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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던 <히든싱어> 살린 이승환의 밴드에 대한 원칙과 자부심

너의길을가라 2014. 10. 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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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MR로 노래를 해본 적이 없다. 밴드로만 하는 게 원칙인데 그쪽 분들이 밴드를 쓰려면 한쪽 방청석을 다 없애야 한다고 해서 어려울 것 같다" (2014년 7월 23일 방송된 SBS 라디오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



"MR로 노래를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바로 JTBC <히든싱어> 제작진으로부터 줄기차게 러브콜을 받으면서도 이승환이 방송 출연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뮤지션으로서의 자부심과 사운드에 대한 완벽주의적 성향이 '타협'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 시청자들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르라'는 말을 언급하며 이승환이 지나치게 까다롭게 군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결국 <히든싱어>는 밴드 라이브가 가능하도록 무대 한 쪽 공간을 활용해 이승환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진행자인 전현무가 프로그램 도중에 거듭 말하는 것처럼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라이브 밴드'의 구현이 시즌3에서야 겨우 이루어진 것은 지나치게 늦은 감이 있다. 그것도 이승환의 '완벽주의적 고집'이 있지 않았다면 여전히 라이브 밴드 공연은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히든싱어>는 대박을 터뜨렸다.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5일 방송된 <히든싱어> 이승환 편은 5.183%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주 4.7%에 비해 상승한 수치이자, 비슷한 시간대에 방송된 종편과 지 상파 프로그램들을 누른 수치이다. 무엇보다 1라운드에서는 방송울렁증이 있는 이승환이 실수를 하며 41표라는 높은 득표로 탈락 위기를 겪는 상황이 연출되며 긴장감을 높였고, 마지막 라운드에서 1표 차이로 최종우승이 갈리는 초유의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 '발전소 이승환'이라는 별명의 김영관 씨가 1표 차이로 우승하는 기적이 벌어지면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승환이 죽어가던 '히든싱어'를 살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까지 했다. 최근의 <히든싱어>는 초창기와는 달리 가수에 대한 예우가 지나칠 정도로 심해지면서 긴장감을 잃어버렸다는 평가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뻔히 구별이 가능한 수준의 모창에 대해 게스트들이 보이는 호들갑스러운 반응들은 보기에 거북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승환 편은 지난 방송들에 비해 난도가 훨씬 높았다. 공연을 찾거나 라이브를 찾아 듣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는 '음색의 차이'가 있었지만, 초창기의 이승환의 미성을 기억하는 일반인들이나 이승환의 노래 자체가 낯선 사람들에게는 구분하기 까다로울 정도로 모창자들의 실력이 뛰어났다. 1라운드에서는 '치과의사 이승환' 구자윤 씨가 0표를 받았고, 최종 라운드에서는 1표 차이로 최종 우승을 차지한 '발전소 이승환' 김영관 씨는 이승환이 "저 어렸을 때 목소리, 초창기 음반 목소리랑 정말 흡사하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라이브 밴드를 구현하면서 이승환을 선택했던 <히든싱어>의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시청률과 화제 면에서뿐만 아니라 '듣는 음악'이라는 <히든싱어>의 기획의도를 살리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했다는 측면에서 더욱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 라이브 밴드와 스트링 팀의 연주, 그 양질의 사운드가 주는 깊은 울림과 감동을 '체험'한 <히든싱어> 제작진으로서는 앞으로 더 다양한 무대를 꾸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이승환은 방송 말미에 "저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고 연구했다는 게 놀랍다. 저는 정말 없는 줄 알았다.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그들을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실망시켜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는 소감을 남겼다. 대중과 직접적인 만남을 갖기보다는 다소 거리를 두는 행보를 유지해왔던 이승환도 이번 방송을 계기로 팬들과 보다 친근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라이브에 대한 원칙과 사운드에 대한 자부심을 지켰던 이승환과 이를 배려했던 <히든싱어>는 결국 '윈윈'을 이뤄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공은 가수 이승환, 인간 이승환을 25년 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든든한 팬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이승환도 그러길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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