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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자의 파멸을 통해 <품위있는 그녀>가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

너의길을가라 2017. 8. 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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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누가' 박복자(김선아)를 죽였을까?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서 '<품위있는 그녀> 8명의 용의자 중 진짜 범인은?'이라는 투표를 진행했는데, 대성펄프 안태동 회장(김용건)은 56%로 과반을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 여자 진심을 믿고 싶었어. 그래서 주식을 그 여자한테 다 줬어. 혹시나 했어. 날 정말 좋아하는 건 아닌가." 마지막까지 박복자를 믿고 싶어했던 안 회장이었기에 박복자의 모든 행동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용납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깊은 애증이 박복자를 살해하는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안 회장에 이은 2위는 15%를 득표한 한민기(김선빈)였다. 그는 박복자에게 접근해 대성펄프 매각을 도왔지만, 둘째 딸 안재희(오나라)를 꼬드기는 등 박복자와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 그리고 박복자와 새로운 긴장 관계를 형성한 풍숙정 사장 오풍숙(소희정)도 11%로 제법 많은 표를 얻었다. 그 뒤로 박복자의 과거를 알고 있는 천방순(황효은) 6%, 박복자와 '공범' 관계인 구봉철(조성윤) 5%, 첫째 며느리 박주미(서정연) 3%, 장남 안재구(한재영) 2%, 둘째 딸 안재희(오나라) 2% 순이었다. 

 

 

 

 

 

한편, 예상 외의 인물이 언급되기도 한다. 이른바 <비밀의 숲> 효과인데, 윤 과장(이규형)처럼 의외의 인물이 범인일 거라고 보는 것이다. 가령, 우아진(김희선)은 유일하게 알리바이가 있는 인물이기에 오히려 의심스럽다. 심지어 고3인 운규(이건희)가 비 오는 날 받았던 충격을 잊지 못하고 복수를 했을 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아무리 파격적인 전개라 하더라도 고3인 운규에게 그 무거운 짐을 안기진 않을 테지만, 어찌됐든 추리는 흥미롭다. <품위있는 그녀>의 시청자들은 '박복자를 누가 죽였을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부단히 고민 중이다.


과연 '누가' 박복자(김선아)를 죽였을까? 사실 처음에는 그게 궁금했다. 그도 그럴 것이 <품위있는 그녀>는 누군가가 휘두른 둔기에 맞아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박복자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간병인으로 고용된 후 안태동 회장을 유혹하고, 대동펄프 가(家)의 안주인 자리를 꿰차는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경악스러웠다. 그리고 안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양도받고, 회사를 팔아 '캐시'를 몽땅 챙겨 달아나버리는 박복자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적들을 만들어 갔다. 추려진 용의자만 무려 8명이고, 실제 용의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

 

 

 

 

 

다시 말해서 <품위있는 그녀>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박복자와 관련된) 모든 인물들이 박복자를 살해해야 할 '동기'를 부단히 생성해냈다.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시선은 '누가'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중반, 그리고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누가'라는 질문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졌다. 물론 '범인'을 찾는 추리도 드라마 감상의 한 포인트가 분명하지만, 용의자마다 '동기'가 분명했고, 나름대로의 '이유'가 뚜렷했기에 박복자를 죽인 범인이 '누구'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질문은 박복자는 '왜' 그와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맞춰지기 시작했다. 질문은 이렇게 바뀔 수 있다. 박복자는 왜 파멸할 수밖에 없었을까.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우아진의 입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우아진이야말로 백미경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이자, <품위있는 그녀>의 '품위 있는 그녀' 그 자체이니까. 욕망했던 '캐시'를 거머쥔 박복자는 우아진을 만난 자리에서 "행복해요. 돈이란 건 정말 너무 좋은 거예요."라고 말한다. 

 

 

 

마치 자신이 동경했던 인물 앞에서 '나도 너처럼 됐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런 박복자에게 우아진은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당신, 그 행복 오래가지 못할 거야. 당신이 그토록 욕망한 이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닫기도 전에 당신은 불행해질 거야. 왠지 알아? 당신은, 당신이 한 짓이 나쁜 짓이란 걸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우아진은 자신과 박복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하며 분명히 선을 긋는다. "(나는) 내가 가져야 할 것만 욕망해. 그게 당신과 나 차이야. 가지면 안 되는 걸 욕망하면, 결국 그 끝은 파멸이야." 


가져야 할 것만 욕망하는 우아진과 가지면 안 되는 것까지 욕망한 박복자. 그것이 두 사람의 선명한 차이였다. <품위있는 그녀>는 일정한 선을 넘어버린 욕망은 곧 파멸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날린다. 우아진의 입을 빌려 '천민 자본주의'에 잠식된 이 세상의 수많은 '박복자'들에게 단호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품위있는 그녀>가 소위 '(강남의) 상류층'들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그들의 '(그릇된) 특권의식'과 '(왜곡된) 윤리관'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인 까닭은 그 '메시지'를 내리꽂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우아진'으로 상징되는 '건전한 상류층', 다시 말해서 최소한의 도덕 의식을 갖고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상류층에 만족하고 안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은 씁쓸하지만,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속물적인 저들의 만행이 워낙 가관이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품위있는 그녀>가 제시하는 이상향이자 타협점(우아진)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캐릭터와 한몸이 된 김희선의 연기가 탁월했던 점도 있겠지만, 그 캐릭터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이 시대적 요구와 잘 맞물렸던 셈이다.

 


종영을 2주 남겨두고 있는 <품위있는 그녀>는 '박복자를 죽인 범인'을 밝혀내는 등 풀리지 않은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내면서 마무리 될 것이다. 이미 '할 이야기'는 상당히 해버린 상태라서 남은 부분은 사실상 작가의 '서비스'와 같은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흥미로운 사건들이 전개될 전망이다. 지난 16회에서 9.986%(닐슨코리아)의 시청률를 기록하며 <힘쎈여자 도봉순>이 갖고 있는 기록을 뛰어넘은 <품위있는 그녀>가 10%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아, 그래서 '범인'이 누구냐고? 그건 백미경 작가의 '마음'이겠지만, 섣불리 한 가지 예측을 해보자면 박복자의 죽음에 우아진이 개입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가 모르는(통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박복자가 죽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천하의 우아진이 자신과 자신이 속해있던 집안의 손에 피를 묻히진 않았을 터, 또 다른 '욕망(혹은 감정)'을 이용해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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