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민'의 힘이었을까. SBS의 새로운 예능 <싱글와이프>가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지난 2일 방송된 <싱글와이프> 1회 시청률은 5.2%(닐슨코리아 기준)였다. 비록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JTBC <한끼줍쇼> 6.8%, MBC <라디오 스타> 6.1%, KBS2 <살림하는 남자들> 5.6%에 뒤진 수치지만, 애초에 수요일 예능을 10년 넘게 지켜오고 있는 '터줏대감' <라디오 스타>나 새로운 강자로 자리잡은 <한끼줍쇼>의 아성에 도전하는 입장에서 거둔 성취치곤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파일럿 당시 시청률이 3.8%(6월 21일), 4.4%(6월 28일), 3.2%(7월 5일)였던 점을 감안하면, 정규 편성된 <싱글와이프>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남편들이 일상을 탈출한 아내들의 일탈을 '관찰'한다는 기본 콘셉트는 그대로다. 파일럿에서 MC를 맡았던 박명수와 이유리는 여전히 센터를 지켰고, 김창렬 · 장채희 부부, 남희석 · 이경민 부부, 서현철 · 정재은 부부, 이천희 · 전혜진 부부도 계속해서 고정 출연한다. 달리진 점은 역시 '한수민'의 출연뿐인데, 시선끌기에 제대로 성공한 셈이다.
<싱글와이프>는 최근 예능의 변화와 흐름을 민감하게 캐치한 프로그램이다. MBC <나 혼자 산다>, SBS <미운 우리 새끼>를 필두로 '관찰형 예능'이 (또 다시) 대세로 떠오른 시점을 영리하게 파고 들었다. 달리 말하면 시류(時流)에 편승한 영악한 프로그램이라 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관찰하는) 시선'과 '(관찰 당하는) 대상'만 달라졌을 뿐, '(당당히) 훔쳐보기'라는 기존의 익숙한 구성을 답습하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싱글와이프>는 한 가지 치명적인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그건 바로 '가족 예능', 엄밀히 말하면 '스타들의' 가족 예능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쾌감이다. 장모와 사위의 관계를 조명하는 SBS <자기야 - 백년손님>, 부부의 일상과 입장 및 시각 차이를 살펴보는 SBS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 딸들의 연애와 일상을 지켜보는 아빠의 시선을 담은 E채널 <내 딸의 남자들 : 아빠가 보고 있다>, 여행을 떠난 자녀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tvN <둥지탈출>까지 가족 예능은 그야말로 '범람'하고 있다. 넘쳐 나는 스타들의 가족 예능에 시청자들은 점차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싱글와이프>가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싱글와이프>는 '박명수의 아내' 한수민의 본격적인 방송 데뷔라는 홍보를 통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고, 최대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 전체 방송의 절반 이상을 '한수민'에게 할애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그리하여 첫 회에 5.2%라는 제법 든든한 밑천을 거머쥐긴 했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자산이 될지는 미지수다. 결국 핵심은 '어떤 이야기(의미)를 전달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고민이다.
이쯤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싱글와이프>는 아내의 일탈과 이를 지켜보는 남편의 시선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제작진은 '아내Day'를 강조한다. 결혼을 한 후, 아내들이 자연스레 짊어지게 되는 가사와 육아. 거기에 일까지 해야 하는 버거운 삶을 살아가는 아내들에게 꿈 같은 휴식을 주자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다시 말해 일상에서 벗어나는 빛나는 경험을 통해 그동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살면서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또, 이를 '관찰'하는 남편들은 아내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잠시동안 일탈을 떠났던 아내도 궁극적으로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일견 매우 건전하고 바람직한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탈'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인식이 왠지 불편하지 않은가. <싱글와이프>는 겉으로는 아내들에게 '나 자신'을 찾아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아내로서의 역할'에 더욱 충실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저 잠깐의 '일탈'이면 충분하지 않냐고 말하는 듯 하다.
"저희 집은 요리는 거의 다 제가 해요. 제 처는 졸업했어요, 요리. 부엌에서 은퇴."
"시켜주신 거예요, 자진하신 거예요?"
"해야 한다는 죄책감이 있잖아요. 주부니까. 아예 그런 걸 없애기 위해서 은퇴를 공식적으로 하고."
tvN <알쓸신잡> 2회에서 소설가 김영하는 혼자서 아침밥도 먹고 커피까지 챙겨 여행길에 올랐는데, 이를 들은 유시민은 "혼자 있는데 밥을 해 먹고 왔다고?"라며 의아해 한다. 그러나 김영하에게 '혼자' 음식을 해먹는 건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집에서 요리를 도맡아 한다면서 아내가 '부엌에서 은퇴'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김영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은퇴'라는 해방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반면, <싱글와이프>는 '남편들이 통 크게 여행을 보내준다'는 관점, '고생의 대가로 일탈이라는 선물을 준다'는 태도가 짙게 깔려 있다. 거기에는 부부 관계, 가정, 집안일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 따윈 없다. <싱글와이프> 속 남편들의 입장은 동일하다. '잘 놀았으니까 얼른 복귀해서 가정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잘 하라'는 또 다른 압박이다. "정말 호사를 누리네요. 남편 잘 만나서."라는 박명수의 말은 그의 속마음이면서 <싱글와이프>가 (본의 아니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앞으로 <싱글와이프>가 롱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왜 연예인 아내가 해외 여행 가서 노는 걸 봐야 하느냐?'는 비판, 다시 말해서 '스타들의 가족 예능'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편함이나 피로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겠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이 더욱 요구된다. <싱글와이프>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내들에게 일탈을 주자'는 근시안적인 접근인지, 아내들에게 일탈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현실에 대한 진지한 의문일까.
그 대답은 얼마 뒤면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수준'이라면 큰 기대를 하긴 어려워 보인다. 차라리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와 이상순이 보여주고 있는 (이상적인) 부부 관계를 지켜보는 편이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훨씬 나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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