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검사외전>의 스크린 독점, 우리가 진부한 비판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6. 2.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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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외전>의 폭풍 질주가 계속되고 있다. 벌써 630만 관객을 돌파(10일 기준 637만 6493명)했다. 설 연휴가 있었던 주말에만 2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압도적인 흥행 행진을 벌이고 있다. 오늘(11일) 관객까지 집계하면 700만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급기야 스크린 독점 논란이 제기됐다. 도대체 어느 정도였던 것일까?


<검사외전>은 스크린 수 1,778개, 상영횟수 9,120회로 각각 912개, 3,758회에 불과한 <쿵푸팬더3>를 압살(壓殺)했다. 3위부터는 더욱 처절하다. <앨빈과 슈퍼밴드 4>는 379개, 798회였고, <최강전사 미니특공대: 영웅의 탄생>은 348개, 487회에 그쳤다. 평단(評壇)의 호평과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는 <캐롤>은 스크린 확보에 애를 먹어야 했다.



물론 '경쟁작'이 없었던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일반적이라면 설 연휴라는 특수를 노리고 개봉하는 영화들이 쏟아져야 하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검사외전>과 <쿵푸팬더3>를 제외하고는 아예 머리를 내미는 작품이 없었다. 그건 혹시 다른 영화 입장에서 흥행이 유력한 두 작품과의 경쟁이 부담스러웠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설 연휴 다음 주에도 별다른 개봉작이 없었던 점을 미뤄보면 이러한 가설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이 사건은 '공교(工巧)로운 것'이었고, <검사외전>은 영리하게 경쟁의 빈틈을 제대로 노렸다. 새해 첫 1,000만(가능성이 높은) 영화의 탄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검사외전>이 전체 스크린의 약 70% 이상에 해당하는 독점(獨占)을 하는 '나쁜(!)' 영화이기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 독점에 대한 비판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던 얼마 전과는 달리 <검사외전>의 스크린 독점 현상을 바라보는 의견은 양분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시선은 공급보다 수요가 더 크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시장 논리에 비춰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 시선은 영화계의 발전과 공존을 위해 더 이상 시장의 기능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뉴스1>의 장아름 기자는 <검사외전>의 스크린 독점을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은 웬일인지 이전처럼 뜨겁거나 거세지 않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 경쟁작이 없었던 구도를 설명하면서 "독과점 논란은 1000만 영화 프레임이 등장할 때마다 제시되는 담론인 까닭에 외려 위기감을 조성하기 보다, 이젠 진부하다는 반응을 끌어냈"다고까지 썼다.



이러한 의견은 누매우 거센 비난에 직면하고 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스크린 독점에 대한 비판은 매번 반복되고 있고, 그에 대해 매번 같은 수준의 솔루션이 제기되고 있지만 '현실'은 바뀌는 게 없다. 도대체 영화계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팽배한 시장 논리 하에 대형 배급사와 (연계된) 멀티플렉스가 좌지우지하는 영화계는 더 이상 '자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영리한 글들을 쏟아내던 정덕현의 경우에도 <검사외전>이 대박난 비결을 '강동원'이라는 '내재적 접근'으로부터 찾고 있다. 황찬미는 어떠한가. 그도 '강동원의 원맨쇼를 탓하지 말라'고 못박고 있다. "(독점자본의 횡포)에 대한 지적은 따로 있어야겠지만, 여기서는 이 영화가 지닌 흥행요소의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고 한발 뺀다. (물론 이들이 문제의식 자체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비난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장아름 기자의 말처럼 '스크린 독점'을 꼬집는 건 이제 진부한 일이 됐다는 방증 아닐까? 매번 같은 지적을 반복하지만, 전혀 바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영화계는 이상한 방식으로 비판을 잠재우고 있다.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크린 독점'을 이야기해야 한다. 다양한 영화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이번 연휴동안 CGV는 아이맥스로 <쿵푸팬더3>를 예매한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극장 사정으로 인해 상영이 어려우니 취소를 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해당 상영관에선 <쿵푸팬터3> 대신 <검사외전>이 상영됐다고 한다. 되는 영화를 밀어주려고 하는, 아니 돼야 하는 영화를 밀어주고자 애쓰는 배급사와 멀티플렉스의 자본의 논리는 더욱 집요해지고 있다.


시장과 싸우려 하지 말라? 인간의 역사는 시장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시장'과 싸워왔다는 것이다.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경제 민주화'가 화두가 되었던 것처럼, 좁은 시장 탓에 독점이 훨씬 더 수월한 영화계에도 '민주화'가 필요하다. 하루 만에 100만 관객 돌파, 최단 기간에 몇 백만 돌파와 같은 뉴스처럼 피로감을 더하는 뉴스가 사라지길 원한다. 


영화관에 한 두 편의 영화만 달랑 걸려있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양한 영화들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좋은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현실이 오길 바란다. 영화계의 자정이 어렵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 말이다. 우리기 이 진부한 비판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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