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을 가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아무래도 대답의 1순위는 '음식'일 것이다. 이른바 '식도락',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간다는 사람들이 주로 일본으로 떠난다. 물론 일본 현지에서 파는 라멘이나 우동, 카레보다 한국의 맛집이 더 훌륭한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일본에 가아먄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고야의 명물 '히츠마부시(ひつまぶし)'이다. 발음상 '히쓰마부시'라고도 하는데, '(뚜껑 달린) 나무 밥통'을 의미하는 '히츠(쓰)'와 '섞다, 묻히다'라는 뜻의 '마부시'가 합쳐진 말이라는 설과 역시 '나무 밥통'과 장어덮밥의 고유명사 '마부스'의 합성어라는 설이 있다.
'히츠마부시'라는 요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가바야키(장어구이)를 이용한 장어덮밥 요리이다. 일본이 장어 요리에 얼마나 진심이냐면 "(장어구이를) 꿰는 데 3년, 자르는 데 5년 굽는 데 한 평생"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이다. 이 말에는 한 치의 거짓이 없다.
나고야(名古屋)는 히츠마부시의 원조로 꼽힌다. 원래 음식의 원조를 두고 다양한 지역이 경쟁을 하기 마련이라 참고로 미에현(三重県)의 쓰시(津市)도 히츠마부시의 최초를 주장한다. 그럼에도 역시 나고야의 명물하면 히츠마부시라는 공식이 좀더 우위에 있는 듯하다.
"에이, 장어가 거기서 거기지 뭐 얼마나 다르겠어? 어라,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니네?"
여행 첫 날의 첫 끼로 (식도락을 워낙 즐기는 아내의 취향을 고려해) 히츠마부시를 선택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고야에는 히츠마부시 3대장이 있는데, 그 중에서 '아츠타 호라이켄'이 가장 유명하다. 1874년 아츠다 신궁에서 시작해 히쓰마부시를 나고야 최고의 명물로 만든 장본인이다. 원조의 원조인 셈이다.
'오아시스21'을 훑어보고 쇼핑을 하며 이동하는 루트로 일정을 짜다보니 마츠자카야 백화점 10층에 위치한 '아츠타 호라이켄 마츠자카야점'에서 저녁을 먹으면 적당할 듯했다. 구글 평점 4.5점(4,564개)이라는 점도 신뢰가 갔다. 웨이팅이 너무 길까봐 걱정했는데, 겨울에 평일이다보니 입장이 생각보다 수월했다.
널찍한 식당 내부에 손님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히츠마부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메뉴판을 보고 고민할 필요도 없이 히츠마부시 2개를 주문했다. 'Large size(6,600엔)'는 양이 많을 것 같아서 'Regular size(4,950엔)'를 선택했는데, 기존 사이즈도 충분한 양이긴 했지만 나중에 살짝 후회했다.
잠시 후, 상냥한 직원의 지휘 아래 테이블 위에 장어덮밥이 세팅됐다. 여행으로 인한 허기와 새로운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혼재되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나무통의 뚜껑을 열자 노릇하게 구워진 장어가 한가득 들어 있고, 겉면에 발린 붉은색 양념이 영롱하게 빛난다. 그 아래 잘 지은 밥이 소복히 담겨 있다.
"밥과 장어 양의 배분을 걱정하면서 주의 깊게 먹어 나가는 즐거움."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 구스미 마사유키)
살이 통통한 장어를 영접하니 더 이상 인내심을 발휘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대로 자유롭게 먹어도 무방하지만, 이곳은 격식과 먹는 과정의 즐거움을 중요시하는 일본 아닌가. '아츠타 호라이켄'에서는 히츠마부시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친절히 소개하고 있다.
먼저, 밥통에 담긴 밥을 4등분한다. 1/4은 오롯이 장어와 밥만 먹으며 본연의 맛에 집중한다. 다음 1/4은 파, 고추냉이, 김 등을 취향에 맞게 섞어 먹는다. 시즈닝을 통해 다양한 맛을 느껴보라는 취지다. 다음 1/4은 제공되는 차를 넣어 오차즈케와 같이 먹는다. 그럼 나머지 1/4은 어떻게 먹을까. 앞의 3가지 중 가장 맛있었던 방법으로 먹으면 된다.
솔직히 장어를 즐겨먹지 않는 입장에서 그릇을 가득 채운 장어를 보며 살짝 우려를 했었는데, 잡내가 없고 잔가시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등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술술 먹는 나 자신에 오히려 놀랐다. 짭짤한 간장베이스의 양념이 장어와 조화로웠고, 불향과 같은 풍미도 느껴져서 입 안이 즐거웠다.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 구스미 마사유키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밥과 장어의 양의 배분을 걱정하며 먹는 나 자신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옆자리에서 연신 감탄과 함께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를 하고 있던 아내는 장어 손질이 넘사벽이라며, 평생 먹어본 장어덮밥 중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섬세한 맛이라고 했다.
이쯤되니 식당을 소개한 입장에서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갔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아츠타 호라이켄 마츠자카야점'에서 플렉스를 즐겨봤는데, 결코 후회하지 않을 맛이니 나고야에 간다면 꼭 방문하길 추천한다. 이 음식만으로도 나고야라는 도시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나고야에 또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건 히츠마부시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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