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신뢰를 잃은 사법부, 김병로 선생의 가르침을 떠올려라

너의길을가라 2014. 4. 4.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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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신임법관 임명식에서 "법관은 법원을 구성하는 톱니바퀴 중 하나가 아니라, 각자가 법원을 대표하는 사람이고, 한 사람의 법관이 바로 법원 자체이다. 법관 중의 한 사람이라도 국민에게 실망을 준다면 그 하나로 인해 법원 전체가 불신을 받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임명식이라는 자리에 걸맞은 평이한 말이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되묻고 싶다. 과연 지금의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지난 3월 28일, 법조계 재산공개 대상자 202명의 재산이 공개됐다. 위의 표는 사법부만 따로 떼어내어 정리한 것이다. 그토록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법관'님들께서 언제 저리도 많은 재산을 모으셨을까? 법에도 능하고 제테크에도 능한 다재다능한 인류의 출현일까? 고위법관 144명의 평균 재산은 무려 20억 300만 원이라고 한다. 헌법재판소 재판과 9명의 평균 재산은 17억 900만 원이다. 명예를 얻으려면 돈을 포기하고, 돈을 얻으려면 명예를 포기하라는 옛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가진 자'들은 명에와 돈을 모두 움켜쥐었다. 


'가난'을 모르는 법관들로 가득한 사법부가 어떤 모습일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 된 법관들이 제법 많았다. 가난을 몸소 체험한 그들은 판결을 내릴 때도 그런 경험들을 십분 발휘했다. 정말이지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는 현명한 법관들이 있었다. 따뜻한 판결, 인간다운 판결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부의 대물림은 곧 교육의 대물림으로 이어졌고, 부와 학벌은 공통어가 되었다. 사법부에 '인간'은 사라지고, '기계적 법 해석'만 남았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일당 5억 원의 '황제노역' 판결을 내렸던 장병우 전 광주지장법원장의 경우는 어떨까? 만약 편의점이나 주유소, 영화관, 호프집, 카페 등에서 최저임금에 가까운 시급을 받으며 알바를 한 경험이 있는 판사였다면 일당 5억 원의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까? 장병우 전 법원장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런 판결을 내리고도 아무런 껄끄러움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법률신문>에서 발췌 -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된 최성준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경우는 어떨까? 그는 무려 28년이나 법관 생활을 해 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무슨 까닭으로 방통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것일까? 그렇다고 그가 방송 및 통신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직 법관이 옷을 벗고 행정부의 장관 자리로 옮겨가는 것은 삼권 분립을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겠다고 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임명한 사람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 2009년부터 올해까지 5년동안 징계 처분을 받은 법관의 수는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고작 7명에 불과하다. 최근 법관들의 막말과 각종 비리 등이 수도 없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지만, 정작 징계가 내려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법관징계법은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린 경우'에 의무적으로 징계를 청구할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수준이다. 잘못을 저질러도 '내 식구 감싸기' 탓에 어물쩍 넘어가는 사법부의 현실, 과연 국민들의 신뢰를 요구할 수 있을까? 


지난 3일에는 법원내부통신망에 제주도 4·3 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규정한 글이 올라왔다. '폭동을 항쟁이라 부르는 기막히고 비통한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은 제주 4.3 사건을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기 위한 좌익 폭동이라고 정의했다. 물론 이는 법관이 쓴 것이 아니라 서울의 한 지방법원 직원이 작성한 글이지만, 사법부 자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이자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낸 이른바 사법부의 '큰 어른'이다. 그는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지킨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서민호 의원이 자신을 살해하려던 군인을 사살한 일로 재판에 회부됐는데, 1심 재판부는 정당방위를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을 전해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물론 김별로 대법원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이렇게 맞받아쳤다. "판사가 내린 판결은 대법원장인 나도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무죄 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면 되지 않는가"


아, 전율이 일어나지 않는가? 권력 앞에 비굴하지 않은 대법원장이 존재했기에 사법부의 독립은 지켜질 수 있었고, 후배 법관들도 소신껏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대한민국에 '김병로'가 존재하는가? 우문(愚問)인가? 젊은 판사들이 법과 양심 앞에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방패막이 되어 줄 선배 법관이 존재하는가? 청렴함과 올곧은 정신으로 오로지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법관이 존재하는가?


사법부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하루이틀의 불신(不信)이 아니다. 불신은 오랜 기간을 두고 켜켜이 쌓여 왔다. 김병로 선생의 말이 메아리처럼 쓸쓸하게 울려퍼진다. "법관은 양심과 이성을 생명처럼 알아야 합니다. 정의를 위해 굶어 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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