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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 속에서 발견한 오늘, <비긴어게인>이 진짜 들려주고 싶었던 것

너의길을가라 2017. 7. 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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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가 노래를 부른다. 눈을 감고 집중한 채 노래를 연주한다. 
키보드 건반을 능숙하게 누르기도 하고, 기타를 뚝딱뚝딱 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데 괜시리 미소가 지어진다. 예민하고 까칠한 듯한 모습 뒤에 "사는 이유나 존재 가치가 노래 말고는 없기 때문에 노래를 대충 해버리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게 돼 버리는 거야."라는 존재론적 절박함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이번엔 먹먹해진다. 설명하기 힘든 감동이 몰려 온다.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소라는 그 자체로 '음악'이라고 말이다. 


유희열은 키보드를 친다. 절대 음감을 자랑하고, 귀로 노래를 듣고는 금세 코드를 따버리는 능력자다. 놀라는 제작진에게 '직업이잖아'라며 쿨한 반응을 보이는 시크한 매력도 지녔다. tvN <알쓸신잡>에서 '잡학박사'들에게 전해들은 잡학들을 쏟아내기도 하고, 영국 체스터의 숙소 거실에서 마성의 목소리로 <그럴 때마다>를 부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가 돋보이는 장면은 리더십이 드러날 때이다. "방송에 안 써도 되니까 해볼래?"라며 이소라를 독려하고,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윤도현을 자극하고 응원해 결국 무대 위로 올린다. 그는 '공감'이다.


윤도현은 기타를 친다. 물론 노래도 한다. 위의 두 사람보다 '버스킹(길거리 공연)'이라는 주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에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른 경험이 있으니까. 그에게는 거리낌이 없다. <청혼>을 연주해야 했던 그는 '보사노바 주법'을 익히기 위해 연습에 몰두한다. 될 때까지 하는 그의 열정은 '버스킹'과 닮아 있다. 또, 어느 정도 준비가 돼야 노래를 부르는 이소라와 달리, 언제든지 그리고 어디서든 노래를 부른다. 처음 만난 낯선 버스커와 교감을 나누며 함께 기타를 치기도 한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자유'다.

 

 

이소라, 유희열, 윤도현. 그들이 '음악'을 두고 고민하고, 치열히 부딪치는 모습이 좋다. 세 명의 뮤지션은 각자의 결대로, 또 각자의 방식대로 '노래'와 마주한다. 그러면서도 그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그러나 결국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저들이 어우러지는 과정과 결과가 신비롭기만 하다. 대중들의 판타지를 구현하는 것이 예능이 추구하는 수많은 목적 중의 하나라면, JTBC <비긴어게인>은 그 욕망을 제대로 꿰뚫어 본 프로그램이다.


은둔하고 있던,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이소라를 집밖으로 끄집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거기에 같은 시대에 음악을 해왔던 동료와도 같은 유희열과 윤도현을 조합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서로에 대해 워낙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음악'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잡다한 곁가지들이 시청자들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았다. 또, 음악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쓸데없는 '경쟁'이나 '갈등'이 개입되지도 않았다. 편안히, 몰입할 수 있는 '힐링 음악 예능'이 탄생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뮤지션인 세 사람이 낯선 외국에 가서 자신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버스킹을 한다는 건 '방송'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외국에 가서 우리나라 가수들이 버스킹을 한다는 콘셉트만 들고 무작정 아일랜드로 갔다."(<텐아시아>, '비긴어게인' PD "아일랜드 편, 시행착오의 연속"(인터뷰①))는 오윤환 PD의 말처럼, 이건 '무작정'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방송사의 과감함만큼이나 빛나는 건, 역시 낯선 곳에서 새롭게 노래를 하기로 결심한 세 명의 뮤지션들의 도전 정신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무명의 가수들이 버스킹을 떠나는 그림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지적을 하지만,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는 가수가 자신이 지닌 모든 어드벤테이지(advantage)를 버린 채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만 승부한다는 설정이 지닌 흥미로움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름만으로도 환호성을 자아내는 저들이 '이름값'의 울타리 밖에서는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시청자의 입장에서 궁금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음악'이라는 것이 인류가 '공감대' 속에서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가치인지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다.


실제로 세 명의 뮤지션은 '낯섦' 속에 놓인 채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끼면서 거리의 관객들을 만난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노래를 들려주고, 그 순간에 몰입해 관객들과 호흡하고 교감한다. 컨디션이 조금 좋지 못하거나 목 상태가 나쁜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순수하게 '음악'에 반응하는 관객들에 의해 '낯섦'은 곧 지워지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음악'이 존재하고, 그 '음악'을 공유한다는 사실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것이 <비긴어게인>이 진짜 들려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혹자는 <비긴어게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하면서, '과연, 내 노래가 외국에서도 통할까?'라는 부질없는 의도만 남았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를 '사대주의'로 비약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낯섦'이라고 하는 환경적 요인이 프로그램의 의도에서 핵심적인 문제였다는 걸 감안하면 이러한 비판은 힘을 잃는다. 게다가 영화 <원스>의 감동을 느끼기 위해 아일랜드에 가고, 비틀즈의 나라 영국을 찾는다고 해서 이를 '열등감'으로 치환시킬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비긴어게인>은 여행과 음악을 접목시키면서 '음악'을 여행의 과정 속에 놓인 무엇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여행을 '삶'이라는 단어로 바꿔볼 수 있다면, 그 의미는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저 세 명의 뮤지션들은 버스킹을 하면서 '열정'만으로 음악을 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아마도 '초심'이라든지 '오늘', '지금 이 순간'이라는 단어를 되새겼을지 모르겠다.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으리라.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도 같은 것들을 공유했던 건 아닐까. 


"오늘이 오면은 하고 싶었던 게 많았는데 궁시렁 궁시렁 핑계들만 늘어놓는 오늘을 보며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이불을 좋아하는 나의 모순을 되돌아보네." 싱어송라이터 이진아는 미니음반 <RAMDOM>의 수록곡 '오늘을 찾아요'에서 새로운 내일만 바라보는 자신을 돌아보며 '오늘을 살자', '오늘을 찾자'고 노래한다. <비긴어게인>도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낯선 곳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 이소라와 유희열, 윤도현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니, 그렇게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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