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강제 키스하는 여성의 혀를 깨문 남성, 정당방위 아닌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4. 12. 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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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조(정당방위)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최근 정당방위와 관련한 판결들이 계속해서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도둑 뇌사 사건'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법원은 '정당방위'가 적용되는 요건을 엄격하게 따지고 있다. 이러한 입장이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보수적으로 비춰지는 것 같다. 하지만 위법성을 조각(阻却)하는 정당방위를 너무 손쉽게 허용하는 것은 법질서를 흔들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남성이 강제로 키스를 하는 여성에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혀를 깨물어 다치게 했다면 이를 정당방위로 볼 수 있을까? 법원의 판단은 'NO'였다. 이번 판결은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차별'을 받은 것이라는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어떻게 이러한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일까?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김 씨(23)는 지난해 6월 자신의 여자친구와 그녀의 지인들 등과 함께 술을 마셨다. 김씨는 새벽 4시께 술에 만취해 쓰러져 있던 중 여자친구의 지인 A(여)씨가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하려 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A씨의 혀를 깨물었다.이 일로 A씨는 혀 앞부분의 살점 2cm가량이 떨어져 나가는 상처를 입었다.


중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씨는 A씨가 만취한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하면서 목을 조르는 등 추행을 했다면서 남성의 성정 자기결정권도 여성과 동등하게 보호되어야 하는 만큼 정당방위로 인정해 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형사6부(김상환 부장판사)는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김 씨(23)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던 1심에 비해서는 감형)했다.


제258조(중상해, 존속중상해) 


①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신체의 상해로 인하여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재판부의 설명을 들어보자. "피고인이 A씨의 몸을 밀쳐내는 등의 방법으로 제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도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가해 혀를 깨물어 절단했다. 이런 행위는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으므로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 A씨가 피고인보다 덩치가 더 크더라도 혀를 깨무는 방법 외에는 A씨의 행동을 저지하거나 회피할 만한 다른 수단이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개된 장소에서 발생한 일인 만큼 일행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다."


몸을 밀쳐내거나 일행에게 도움을 청하는 등 다른 방법, 즉 A씨의 행동을 저지하거나 회피할 만한 다른 수단이 있었기 때문에 '정당방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당방위는 긴급피난처럼 '보충성(최후수단성)'을 요구하진 않지만, '방위행위의 요구성(정당방위의 제한요건)'을 따진다. 정당방위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윤리적 측면에서 보아 용인되지 않는 경우에는 제한 내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을 접한 수많은 사람들은 '피해자가 여성이었다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며 '역차별'을 주장했다. 피해자가 남자이기 때문에 되려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판결의 핵심을 '성별'에 둬도 되는 것일까? 실제로 1989년에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적이 있다. 이른바 '혀 절단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甲과 乙이 공동으로 인적이 드문 심야에 혼자 귀가 중인 丙(女)에게 뒤에서 느닷없이 달려들어 양팔을 붙잡고 어두운 골목길을 끌고 들어가 담벽에 쓰러뜨린 후 甲이 음부를 만지며 반항하는 丙의 옆구리를 무릎으로 차고 억지로 키스를 하므로, 丙이 정조와 신체를 지키려는 일념에서 엉겁결에 甲의 혀를 깨물어 설(舌)절단상을 입혔다면 丙의 범행은 자기의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려고 한 행위로서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 목적 및 수단, 행위자의 의사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위법성이 결여된 행위이다. (대법원 1989.8.8.)


1989년의 혀 절단 사건은 이번 사건과 확연히 구분이 된다. 단지 피해자가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의 심각성이 다르고, 취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가 다르다. 2명이 한 명을 상대로 성폭행을 하려던 상황은 사실상 항거가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덩치가 상대적으로 좀 크다고 하더라도 공개된 장소에서 행해진 성추행의 경우와 분명히 다르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 기준으로 볼 때, 설령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가 여자라고 하더라도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 보이진 않는다. 물론 이러한 '가정'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법원의 판결은 '주어진 사건'만을 놓고 심사하고 판단해서 내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다르다면 결론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여러가지 가능성을 언급하며 판결에 대한 비판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물론 강제로 키스를 당한 남성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원치 않는 성적 행위는 수치심 또는 불쾌감을 일으키고, 이러한 감정은 남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여성의 행위는 명백한 성추행이고, 이는 따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반드시 혀를 깨물 수밖에 없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NO'일 수밖에 없다.


원하지 않은 (성)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정당방위'적' 행위를 했지만, 이것이 법적 요건에 맞지 않아 인정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애시당초 상대방의 행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정당방위'적' 행위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피해를 주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이를 당했을 때 '합리적인' 판단 하에 대응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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