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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네 집' 아닌 '효리네 민박', 2017년 최고의 예능을 만든 신의 한 수

너의길을가라 2017. 8. 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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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民泊) : 반 민가를 숙박 장소로 제공함.


효리네 '집'이 아니라 효리네 '민박'이었다. 뭐랄까, 기분 좋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고 할까. 3년 만에 앨범을 내고 컴백한 이효리가 예능에 출연하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그것이 이효리,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이라고 한들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여전히 최고의 스타 이효리인데 말이다. 그런데 제목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민박이라니, 이효리가 민박을 운영한다니. 그것도 자신의 집을 공개하면서 말이다. 굉장히 신선했다. 더욱 짜릿했던 건, 민박의 손님이 '연예인'이 아니라 '비(非)연예인'이란 점이었다.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예능인으로서도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한 시대를 풍미하고 휩쓸었던 스타 이효리. 스스로 내려오는 법을 익히고 있다고 겸허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최고의 스타임이 분명하다. 또,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못하는 게 없는 무궁무진한 캐릭터이자 콘텐츠이다. 이효리를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미 절반을 훌쩍 넘는 확률을 손에 거머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은 건 '대박'이냐, 아니냐 정도일까.


모르긴 몰라도 고민이 됐을 것이다. 과연 '이효리'라는 최고의 콘텐츠를 두고, 어떤 방송을 만들어 낼 것인가. 당장 여러가지 선택지가 눈앞에 있었을 텐데, 가령 이효리 · 이상순 부부가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든지 혹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관찰하는 '효리네 집'도 괜찮은 후보이지 않았을까. 또, 이효리가 색다른 도전에 나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흥미로웠을 것 같다. 사실 '여행기'든 '결혼 일기'든 그 무엇이든 간에 '이효리'라는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힘'은 어김없이 발휘됐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 선택지들이 다소 '쉬운 길'이라는 의심도 들었다. 기존에 표출됐던 이효리의 매력을 보여줄 수는 있었을 테지만,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또 다른 가능성을 끄집어낸다든지 변화한 이효리의 현재를 담아내기에는 미흡했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게다가 이미 방송되고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모방하는 듯한 인상도 줬을 것 같다. 이는 이효리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효리가 자택을 개방해 민박을 운영한다는 기획은 매우 참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지인들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고, 연예인들을 대상하는 것도 아니라 비연예인인 시청자들을 손님으로 부른다는 발상은 놀라웠다. 이런 프로그램은 이전에 없었다. 물론 위험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제 아무리 이효리라고 하더라도 시청자들과의 만남, 그 소통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건 당연했다. 거기에서 꼬여버린다면 프로그램의 취지는 무색케 될 게 뻔했기 때문에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효리는 완벽하게, 더할나위 없이 '소통'에 성공했다.



누가 찾아올지, 몇 명이나 들이닥칠지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도 이효리(와 이상순)는 마치 예전부터 민박을 운영했던 주인처럼 능숙하게 대처한다. 첫 손님이었던 20대 취업 준비생들부터 며느리의 신청으로 민박집을 찾아온 노부부, 장기 투숙객인 탐험가들, 아픈 가정사에도 항상 밝고 사랑스러웠던 삼남매, 이효리와 이상순을 위해 자장면을 공수해 왔던 왕심리F4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투숙객들과 자연스럽게 소통을 해낸다. 사전 정보가 없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이젠 호기심과 설렘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자신의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이효리를 더욱 편안하게 만들고, 듬직한 남편 이상순의 존재감이 그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 준다. 처음에는 집안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어색했던 두 사람은 이제 완벽히 적응을 끝내고, 민박집 주인으로서 손님들을 살뜰히 챙긴다. 물론 '이지은 따라하기' 등을 통해 예능적 재미도 보장하기도 한다.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따뜻한 미소를 자아내고, 그들의 삶을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어느덧 요가와 차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이효리의 모습이 이젠 친숙하기까지 하다. 마치 친자매와 같은 관계를 형성한 이지은(아이유)와의 케미도 더할나위 없이 좋다. 이효리와 아이유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나누는 고민과 그에 대한 공감은 <효리네 민박>이 주는 또 하나의 재미이자 감동이다. 제작진은 개입을 최소화하고, 오로지 민박집을 찾는 손님들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낸다. 자극적인 요소들을 통해 프로그램에 색을 입히기보다 자연스럽게 색이 우러나오도록 만든다. 


이러한 요소들이 JTBC <효리네 민박>에 시청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효리네 민박>은 2013년 결혼 후 제주도에 정착했던 이효리와 그의 결혼 생활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동시에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이효리를 조명하면서 그의 새로운 매력을 끄집어냈다. 이로써 이효리는 진정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스타가 된듯 싶다. 내려오는 법을 익히고 있다는 이효리에겐 미안하지만, 그는 과거에 올랐던 '인기'라는 이름의 산에서 내려오면서 그보다 훨씬 더 찬란하고 아름다운 산에 올라버린 셈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비밀을 하나 투척하자면, <효리네 민박>을 제안한 사람이 이효리였다고 한다. 그는 감각적으로 '민박'이라는 기획이 통할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또, 자신의 '소통 능력'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2017년에도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그 중에 tvN <알쓸신잡>을 비롯해 눈에 띠는 프로그램들이 여럿 있지만, 단연 최고의 프로그램을 말하라면 <효리네 민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예인과 시청자의 만남을 이토록 이상적으로 그려낸 프로그램이 또 있었던가. 이효리의 힘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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