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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뇌사 사건, 정당방위가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

너의길을가라 2014. 10. 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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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자신의 집에 침입한 50대 도둑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뇌사 상태에 빠지게 한 20대 남성. 과연 그에게 어떤 판결이 내려졌을까? 춘천지법 원주지원 박병민 판사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 · 흉기등상해)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에 대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이 소식을 다룬 YTN의 새벽에 든 도둑 때려 뇌사..집주인 징역형 기사에는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 이미지 출처 : YTN에서 발췌 -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하지만 TV 뉴스로 만들어진 보도였던 만큼 내용은 소략했고, 기사를 읽은 네티즌들은 다소 부정확한 내용만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댓글은 '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도둑 보호국'이라는 비아냥, 그러한 판결을 내린 판사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우선, YTN의 보도 내용부터 확인해보자. 


지난 3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주택가. 스무 살 최 모 씨는 입대를 앞둔 친구들과 어울리다 새벽 3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층 거실에 들어선 최 씨, 그런데 서랍장을 뒤지던 도둑을 발견했습니다. 가족들이 걱정된 최 씨는 격투 끝에 50대 도둑, 김 모 씨를 잡았고 경찰에 직접 신고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최 씨에게 맞은 도둑은 뇌를 다쳐 식물인간이 됐고 지금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YTN의 보도만 놓고 보면, 도둑인 김 씨가 최 씨에게 맞아 뇌사 상태에 빠진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다. 경찰에 직접 신고한 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파악할 수가 없다. 또 한 차례의 격투가 벌어졌는지, 아니면 잡혀 있던 김 씨가 일방적으로 맞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비어 있는 부분을 다른 기사를 통해 보충해보도록 하자.



- 이미지 출처 : YTN에서 발췌 -


지난 3월 8일 오전 3시 15분쯤 원주시 남원로의 한 주택에서 발생했다.입대를 앞두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새벽에 귀가한 최모(21)씨는 누군가가 집 2층 거실 서랍장을 뒤지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도둑임을 직감한 최씨는 김모(55)씨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얼굴을 수차례 때려 넘어뜨리는 등 격투 끝에 붙잡아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김씨는 흉기 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고, 최씨를 만나자 그대로 달아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씨는 넘어진 상태에서 달아나려는 김씨를 발로 걷어차고, 빨래 건조대로 수차례 내리쳤다. 이로 인해 머리를 심하게 다친 김씨는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사실상 8개월째 병원 치료 중이다.


다행스럽게도 <세계일보>의 기사는 당시의 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기술했다. 도둑을 발견한 최 씨가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격투 끝에 붙잡은 것은 충분히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집 주인 최 씨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판사도 여기까지라면 충분히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그 이후다. 도둑 김 씨는 넘어진 상태에서 도주를 시도했고, 이에 최 씨는 빨래 건조대로 무방비 상태의 김 씨를 수 차례 내리쳤다. <머니투데이>의 기사에 따르면, 빨래 건조대로 수 차례 내려치고 허리에 차고 있는 벨트까지 풀어 김 씨를 때렸다고 한다. 폭행이 다소 과했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결국 김 씨는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됐다.


제1심을 맡은 춘천지법 원주지원 박병민 판사"도둑을 제압하기 위한 행위라 할지라도 아무런 저항 없이 도망가려던 피해자의 머리 부위를 심하게 때려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것은 방어 행위의 한도를 넘은 것. 이는 정당방위는 물론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과잉방위에도 해당하지 않는 지나친 행위"라고 판시했다.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②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해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 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많은 사람들은 '정당방위'가 아니라면 '과잉방위'로 봐서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것이다. 과잉방위란 '정당방위상황은 존재'하나 침해행위에 대한 방위행위의 균형성이 상실되고 방어방법의 상당성이 결여된 경우를 의미한다. 법원은 최 씨의 행위가 '과잉방위'에도 해당하지 않는 '지나친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는 이혼소송 중인 남편이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하자 칼로 찔러 즉사하게 한 사건에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는 대법원 판례와 같은 맥락이다. (2001도1089)



- 이미지 출처 : YTN에서 발췌 -


만약 '격투 중'에 벌어진 일이었거나 도둑이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면 판결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도둑이 '무방비로 도망 중'이던 상황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앞으로 열릴 항소심의 쟁점은 과연 '알루미늄 재질의 빨래 건조대가 위험한 물건이냐'는 것과 '야간에 도둑을 보고 놀란 상태에 있었던 만큼 과잉방위에는 해당하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빨래 건조대가 알루미늄 재질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제조의 목적을 불문하고 객관적 성질 및 사용방법에 따라' 위험한 물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법리에 비춰볼 때, 알루미늄 재질의 빨래 건조대도 충분히 '위험한 물건'에 해당할 수 있다. 따라서 첫 번째 쟁점에서 피고인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정당방위'는 아니더라도 '과잉방위'였다는 점을 인정받아서 감형 또는 면제를 받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일 테지만, 역시 무방비 상태의 도주 중인 도둑을 뇌사 상태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인정받기기 쉽진 않아 보인다.


P.S. 엄청난 논란을 불러온 YTN의 '소략'하기 짝이 없는 보도는 아쉽기만 하다. 법원이 그러한 판결을 내렸다면, 그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좀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 언론의 기본 아닐까?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 없이 대부분의 내용을 잘라낸 것은 어쩌면 '고의적'으로 보일 정도다. 부디 언론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를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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