일 축가로 처음 연주되면서 국가(國歌)로 정착이 됐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조선 총독부가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기미가요를 조선인에게 습득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면서 폐지됐지만, '국기(國旗) 및 국가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가로 법제화됐다. 지난 2013년 자민당의 첫 전체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기미가요를 제창하고 난 후
"업무 시작 때 제대로 기미가요를 부를 수 있는 정당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이는 일본을 되찾는 첫걸음이 될 것"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일 간의 역사적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고, 사과와 반성은커녕 일본이 여전히 군국주의의 길을 걷고자 하는 상황에서 '기미가요'는 더욱 민감한 논점이 될 수밖에 없다.



SNS 등을 통해 '기미가요' 사용이 알려지고, 점차 논란이 확산되자 <비정상회담> 제작진은 부랴부랴 사과문을 게시했다. 너무 급했던 것일까? 사과문은 내용적으로 볼 때도 소략하기 짝이 없었고, 사과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의(誠意)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봤던 게 아닌가 싶다.


당연히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아니, 더욱 증폭됐고), 제작진은 결국 두 번째 사과문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내용적으로 좀더 추가된 부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과문의 내용에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는 문장이 담겨 있었다. <비정상회담> 측은 '각 나라의 상징에 대한 국민적 정서와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우선 제작진에게 묻고 싶은 것은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음악이 '기미가요'인지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이다. 일반적으로 쓰지 말아야 할 이미지 등을 프로그램에 사용한 제작진들은 '몰랐다'는 변명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비정상회담> 측은 '국민적 정서와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말은 '기미가요'인 줄은 알았지만, 그것이 이 정도의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비정상회담>의 제작진들은 일반적인 국민적 정서와 동떨어진 사람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것이 '기미가요'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사용하지 말았어야만 했다. 추정에 불과하지만, 제작진이 그 음원이 '기미가요'인지 몰랐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 이유는 지난 7월 <비정상회담> 첫 회에서 데라다 타쿠야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기미가요'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오마이스타>는 JTBC 측과 통화를 통해 "<비정상회담> 첫 회에서도 '기미가요'가 들어갔던 것이 사실"이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결국 1회에서도 사용했던 '기미가요'가 17회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된 셈이다. 첫 회에는 시청률도 낮고 대중들의 관심도 적을 때라 아무런 탈도 없이 넘어갔지만, 시청률이 5%에 육박할 정도로 오르고 시청층도 다양해지자 '기미가요'의 사용이 밝혀진 것이다. 제작진은 사과문에서처럼 두루뭉술하게 상황을 얼버무리지 말고, 음원 사용에 있어 기미가요의 인지 여부부터 분명하게 밝히고, 어떤 경로를 통해 음원이 사용된 것인지 등 과정 등도 상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현재 다음 아고라(agora)에서는 '기미가요를 방송에 내보낸 비정상회담 폐지하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진행 중이다. 무려 6,712명이 참여할 만큼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폐지까지 가는 것은 다소 지나친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가치, 이를테면 다양한 시각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고양할 수 있는 좋은 방송으로서 기능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제작진의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연자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을 때는 출연자가 교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원칙은 제작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비정상회담>이 폐지론을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낱낱이 공개하고, 이에 대한 제작진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것이다. 어설픈 대응은 또 다른 화를 불러 올 것이고, 그나마 일말의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마저 등을 돌리게 되는 최악의 사태를 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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