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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외면 사이, <응팔>의 가족과 <그래, 그런거야>의 가족

너의길을가라 2016. 3. 1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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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은 길을 걸어서 지친 하루를 되돌아 오면 

언제나 나를 맞는 깊은 어둠과 고요히 잠든 가족들 


때로는 짐이 되기도 했었죠 많은 기대와 실망 때문에... 

늘곁에 있으니 늘 벗어나고도 싶고... 


(······)


가족이어도 알 수 없는 얘기 따로 돌아누운 외로움이

슬프기만 해요 아무 이유도 없는데 


(······)


힘이 들어 쉬어가고 싶을 때면 나의 위로가 될 

그때의 짐 이제의 힘이 된 고마운 사람들 


1997년 발매된 이승환의 5집 앨범 중 <가족> -



'가족(家族)은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화두(話頭)이자 숙제다. '나도 모르게' 태어나면서 주어지게 되는 환경이자 관계인 가족은 '나'의 바탕이자 뿌리가 된다. 그 속에서 '나'는 형성되고 다듬어지고, 때론 부서지고 조각나기도 한다. 또,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산실(産室)이자 수많은 이야기를 지워내고 싶은 상실(喪失)이기도 하다.


또, 가족은 '현실'이자 '판타지'다. 안락함을 느끼고 존재의 이유를 찾기도 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벗어나고 싶고 떼어내고 싶은 저주스러운 '시간'이기도 하다. 여전히 우리는 가족이라는 '현실' 속에서 '판타지'를 갈구하고, 가족이라는 '판타지' 속에서 '현실'이라는 무거운 균형감각을 발견하곤 한다. 이처럼 가족은 변함없이 우리의 '이야깃거리'가 되곤 하지만, 그 양상은 시대에 따라 달리 표출된다.


고전적인 의미의 가족이 '부부를 중심으로 한집안을 이루는 사람들(『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제6판)'을 뜻하는 것이었다면, 근래에 들어 가족의 의미는 '혈연, 혼인, 입양, 친분 등으로 관계되어 같이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공동체) 또는 그 구성원'으로 그 구성과 범위가 확대되었다. 여전히 가족은 여러 관계들이 전제되지만, 앞으로는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가족의 의미를 '피'에서 찾는 것은 고루한 생각이 될 것이고, '부대낌(긍정적 의미의 부딪침)'이 만들어내는 '조합'의 성격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측면들을 잘 보여준 것이 바로 tvN <응답하라 1988>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의 '응답하라' 시리즈와는 차별화된 부분이 바로 '가족'에 포인트를 줬다는 지점이었다. 


(드라마 상에서) '쌍문동'에는 혈연 집단으로서 네 가족이 여러 형태로 등장한다. 그 면면은 우리가 익히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이다.


1. 성동일, 이일화 - 성보라, 성덕선, 성노을

2. 김성균, 라미란 - 김정봉, 류준열

3. 김선영 - 선우, 진주

4. 최무성 - 최택



하지만 '쌍문동'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가족'을 의미하는데, 이 네 가족은 '더불어' 살아가면서 더 큰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들은 '혈연'으로 엮인 사이도 아니지만, 훨씬 더 짙은 연대감을 공유하고 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고 챙긴다. 그런가 하면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정서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그들은 서로의 직언(直言)을 고깝게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인다.


<응답하라 1988>이 그려낸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모습들을 보고 우리는 얼마나 진한 감동을 받았던가.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응답하라 19988>이 케이블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는 등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꿈꾸는 '가족'이라는 '판타지'를 완벽하게 재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실체적으로 경험했던 시대인 1980년대와 1990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익숙함을 넘어 친숙한 느낌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응답하라 1988>에 쏟아졌던 뜨거운 공감은 가족과 가족을 연결하는 더 큰 가족, 다시 말해 '공동체'를 복원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이자 바람이었을 것이다. 



한편, '작가계의 대모'라고 불리는 김수현 작가는 복귀작인 SBS 주말극 <그래, 그런거야>를 통해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들고 나온 판타지는 어김없이 '대가족'이었는데, 애석하게도 시청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그의 시도는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현대인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품어줄 정통 가족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는 <그래, 그런거야>는 삼대(三代)의 이야기를 다룬다.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드는 중견 배우들에게는 희소식이다. 또, 연기를 곧잘 하는 젊은 배우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그의 드라마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와는 결을 달리 한다. 출생의 비밀이나 복수 치정극 따위가 설 자리가 없다. 



매번 그러했던 것처럼 김수현은 '(대)가족'을 이야기한다. 그 주체가 <엄마가 뿔났다>에서처럼 '엄마'가 되거나 <부모님 전상서>에서처럼 '아빠'가 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때는 그의 이야기'빨'이 먹히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의 '판타지'는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매번 같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식상함, 여백이 없이 쏘아붙이는 징글징글한 대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김수현의 실패는 대가족이라고 하는 시대착오적인 가족 판타지를 억지로 끌고 오는 데서 비롯된다.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고 싶어하는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태엽을 무리하게 돌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가족 체제 속에서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의 고된 모습이 <그래, 그런거야>의 큰 줄기이자 핵심인데, 이미 대가족 제도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가족 형태가 아니던가?



대한민국의 1인 가구가 이미 3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서울 일부 지역에는 70%를 돌파했다고 한다. 통계청의 2014년 12월 통계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1인 가구는 전체의 34.01%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인 가구가 2인 가구(20.74%), 4인 가구(19.63%), 3인 가구(18.53%) 보다 훨씬 높은 비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가족'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감이 없어 보인다. '농경사회'에서나 적합했던 '대가족' 체제는 많은 불합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가부장제가 바탕이 된 수직적 관계들은 구성원들을 억압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희생양은 '(맏)며느리'였다. 흔히 그것을 가족에 대한 사랑과 거룩한 희생으로 포장하지만, 당사자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겠는가.


불필요한 '허례허식'이 존재하고, 서로에 대한 '눈치'가 관계의 절반 이상을 잠식하고 있는 '대가족'이라는 불편함을 사람들은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대가족'이라는 체제, 그 판타지를 희구하지 않는다. 그건 고통스럽고 부당하고 피곤한 체제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몰아붙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애초에 수평적인 대가족이란 형용모순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 이 두 '대'가족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 -


<응답하라 1988>과 <그래, 그런거야>, 두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 반응의 극명한 차이는 '가족'에 대한 시선에서 감지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응답하라 1988>을 통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힐링(이라는 단어가 갖는 기만적인 느낌을 배제하도록 하자)'을 했던 수많은 시청자가 존재했다. 


반면, <그래, 그런거야>가 그리고 있는 가족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존재한다. 그 간극(間隙)엔 무엇이 있을까? <응답하라 1988>의 이우정 작가가 '그리워하는' 가족, 그가 찾아낸, 이 시대가 원하는 가족과 <그래, 그런거야>의 김수현 작가가 '그리워하는' 가족, 그가 되돌리고 싶어하는 시대의, 가족의 차이가 아닐까? 


우리는 여전히 '가족'을 이야기하고 듣고 싶어 한다.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을 원하고,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바란다. 우리에겐 여전히 '가족'이 필요하다. 질문은 거기에서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우린 '어떤' 가족이 필요한가. '어떤' 공동체가 필요한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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