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신변 비관한 독거노인의 자살? 죽음의 존엄성마저 훼손하진 말자

너의길을가라 2014. 10. 3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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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늘리지 않고 조금씩 줄여간다. 살아 있다는 흔적을 점점 지워가다 깨끗이 사라지듯 생애를 마감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후지사와 슈헤)


인간에겐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자살'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면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아니, 당신은 죽음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아마 이 질문에 준비된 답을 줄줄 읊어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은 너무도 멀리 있는 아득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것이 지나칠 정도로 가까이 우리 곁에 붙어 있음에도.



지난 29일 오전 10시쯤 서울 장안동의 한 주택에 살고 있던 최 씨(68)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혼자 살고 있었기에 '독거노인'으로 불려졌고, 그가 기초생활수급자에 특별한 직업이 없었기에 '생활고를 비관'했다고 여겨졌다. 결국 그는 '신변을 비관해 자살한 독거노인'으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참 편리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표면적인 양상만 읽어내면 그러한 결론이 내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자신의 죽음을 고민하고 결정하기까지 최 씨가 겪었을 고민이 완전히 빠져있다. 과연 최 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몇 가지 있다. 최 씨의 이웃들은 그가 예의바르고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또, 최 씨는 '고맙습니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라는 메시지가 적힌 봉투 속에 현금 10만 원을 남겼다고 한다. 경찰은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러 올 사람들을 위해 식사나 하라며 돈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 대목에서 울컥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세상 사람들을 배려했고, 죽음이 목전에 와있는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담담했고, 의연한 태도로 생을 정리한 것이다.


지난 2월 송파 세 모녀는 공과금 70만 원을 넣은 봉투에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죽음을 선택했고, 3월 마포 정씨는 '주인아저씨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와 '화장비'라고 적힌 봉투에 각각 100만 원씩을 남겼다. 물론 그들의 죽음에서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의 순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했던 그 결연함이 느껴진다. '신변을 비관'하며 아등바등 거리다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렇게까지 표현하는 것이 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자신의 상황에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언론의 시선은 그들의 죽음을 '신변을 비관해서 자살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지만,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미안함'을 표현하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개의치 말고 국밥 한 그릇 먹으라며 시신이 되어 있을 자신을 수습하러 올 사람들을 위해 돈을 남겼다. 부디 이들은 '불쌍한 사람' 취급하며, 그들의 선택을 깎아내리지 말자.



그렇다고 해서 최 씨와 송파 세 모녀, 마포 정 씨가 '잘' 죽었다고 여기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죽음 앞에 섰던 그들은 누구보다 용감했고 따뜻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2014년의 어느 날, 그들은 죽었고 우리는 살아 남았다.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분노'이다.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분노 말이다. '사람'이 존중받지 못하고, '사람'의 가치가 땅바닥으로 추락한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분노 말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고 나서 박근혜 대통령은 '안타깝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복지사각지대를 점검하고, 더 이상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국회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송파 세모녀법) 통과가 되지 않아서라고 둘러대겠지만, 이 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복지 사각지대가 없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사각지대'는 그 법안 안에 내재되어 있다.



지난 29일 '대통령의 호통'이라는 키워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차분하고 침착한 박 대통령이 '호통'까지 쳤을지 궁금해서 기사를 찾아봤다. 내용을 알게 되니 다소 김이 빠졌다. 어이없게도 '애기봉 등탑 철거' 때문에 그토록 화를 냈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대통령의 진노가 있은 후에 청와대는 신속히 조사를 벌였고, 국방부는 화들짝 놀라 후속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복지 정책이 촘촘히 짜여져 있었다면, 혹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소득을 보장한다면.. 그 무엇이 되어도 좋다. 사람들이 삶보다 죽음을 선택하고 있는 비극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죽음 앞에 섰던 그들은 숭고하고 결연했지만, 그보다 그들이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짓는 예쁜 미소가 더 보고 싶다. 정작 대통령의 호통이 필요한 건 바로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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