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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넘어선<배우학교>, 박신양이 던진 질문이 만든 강렬한 파동

너의길을가라 2016. 2. 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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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나영석 PD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능의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2014년 예능, 나영석 PD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우리는 늘 예능이 장르의 최첨단을 걷는다고 생각하는데, 최근에 가만히 보면 (예능이)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래 있던 기본 장르와 오히려 유사해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앞으로 연예인보다 일반인이 주요 출연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갖는 무게가 있다. 그것만 잘 포착하면 굳이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볼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해보니 딱 <인간극장>이더라. 이미 오래전부터 하고 있던 프로인 거다. '아, 먼 길을 돌아서 원형으로 가는구나' 이런 이야기를 우리끼리 자주 한다."


하나의 분야에서 장인(匠人)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 던지는 선언적 예언과도 같이 들린다. '예능이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그의 말은 '크로스 오버(Cross-over)'의 수준을 넘어선다. 오히려 통섭(統攝,Consilience)에 가깝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사(人間事)에 예능과 드라마, 다큐멘터리의 구분이 어디 있겠는가. 



한켠에는 극단적으로 웃음을 지향하는 예능도 분명 존재하지만, 또 다른 한켠에선 나 PD의 예언처럼 '먼 길을 돌아서 원형으로 가는' 프로그램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듯 하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프로그램인 tvN <배우학교>가 바로 그 분명한 예시가 아닐까? 분명 '예능'으로 출발했지만, <배우학교>는 그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짓기 매우 어렵다.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다큐이면서, 인생을 비추는 드라마 같다.


<배우학교>의 연출을 맡은 백승룡 PD는 "예능으로 시작되었지만, 촬영을 하다 보니, 드라마인지, 다큐멘터리인지 모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부지불식(不知不識) 간에 벌어진 것이다. 물론 그 혼란(!)을 만들어 낸 주인공은 '배우학교'의 교장인 박신양이다. 오롯이 그의 '진중함'과 '진정성'이 만들어낸 반가운 혼란이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압도한 박신양은 '자기소개'로 수업의 포문을 연다. 그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게 한다. 


"나는 왜 연기를 배우려고 하는가"

"연기와 연기자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연기(演技)를 '술(術)'로만 이해하고, 가볍게 접근했던 학생들은 당혹스러워한다. 왜냐하면 박신양이 던진 질문들은 '철학적'인 것이었고, '본질적'인 사유를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연기'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학생들은 머뭇거리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변명'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여전히 '방송'을 의식하던 유병재는 된통 혼이 나야 했다.




박신양이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 이유는 간단했다. 학생들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생으로서 제대로 연기를 '가르치고 싶었던' 박신양은 정말 진심으로 연기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에게만 그리 하겠다는 결심을 갖고 있었다. '호응'이 필요했다. 자신의 '진심'에 반응하는 학생들의 '진심' 말이다. 그것이 무려 14시간에 달했던 '자기소개'라는 도입부가 박신양에게 필요했던 이유였다. 


또, 박신양은 '연기'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흉내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속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아는 것이었고, '나'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결국 연기란 건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에 다름 없었다. 물론 그 껍질을 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교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고, '연기'와 '배움'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 때문에 또 다른 스승을 찾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던 박신양은 그 스스로 '좋은 스승'이 되어 제자들 앞에 섰고, 일종의 충격요법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과정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긴장감이 넘쳤고,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감동적이었다.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던 막내 남태현은 결국 눈물을 흘리며 진솔한 생각을 털어놓았고, 시종일관 '방송'을 의식하던 유병재는 압박감에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유병재는 차분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오랜 경력 탓인지 약간의 허세를 부리며 스스로를 '똥배우'라고 자조하던 이원종은 "진심이 안 느껴진다"는 박신양의 돌직구에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 장면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우리의 '교실'을 생각하게 됐다. 과연 우리는 "나는 왜 공부를 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박신양의 교실'이 없었다. 무조건 책상에 앉아서 책을 봐야만 했고, 이유를 묻지 말고 달달 외워야만 했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괴상한 목표만 있었다.


물론 많은 선생님들이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주입식 교육'이라는 현실이, '정형화된 교육 환경'이 이를 허용치 않았을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그건 너무 낭만적이야'라고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빠른 것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뿌리를 단단히 내려야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째서 몰랐을까.


박신양은 '연기'를 하기 위해선 결국 '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단지 '연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든 간에 그 기본 바탕은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삶'은 가벼이 휘청대고, '하루'는 정처없이 흩날릴 수밖에 없다. 주입식 교육으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우리의 학창 시절에는 결코 허용되지 않았던 사치스러운 질문을, 그 누구도 우리에게 묻지 않았던 그 질문을 이제라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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