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사실로 확인된 정명훈 의혹, 오래된 논란의 종지부 찍을까?

너의길을가라 2015. 1.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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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7일 서울시의회 행정감사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당시) 민주당 장정숙 의원은 "시민 세금으로 지급되는 정(명훈) 지휘자의 급여가 과다하다"고 지적했다. 연출가 김상수 씨가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적인 언론 매체에 정명훈 서울시향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의 고액 연봉과 서울시향 운영의 개선을 촉구하는 글을 게재하면서 '정명훈'을 둘러싼 논란과 논쟁은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정 감독는 "솔직히 믿기 힘들겠지만 저는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라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한 태도로 일관하며 뜨거운 열기를 피해가고자 했지만, 진은숙 · 진중권 남매가 논쟁 대열에 합류(진은숙은 2월 4일, <정명훈과 서울시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는 장문의 글을 발표했다)하면서 불길은 피해갈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그 치열한 논쟁은 해가 바뀐 2월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진은숙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작곡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나에게 지휘자 정명훈은 세계 최정상급 지휘자이다. '많다, 적다'는 것은 비교의 대상이 필요한 상대적 개념이다. 그 대상은 당사자가 하는 일과 의무와 책임인데, 이런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숫자만 가지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정 감독에 대한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여기에 평론가 진중권도 "정명훈 가만 놔둬라. 그만큼 잘났으면, 그 정도 받아도 된다. 예술가에게 굳이 정치적입장을 물을 필요도, 그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며 적극적으로 거들었다. 이른바 남매 공조(共助)론이 제기됐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암묵적 협의도 없었다고 한다. "(우리 남매는) 반경 10km 이내로의 접근은 서로 견디지 못한"다나?


논쟁의 흐름은 '예술과 정치는 별개인가?'는 방향으로 머리를 틀었고, <오마이뉴스>는 진중권에게 묻는다... '예술과 정치 별개' 맞아요? 라는 기사를 통해 '문제의 본질은 고액 급여가 아니'라는 점과 '예술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말, 가장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가한다. 과연 예술과 정치는 별개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런 질문은 어떨까? 친일파들이 남긴 '예술'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술은 단지 정치의 관점에서 올바르다고 하여 항상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반대로 정치의 관점에서 올바르지 않더라도 특정 예술작품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정주의 시가 그의 친일행위로 인해 아름답지 않다는 주장을 내가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서정주의 시가 그의 친일행위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둘을 분리해서 취급하고자 하는 시도야말로 가장 불순한 정치 의도를 내포한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라는 자신의 책에서 "서정주의 시가 아름답기 때문에 그의 친일행위를 용서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를 규정하는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그의 친일행위를 통해 탄생한 '이데올로기'인 것"이라며 '예술과 정치는 별개인가?'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리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여러분이 내린 답은 무엇인가?



정명훈을 둘러싼 논란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문제'가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재조명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세상의 순리가 아닌가 싶다. 지난 2014년 말, 서울시향은 박현정 대표의 '막말 · 성희론 논란'으로 또 한번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된다. 사건은 박 대표의 사퇴로 마무리됐지만, 기자회견을 열었던 박 대표가 "모든 결정이 정 감독 위주의 조직"이라며 서울시향이 사실상 정 감독의 사조직이라고 비판하면서 '정명훈 논란'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에 대한 특별조사를 실시했고, 지난 23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그에게 제기됐던 각종 의혹들은 사실로 드러났다. 항공권의 경우 매니저에게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 항공권을 가족이 탑승(2009년)했던 것으로 확인됐고, 그에 해당하는 금액인 1,320만원은 반환 조치됐다. 또, '투잡 의혹'에 해당하는 정 감독 개인 '피아노 리사이틀' 공연도 박현정 전 대표이사가 개인영리목적이라는 이유로 결재를 하지 않았지만, 미승인 상태에서 공연을 강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향 단원 66명을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공연에 출연시킨 것도 정 감독의 위치를 고려했을 때 지속적으로 참여시킨 것은 부적당하다는 판단을 내려졌다. 그 밖에 단원평가 결과 해촉되어야 할 단원이 재계약 되는 등 특정단원에 특혜를 제공한 부분도 확인됐다. 이러한 서울시의 특별조사 결과는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이사가 지적한 문제점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내용이다.



혹자는 '예술은 예술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며 정명훈을 옹호할지 모른다. 세계적인 지휘자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며 목청을 높일지도 모르겠다. 진보 진영의 일부는 이것이 '박원순 죽이기'의 일환이라며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활용될 여지가 충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들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 뿐이다.


정 감독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박 시장철두철미한 자신의 스타일과 달리 이를 묵과해왔다. 박 시장은 "정명훈 감독에 대한 공격은 취임 직후부터 있었지만 정 감독처럼 서울시민이 사랑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문제가 좀 있다고 하기로서니 배제해버리면 그 대안이 있느냐"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정 감독과 계약을 1년 연장하는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이는 매우 성급한 행동이었음에 틀림없다.


서울시의 특별조사 내용과 관련해서 정명훈 서울시향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와 함께 박 시장의 입장 표명도 주목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진영 논리로 논점을 흐릴 이유도 없다. 그저 팩트를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잘한 것이 있으면 칭찬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비판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자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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