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여러분의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나요?

너의길을가라 2014. 11. 2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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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7일,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의 경비원 이 씨는 아파트 입주민의 계속된 언어폭력에 견디다 못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이 씨는 11월 7일 패혈증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실태 조사를 위해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이 증언 등을 수집했고, 이에 따르면 사망한 이 씨 말고로 여러 경비원이 '일상적으로' 아파트 입주민들로부터 폭언 등을 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입주민들은 경비원의 업무가 아닌 휴지 줍기, 화분 치우기, 낙엽 쓸기 등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에게 폭언을 쏟아부었고, 심지어 한 주민은 유통기한이 지난 떡을 5층에서 화단으로 던지며 경비원에게 주워 먹으라고 강요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쯤이면 인격 '모독(冒瀆)' 수준이 아니라 '말살(抹殺)'에 가깝다. 우리가 다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입주민들(전부는 아니겠지만)의 악행(惡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5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용역업체 변경을 결정했다. 20일에는 경비원 78명을 비롯해 용역업체 노동자 106명에게 12월 31일 해고하겠다는 예고 통보를 보냈다. 물론 용역업체를 변경하고 새로운 경비원을 고용하는 것 자체를 두고 '악행'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속내가 어떤 것인지는 일련의 과정을 놓고 볼 때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씨가 사망한 이후 노조 측은 아파트 관리회사, 입주자대표회의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 마련과 보상 문제를 두고 교섭을 벌여왔다. 아무래도 아파트 입주민 측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마뜩지 않았을 것이다. 경비원 이 씨의 죽음이 아파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작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경비원 이 씨에게 전가하고 싶었을 것이다.


ⓒ 한겨레


이미 경비원들 사이에서는 "분신 사건 이후 진행한 노동 조건 개선 요구로 대규모 계약해지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다. 경비원 김인준 씨는 "(분신사건 이후) 입주민들이 반발심을 갖고 '○○와 계약하지 않겠다. 전 대원을 몰아내야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해고 통지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신현대아파트분회는 잠정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하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낸 상태다.


물론 '보복(報復)'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내년(2015년)부터는 감시·단속직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90%에서 100%로 오르게 된다.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원들에게 12월 31일 해고하겠다는 예고 통보를 보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문제는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이 80%가 적용되다 90%로 올랐던 2012년, 경비 노동자의 10~20% 가량이 해고됐던 상황이 재현될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울 성북구 석관동의 두산아파트에서 들려온 '상생(相生)'을 도모하는 아름다운 소식은 우리들의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주었다. 두산아파트 입주민들은 입주민대표회의에서 내년 경비노동자의 임금을 19%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 100%보다도 다소 높은 금액이다. 그리고 기존의 경비노동자 30명 모두 내년에도 일터를 지킬 수 있게 됐다.


두산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심재철 씨(45)는 "경비원을 자른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해고 경비원도 고통을 겪고 주민들도 불편하다. 누군가의 고통을 동반하는 관리비 내리기는 '나쁜 관리비 내리기'"라며 이번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경비비 예산을 늘리면서 경비원들의 임금을 인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입주민들의 노력이 있었다. 입주민들은 전기료 절약을 통해 연간 1억 원을 아낄 수 있었고, 경비비 예산도 늘릴 수 있었다. 참으로 위대한 입주민이 아닐 수 없다.



두산아파트에서 6년 동안 근무를 해온 권광웅 씨는 "일만 열심히 하면 잘릴 걱정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 오래 일하다보니 주민들과의 관계도 돈독해지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꿰게 됐다"고 말한다. 깜깜하기만 하던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내려진 것만 같다.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고, 인격적인 존중을 받는다는 생각은 결국 더 좋은 업무 수행으로 되돌아온다. 관리비를 아끼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이겠지만, 정작 '무엇을'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무엇이 아파트를 위한 선택인가, 무엇이 입주민 자신을 위한 선택인가? 그리고 무엇이 대한민국 사회를 위한 선택인가?


청소 노동자들이 우리 시대의 어머니라고 한다면, 경비원들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인 셈이다. 이들의 얼굴에 걱정과 근심이 아닌 미소가 가득한 세상이 오길 바란다. 두산아파트의 예를 보면 결코 불가능한 꿈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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