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홍준표의 무상급식 전쟁, 도리를 저버린 정치적 행보

너의길을가라 2014. 11. 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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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이 저 끔찍했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됐지만, 역사의 이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제1차 세계대전의 근본적 원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유럽은 이미 전쟁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었고, 갈등은 계속해서 표면화되어 나타났다. 만약 1914년 보스이나 사라예보를 방문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피살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을 것이고, 결국 유럽은 전쟁의 포화에 휩쓸렸을 것이다.


- ⓒ 경향신문, 홍준표 경남도지사(왼)와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오)-


경남도교육청 "법 규정에도 없는 월권 행위다!"

경남도 "감사 없는 예산 지원은 없다!"


홍준표 발(發) 무상급식 논란이 표면화된 것은 경남도가 경남도교육청에 무상급식 지원 예산에 대한 감사를 요구하면서부터 비롯됐다. 경남도교육청은 "법 규정에도 없는 월권행위"라고 맞섰고, 경남도는 "감사 없는 예산 지원은 없다"며 압박했다. 애초부터 무상급식 예산에 대한 감사는 도교육청의 몫이고, 도교육청과 똑같은 행정체계상 도 단위 기관인 도에서 감사를 실시하다는 것은 월권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이러한 논리적 설명은 중요하지 않다. 홍준표 도지사에게 필요했던 것은 '갈등'이고, 이를 위해 '감사' 카드를 꺼내든 것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단(事端)의 뒤편에는 무상급식을 비롯한 각종 복지 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오래된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국고가 거덜나고 있는데 지금 무상파티만 하고 있을 것인가"라는 홍 지사의 일갈(一喝)은 보편 복지에 염증을 느끼고 있을 보수층에겐 해갈(解渴)과 같은 시원함을 주었을 것이다. 덩달아 홍 지사는 눈치를 보지 않고 할 말을 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른바 '보수 세력의 아이콘'으로 거듭날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실제로 정치권을 비롯한 언론은 홍 지사가 일으킨 '무상 급식 논란'을 그의 정치적 신념이나 철학에 기반한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권 내의 잠룡으로 분류되는 홍 지사가 그의 탁원한 정치적 감각을 발휘해 스포트라이트를 끌어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홍준표 지사만큼 이슈 메이킹을 잘하는 정치인도 별로 없을 것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다"는 정치권의 한 관계자의 말처럼,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은 다분히 정치적인 행보라는 것이다.


"북유럽 수준으로 무상급식, 무상의료 등 모든 사회 분야에 걸쳐 무상으로 하려면 우선 담세율이 올라가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담세율이 18%로 북유럽 45∼55%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교육 지원 규정에 재정이 악화된 지자체는 무상급식 지원을 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나 진보 좌파들이 '학생들 밥그릇으로 장난친다'란 상투적인 용어로 공격하고 시민단체를 동원하니까 지자체 단체장들이 선뜻 (급식비 지원 중단 등) 말을 못하는 것"


"130% 차상위계층 등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무상급식이 제공될 뿐 아니라 학용품도 무상으로 국가에서 주고 있다. 무상급식이 끊기면 가난한 애들이 점심을 굶을 것이란 주장은 좌파의 허위 선전이다. 무상급식 예산을 서민과 소외계층 자녀들의 교육사업 보조금으로 직접 지원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홍 지사가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했던 말들을 돌이켜 보면, 그에 대해 특별한 철학이나 대안이 있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굳이 '무상의료'까지 끌어들이면서 북유럽 수준의 목지를 실현하기엔 담세율이 현저히 낮다고 언급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증세'를 언급해야 하지만, 막상 그런 주장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무상급식이 마뜩지 않은 것이다.


'진보 좌파들이 '학생들 밥그릇으로 장난친다'란 상투적인 용어로 공격하고 시민단체를 동원하니까'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홍 지사는 그동안의 억하심정을 토로하고 있을 뿐이다. '국고가 거덜'나고 있기 때문에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홍 지사는 무상급식 예산을 서민과 소외계층 자녀들의 교육사업 보조금으로 직접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국고가 거덜'나는 것과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하는 것 사이에는 별다른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지금의 재정상태로는 복지예산 확보는 물론이고, 시급한 현안사업을 해결할 최소한의 예산확보도 어렵습니다. 살림이 어려우면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지출을 먼저 줄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렵다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줄여서는 안 됩니다. 무상급식과 노인틀니사업 같은 복지예산이 삭감되는 일이 없도록 재정건전화 특별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습니다" (2012년 12월 20일. 보궐선거로 당선된 홍준표 경남지사의 취임사 중 일부)


소외되고 어려운 계층을 중점적으로 더 지원하는 따뜻한 복지정책을 추진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급격한 복지 수요 증대는 성장이 생존의 문제이던 시절에 우리의 선배들이 감내했던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한정된 재원과 다양한 예산 수요 등 재정상 어려움에도 복지는 이제 시대정신이 되었습니다. 서민 위주의 계층 균형적인 따뜻한 복지 정책을 펼쳐 나가겠습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경남형 복지정책으로 풍요롭고 계층 통합적인 경남의 미래를 준비하겠습니다" (2014년 7월 1일. 6.4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홍준표 경남지사의 취임사 중 일부)


게다가 그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말바꾸기'를 보면 더욱 의심스럽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로 취임했을 때 홍 지사는 무상급식을 세금급식, 폭지보퓰리즘으로 몰아세우며 반대 입장을 취했다. 심지어 사회주의식 좌파복지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12월 20일, 보궐 선거로 경남지사에 당선되자 취임사에서 "무상급식과 노인틀니사업 같은 복지예산이 삭감되는 일이 없도록 재정건전화 특별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사람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널뛰기가 심하다.


그의 '변심'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무상급식 예산이 삭감된느 일이 없도록 하겠다던 취임사와는 달리 2013년 11월에는 무상급식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2014년 2월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에 추가 지원을 하기도 했다. 지난 6 · 4 지방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한 홍 지사는 "복지는 시대정신이 됐다", "서민 위주의 계층 균형적인 따뜻한 복지 정책을 펼쳐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결국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끊는 '냉혹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을 놓고, 주민투표로 밀어붙이려다 실패해 사퇴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가 있음에도 홍 지사가 과감한 행보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새누리당의 지지층이 견고한 '경남도'라는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상급식'은 여야를 떠나서, 혹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지켜줘야 할 보루와도 같은 것이다.


이를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는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헌법 제31조 제3항에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규정처럼 헌법적 가치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교육비가 그 어느 나라보다 높은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아이들 밥' 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안심하게 먹일 수 있는 복지 정책이 바로 '무상급식'이다. 과연 부모의 소득에 따라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최소한 '밥'만큼은 그 어떤 차별 없도록 하는 것,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행복한 밥상, 친환경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무슨 대단한 정치적 논쟁거리도 아니고, 그저 어른으로서의 도리일 뿐이다. 이마저도 저버리고자 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더군다나 이를 통해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한다면 어찌 고개를 들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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