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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과 함께 세상을 떠나다

너의길을가라 2014. 10. 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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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이 27일 20시 19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28일 오전 10시부터 마련될 예정이며, 아직 발인, 장지 등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故 신해철의 소속사 KCA 엔터테인먼트)




결국 마왕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아무렇지 않게 '깜짝 놀랐지?' 라며 나타날 것이라 믿었던 수많은 팬들은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비보(悲報)에 크나큰 슬픔에 빠졌다.


필자는 신해철로부터 직접적으로 음악적 세례를 받은 세대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세대에게 신해철은 자유분방한 사고와 거침없는 언변으로 화제를 몰고다니는 괴짜 혹은 독설가였다. 그가 처음 이름을 알렸던 무대가 1988년 MBC 대학가요제였고, 이후 무한궤도로 첫 앨범('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을 발표하고 활동했던 건 1989년이었다는 점에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신해철은 1990년 솔로가수로 나서면서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와 '안녕' 등으로 음악적인 역량을 드러냈고, 1991년에는 2집 '마이셀프(Myself)'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을 단단히 쌓아갔다. 1992년에는 기타리스트 정기송 등과 함께 넥스트(N.EX.T)를 결성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1997년에는 4집을 발매하면서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는 말과 함께 넥스트의 해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음악과 프로듀싱 공부를 위해 떠났다.


신해철은 음악적 재능 못지 않게 재치와 입담이 뛰어났는데, 이를 십분 발휘해서 방송에서도 다양한 모습들을 선보이며 팬들과 교감을 나눴다. 1990년대 중반에는 MBC FM '음악도시'의 초대 DJ를 맡았고, 2000년 초에는 SBS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의 DJ로 활동하며 특유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중독성 넘치는 진행 실력을 뽐냈다.



물론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는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간통제나 정부의 정책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밝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또,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노래를 문재인 의원의 캠페인 송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등 기존의 정치적 소신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 당당했던 신해철은 양가적(兩價的) 감정의 대상이었다. 연예인의 사회적 · 정치적 발언에 매우 비판적인 대한민국에서 신해철이라는 존재는 경외와 부러움의 대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기와 미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한편, 지난 6월에 발표한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에는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원맨 아카펠라'를 구현한 '아따'라는 곡을 통해 26년 동안 쌓아왔던 음악적 능력과 노하우를 대중 앞에 선보이기도 했다. 혼자서 '아카펠라'를 구현한다는 발상에서부터 그만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톡특한 구성의 뮤직비디오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창의적이었다.


이처럼 뮤지션 신해철은 아직 대중에게 들려줄 음악이, 보여줄 음악 세계가 많이 남았음에도 안타까운 이별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너무도 이른 죽음이 더욱 가슴이 아프다. '좋은 사람'들을 지나치게 일찍 데려가는 하늘이 밉고 야속하기까지 하다.




지난 2010년 6월 신해철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노래 중 뜨지 못해 아쉬운 곡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민물장어의 꿈'"이라고 대답하면서 "팬이면 누구나 알지만 뜨지 않은 어려운 노래다. 이 곡은 내가 죽으면 뜰 것이다.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왕 신해철이 떠난 자리.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흐르고 있을 이 시간. '민물장어의 꿈'이 울려 퍼지고 있을 것이다. 긴 여행을 끝낸 마왕은 미련없이 떠나고 있을까. 그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남겼던 유언장처럼, 혹 그에게 다음 생이 이어진다면 그가 뜨겁게 사랑했던 인연을 다시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민물장어의 꿈>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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