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라는 직업이 참으로 애처롭다. 걸핏하면 밤을 새워야 하니 몸이 온전할 리 없다. 그런 패턴으로 계속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몇 년 지나지 않아 몸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될 것이다. 탈이 안 나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기적으로' 밤을 세운다는 것 정도다. 불규칙의 규칙화랄까. 게다가 그들의 '밤'이 아름다울 리 있겠는가. '주폭'이라 불리는 주취자들과 매일같이 씨름해야 하고, 토사물까지 깨끗이 치워야 한다.
불법 주정차 단속(은 엄밀히 말하면 구청 소관이다)에서부터 소음 처리(역시 경찰의 본 업무는 아니다)까지 온갖 잡다한 신고를 처리해야 한다. 물론 그런 일들만 처리하는 건 아니다. tvN <라이브>에서 한정오(정유미)는 모텔에서 발생한 성폭행 신고를 받고 출동해 참혹한 현장을 목격해야 했고,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선 끔찍하게 살해된 여성의 시신과 마주쳐야 했다. 그리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현장에 맞는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그 매뉴얼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장은 매번 변수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상수(이광수)는 "언젠 매뉴얼대로 하라 그러고, 매뉴얼대로 하면 사리분별 못한다고 그러고. 오늘도 사람 목숨이 먼저지, 증거가 먼저예요? 증거 찾다 사람 죽으면 그땐 어쩔 건데!"라며 울분을 토한다. 그래서 현실 속의 현장에선 '운용(運用)의 묘'가 우선이고, '유도리'가 앞선다.
말단에 불과한 경찰들은 권력 앞에 무기력하다. 음주 측정(정확히는 감지)에 불응한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알량한 권력을 믿고 행패를 피운다. 경찰을 향해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던 국회의원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풀려난다. (물론 현행범 체포가 됐다 하더라도 조사가 끝나면 대부분 석방된다. 굳이 윗분들의 의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극화(劇化)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이러한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공분을 자아낸다.
이렇듯 <라이브>는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심층적인 접근을 하는 동시에 경찰도 한 명의 시민이자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취재 기간만 1년이고, 수십 명의 지구대 경찰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다고 하니 리얼리티에 있어서는 인정을 할 만하다. 노희경의 끈질김은 작가로서의 자존심이다. 게다가 노희경 특유의 휴머니즘은 이번에도 빛을 발하고 있다. '그들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이고, 형제이다.'
애처로운 직업인 경찰과 청춘이라는 세대가 결합하니 안타까움은 더욱 커진다. 사회 내에 뿌리내린 여성 차별에 발목 잡힌 한정오와 정규직을 꿈꾸는 인턴에서 회사로부터 사기를 당해 무일푼으로 전락한 염상수는 우리네 청춘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꿈을 거세 당하고,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그들은 자발적으로 공시생이 된다. 그나마 정오와 상수는 사정이 낫다. 쉽게(?) 시험에 합격하며 빨리 터널에서 벗어났으니 말이다.
<라이브>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쉽사리 접할 수 없는 경찰의 생리를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똑같이 제복을 입었지만, 장난스러웠던 KBS1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시청률도 껑충 뛰어 올랐다. 4.337%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하락하는가 싶더니, 4회에선 5.832%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해서 마음이 편치 않다. 한구석이 쓰라리다.
그렇다. 2회에 나왔던 문제의 장면 때문이다. <라이브>는 이화여대 시위를 묘사했고, 이를 경찰의 시선에서 진압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현장에 있었던 상수는 "경찰이 왜 학교를 와?"라고 의아해 했고, 혜리(이주영)는 "학내 문제에 왜 경찰 투입?"이라고 마뜩지 않아 했다. 학생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경찰들은 괴로워 했고, 죄의식을 품었다. 그러나 그 고민은 '먹고사니즘' 앞에 싸늘히 식어갔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당장 문제를 제기했다. '경찰을 미화했다'는 비판 말이다. 제작진은 "작가님의 기존 색깔 상 (경찰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수뇌부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노희경이 경찰을 미화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작진의 말처럼 그가 저격하고 싶었던 건 권력에 복무하는 수뇌부였을 것이다. 그래서 가장 대비되는 교육생들을 시위 현장에 투입했던 것이리라.
그들은 아직까지 경찰 조직에 완전히 스며들지 않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막 경찰에 들어온 그들에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고민하는 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미화할 의도가 없었다고 하나, 당시 이대 시위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들의 증언은 다르다. 여전히 경찰만 보면 숨이 가빠지고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라이브>의 왜곡된 재연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실제로 과잉 진압이라는 논란이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왜 그래, 경찰도 사람이야. 우리도 애환이 있어.'라고 말하는 건 잔인한 일 아닐까. 애환이 없는 직업이 있겠는가. 물론 경찰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공권력'을 다룰 땐 보다 신중해야 한다.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는 경찰을 단지 한 명의 인간으로 이해하는 일은 훨씬 더 진중해야 한다. <라이브>의 발걸음은 더욱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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