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요시마쓰 이쿠미, 일본군 위안부 발언 고마워요! 우리도 되돌아 볼게요

너의길을가라 2014. 4. 10.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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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A의 집안과 B의 집안은 사이가 좋지 않다. 마찬가지로 A와 B도 서로를 마뜩지 않게 여긴다. 쉽고 간단히 이해하기 위해 두 집안의 관계를 '원수(怨讐)' 정도로 상정(想定)해보자. A는 B에게, B의 집안 사람들이 A 집안 사람들에게 '끔찍하고 못된 짓'을 저질렀다고 쏘아붙인다. 물론 B는 A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사이가 나쁜 A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없다. 물론 약간의 의혹은 생기기 마련이다. B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돌아온 대답은 단호하다. "네가 철천지 원수인 A 집안 사람들의 말을 믿는 거냐?" B의 입장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말을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A가 B의 집안을 흠집내기 위해 명예훼손을 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B가 조금 객관적이고 신중한 사람이라면 약간의 '공부'를 할 것이다.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제3를 찾아 그 일에 대해 물어보든지, 혹 남아있는 기록 등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볼 것이다. 여기까지만 한다고 하더라도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 본래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무감각하기 마련이다. A 집안의 고통? 그런 것을 관심에 둘 이유가 없다. 게다가 B의 입장에서 A의 주장은 B 집안에 대한 '공격'이 아닌가? 


조금 더 진도를 나가보자. 만약 B가 A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떨까? A의 주장이 옳았고, B의 집안 사람들이 '끔찍하고 못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B는 어떻게 행동할까? 진실을 만천하에 공개할까? A를 찾아가서 사죄를 할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비롯해 집안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배신자로 낙인 찍힐 것이고, 옛날 버전으로는 호적에서 파일 각오를 해야 한다. 이는 정말이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지난 3월 29일, 국제 미인 선발대회인 '2012 미스 인터내셔녈'에서 1위에 입상한 요시마쓰 이쿠미가 미국 C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 일로 곤경에 빠졌다고 한다. 우선, 그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한번 들어보자. 


"아베 신조 총리는 2차 세계 대전 종군 위안부에 대해 몇 년 전에 있었던 공식 사과를 취하한다고 했었다. 일본의 우익인사 중에는 '위안부는 매춘부이기 때문에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살아 있는 위안부의 증언을 들으면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인으로서 이런 발언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사죄하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혹은 역사적 진실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요시마쓰 이쿠미는 일본인이 아닌가? 위와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혹 진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입밖으로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진실을 알아버린 B의 선택은 '침묵'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요시마쓰 이쿠미는 일부 일본인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교양이 없다면 정치 문제를 말하면 안된다", "당신의 발언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아느냐"라나?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일본 내에서 논란이 증폭되자, 결국 지난 4일 요시마쓰 이쿠미는 '사죄의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최근 CBS 라디오 방송내용이 일부 번역 문제로 오해와 혼란을 초래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생각은 바뀌지 않은 듯 했다. "100명이면 100가지 의견과 생각이 있고, 그것을 표현하고 발언할 자유는 100명 모두가 가지고 있다. 여러 의견을 비판하거나 부정할 생각도 내 의견을 강요할 생각도 전혀 없다." 또, 7일에는 "나는 여성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위안부라는 여성의 삶, 또 그러한 상황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있다는 것을 슬프게 느낀다."라는 글을 남겼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진실 앞에 당당한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 대개 우리는 자신의 허물을 들추지 않으려 한다. 상대방에서 약점을 잡히기 싫기 때문이다. 내부에 문제가 있어도 외부의 적 앞에 그 모든 것들이 감춰지곤 한다. 씁쓸하게도,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 <오마이뉴스>에서 발췌, 홍(Huong) 할머니 -


한국 군인들에게 집단윤간..그의 이름은 "KIM" <오마이뉴스>


지난 3월, <오마이뉴스>는 '베트남 평화기행'을 통해 전쟁피해자를 직접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갑자기 웬 베트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베트남 전쟁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1964년,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대한민국 군을 베트남에 파병했다. 이유는 역시 '돈'이었다. 1964년 9월부터 1973년까지 참전 병력은 325,517명이었고, 사망자는 5,099명, 부상자는 11,232명이었다. 그 대가는 한국군의 현대화 장비 지원과 해외전투수당, 원조수당이었다. 이 돈이 대한민국의 경공업 육성의 종잣돈이 되었다. 




<오마이뉴스>에서 발췌, 라이따이한 2세인 Sang 할머니의 손녀 -


불편한 진실은 더 있다. <오마이뉴스>팀은 평생 한국인 남편을 기다리는 상(Sang) 할머니와 한국군에게 집단윤간당한 홍(Huong) 할머니를 만났다. 특히 홍 할머니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겨우 스무 살이었던 당시, 그녀는 한국군이 준 주스를 마시고 혼절했다. 깨어났을 때 옷이 벗겨져 있었고, 윤간을 당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곧 임심을 했음을 알게 됐고, 그녀는 '생명'을 없앨 만큼 잔인하지 못했다. 이후 베트남 사회에서 그녀와 그녀의 딸(라이따이한 : 적국의 아이, '라이'는 경멸적인 혼혈잡종이라는 의미)은 이룰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경멸과 멸시를 받았다. 부산대 조흥국 교수는 라이따이한이 최소 5,000명에서 많게는 3만 명 정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아베 일본 총리를 위시한 우익 세력들은 '망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일본에는 요시마쓰 이쿠미와 같은 용기 있는 사람도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어떨까? 우리는 일본에게 진실을 마주할 것을 요구한다. 일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할 것을 요구한다. 한편, 우리는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 앞에 바로 서 있는가? 진실되고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요시마쓰 이쿠미의 용기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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