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암묵적인 룰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너의길을가라 2014. 4. 8.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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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에서 발췌 - 


"어제 경기에서 주자들이 도루를 시도하지 않더라.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선수협회에서 점수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도루를 자제하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지난 2일, 한화 김응룡 감독의 한마디가 프로야구 현장과 팬들을 들썩이게 했다. '6점 이후 6점 차 이상의 점수 차가 났을 때 가급적 도루를 하지 않는다'는 선수협이 만든 '암묵적인 룰' 때문이다. 물론 선수협은 "사실도 아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팬들은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누구보다 팬들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수 없이 많은 경기를 현장이나 TV 중계를 통해 지켜봤을 때니까 말이다. 선수협의 주장처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암묵적인 룰은 또 있다. 가령, 과도(!)한 홈런 세레모니를 금지하거나 상대방을 자극하는 작전은 시도하지 않는 것 등이다. 이런 것들은 곧 '예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 <점프볼>에서 발췌 - 


프로농구에도 이와 같은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2011-2012 시즌 원주 동부와 울산 모비스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동부가 50-40으로 앞선 상황에서 강동희 감독은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공을 소유하고 있던 박지현 선수는 '당연히' 하프라인을 넘어가 작전 타임을 부르는 듯 했다. 여기에서 박지현 선수의 '재치' 혹은 '꼼수'가 시전됐다. '당연히' 모비스 선수들은 작전 타임을 부르겠거니 생각하며 수비를 느슨히 했고, 그 틈을 노린 박지현 선수는 곧바로 레이업을 성공시켰다. 감독부터 선수, 관중 모두가 깜짝 속았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지현 선수는 "예의는 아니지만 반칙은 아니잖아요.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다시 시도 할 생각이에요. 수비수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듯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건 어떨까? 프로농구에는 '악수 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경기 종료 직전(24초 이내의 시간)에 앞서고 있는 팀이 공을 소유한 경우, 공격을 하지 않고 공을 돌리다가 경기를 마친다. 종료 휘슬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감독들은 이미 악수를 나누고 있다. 물론 경기의 승패는 정해진 상황이지만, 시즌 막판에 순위 결정을 위해 득실을 따져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마지막 공격을 허투루 보내는 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될 수 있다. 또, 입장료를 지불하고 경기를 관람하러 온 팬들(TV 등을 통해 시청하고 있는 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스포츠에서 '예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동료의식을 발휘해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팬들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료들 간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팬들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다고나 할까?

 


- <노컷뉴스>에서 발췌  -


정치도 마찬가지다. 너무도 많은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그것은 대개 '예의'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청와대에 대한 예의(관례), 상대 당(黨)에 대한 예의(관례), '존경하는' 의원님에 대한 예의(관례)처럼 말이다. 그 중에는 정말 지켜야 할 예의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방패막이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우에는 '현관 예우'를 받고, 청문회를 6시간 만에 무사 통과했다. 김재원 의원에 따르면, "전임 장관 시절 걱정이 많았는데 든든한 대선배님이 오셔서 우리도 든든하다"라나? 이러한 태도는 민주통합당(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예의'란 이름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 뿐일까? 정치에는 우리들이 감히 알 수 없는 수많은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으르렁', 뒤 돌아선 '형님, 소주 한잔?'은 이제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출마한 국회의원들은 '사표(辭表)'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러면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란다. 우습게도 그들의 사표는 '수리(受理)'가 되지 않았다. 아니, 수리하지 '않는다'. 이들은 낙선 이후에 슬그머니 사표를 거두고 다시 국회의원 행세를 할 것이다. 

 

스포츠에서의 '암묵적인 룰'이 그들 간의 예의를 지키느라 정작 팬들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는 것처럼, 정치 역시 마찬가지로 국민들에 대한 예의, 국민들과의 신뢰를 저버린다. 한마디로 주객전도(主客顚倒)다. 스포츠는 팬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고, 정치 역시 국민들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함에도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역전 현상이 '정상(正常)'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 <경향신문>에서 발췌 - 


지난 4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청와대를 깜짝 방문했다. "만약 현재대로 지방선거가 치러진다면, 한 선거를 서로 다른 규칙으로 치르게 돼 매우 비정상적인 일이 될 것"이라며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신청한 것이다. 박광온 대변인은 "130석의 의석을 가진 야당 대표가 청와대에 가서 일반 국민과 똑같이 면회를 신청한 것은 이례적이고 과거에 없던 일"이라고 말했고, 언론은 이를 두고 '파격'이라고 보도했다.

 

안철수 대표의 청와대 방문은 기존의 문법을 깨버린 것이다.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방식이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그동안 왜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일까? 야당과 청와대와의 불통은 어느 정권에서나 있었던 일 아닌가?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체면' 때문이라든지, '청와대와의 예의' 때문이라든지, 애초에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다든지 말이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안철수 대표가 강조했던 '새정치'는 그 말 자체의 형용모순(形容矛盾)은 차치(且置)하더라도, 그 내용적인 면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적어도 방법적인 면에서는 '새정치'를 선보여야 한다고 할 때, 안철수 대표의 이와 같은 행보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암묵적인 룰', '기존의 정치 문법(관례)', 국민이 아닌 '그들만의 예의'를 과감히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많이 보여지면 보여질수록 사람들은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흥미를 느끼게 마련이다. "뭐지, 이거?", "오, 신선한데?"와 같은 반응들이 다시금 정치를 활기 넘치게 만들 것이다.

 

기존 정치에 서툰 안철수 대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정치'꾼'들의 '그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 곤란'하다는 조언을 과감히 무시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계속된 암묵적인 룰(예의)'라서 어기기 힘들다'는 헛소리를 단호하게 내치는 것이다. 이제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암묵적인 룰'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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