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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확인시켜준 멘토의 자격, 윤태호에게 답이 있다

너의길을가라 2016. 2. 29.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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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healing)'이라는 말만큼 사람들을 기만하는 언어가 있다면, 그건 바로 '멘토(mentor)'가 아닐까? 멘토를 갈구하는 사회, 자발적으로 멘티(mentee)가 되고자 애쓰는 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강준만은 '한국 사회는 왜 멘토를 갈망하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책『멘토의 시대』에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멘토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인물 12명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멘토 기법과 특징을 분석하고 있다.


강준만은 자신이 선정한 인물들에 특징에 맞게 나름대로의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가령 안철수에게는 '선망형 멘토', 문재인에게는 '품위형 멘토', 박원순은 '순교자형 멘토'라고 개념화하고 있다. 뒤에서 제법 신랄(辛辣)하게 살펴보겠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탔던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실무형 멘토'란다. (이 글에서 그런 이름들은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도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누구나 해봤음직 한 생각일 것이다. 그 이유는 과거와 달리 가정 내의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이 무너지고, 학교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붕괴(崩壞)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자연적으로 혹은 당연히 주어졌다면, 이제 '멘토'는 내가 직접 나서서 구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차별성은 있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라고 하는 관계는 전통적 위계질서가 바탕이 된다. 따라서 수직적 관계에 놓여 있다. 쌍방향적 소통이라기보다는 일방향적이이다. 반면, 멘토와 멘티는 수평적 위치에서 출발하는 비교적 평등한 관계(라고 여겨진)다. 전자가 '가르침'으로 연결되는 것에 비해 멘토와 멘티를 이어주는 것은 정서적 교감이고, 그렇기 때문에 멘토와 멘티는 상황에 따라 서로의 역할을 바꾸게 된다나?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의 '멘토와 멘티'는 그런 '환상'을 기반으로 한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속이는 양상이랄까? 그래도 서로를 통해 '위안'을 주고받으니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자위(自慰)한다면 좋겠지만, '삶'이라는 것이 어디 환상만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이던가. 서서히 금이 가고 있던 발밑의 얼음이 깨어지는 순간 깨닫게 된다. 아, 이런 개뼈다귀 같은!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이자 자칭 'B급 좌파'인 김규항은 '지난 몇 해 동안 한국에서 발간된 책 가운데 가장 파렴치한 책'으로 단연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꼽는다. 무려 300만 부 이상 팔렸던, 그야말로 청춘들의 멘토였던 김난도 교수의 책이 가장 파렴치한 책이라니?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김규항에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청년의 지옥'이라 불리는 사회에서 기성세대의 한 사람이 청년에게 할 첫 번째 말은 '미안하다'여야 한다. 좀 더 사리분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실을 바꾸자, 나도 함께하겠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난도를 비롯한 수많은 파렴치한과 철딱서니들이 멘토로 군림하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멘토' 열풍이 '자본주의'와 결탁(모든 것은 삼키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감안하면 놀랄 일은 아니다)하면서 그것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 속에서, 그런 흐름에 일조하는 김난도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늘어 놓는 것은 어찌보면 제 속성에 걸맞은 일이며, 청년들의 멘토로 군림하면서 책을 300만부 넘게 팔아치운 김난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좌파로서 김규항이 취할 수 있는 당연한 태도일 것이다.



지난 27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은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소위 전문가들에게 자신이 평소에 갖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고, 그들로부터 상담 기법(?)을 배운 멤버들이 시민들의 고민에 고민에 공감하는 '나쁜 기억 지우개' 특집으로 꾸며졌다. 전문가이자 멘토로는 혜민스님, MBC 기자 출신의 조정민 목사, 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 한국 자살예방협회 김현정 대외협력장, <미생>의 원작자인 만화가 윤태호가 출연했다.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이 글은 '멘토'에 대해 상당히 삐딱한 시선을 갖고 있다. 다른 시청자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방송에서 멘토라 지칭되는 이들은 (애써) 밝은 미소로 걱정 하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도대체 너흰 왜 그렇게 걱정을 안고 사니?"라는 그들은 '위로'를 주기보다 '허탈감'을 안겨준다. 방송 내내 이런저런 (의미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이야기'를 이끌어내고자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멘토'라고 출연한 유명인들은 생각했던 것(처럼)보다 시원한 대답을 주지 못했다. 상담이라는 것 자체가 '물음'을 통해 '대답'을 유도하는 것이라지만, 그건 정신과 의사의 몫이지 자칭 '멘토'들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저 유명한 혜민스님까지 끌어들였지만, 정작 시청자들에게 가장 큰 위로와 심리적 치유를 선물한 것은 윤태호 작가였다. 


영리한 김태호 PD도 이를 알았던지, 윤태호 작가의 코멘트에'만' 어김없이 배경음악을 깔아 그 전달 효과를 극대화했다. 윤태호 작가의 '진심'이 담긴 자기 고백과 그로부터 시작된 묵직한 성찰들은 그야말로 '주옥' 같아서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의 워딩을 손실하지 않고, 가급적 그대로 옮겨봤다. 다소 길지만 함께 읽어보도록 하자.




"<미생> 연재할 때 선 차장이라는 맞벌이 주부,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데요. 그 사람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다가 남자 주인공이 중간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나올 때, 그 어린이집에 무수한 아이들이 나오는 그 이야기를 가지고, 굉장히 많은 분들이 가슴 아파하고 댓글도 많이 달아주셨거든요. 제가 실제로 경험한 일인데,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1층이 어린이집이었고, 그때 제가 제 아이를 길게 그날따라 맡기는 바람에 오후에 제가 찾으러 갔는데, 그 집 안에서, 그 어두컴컴한 데서 아이들이 우루루 나오는 종일반 아이들이, 그때 제가 대사로 썼던 게 우리가 행복하자고 우리를 위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 우리가 희생당하고 있다는, 결국 지금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어떤 특별하게 크루즈 여행을 못 가거나 여행을 못 가서가 아니라 일상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몇 년 전에 남극 세종기지를 갔다 왔었는데요. 세종기지에서는 워낙에 주변이 척박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룰을 어머어마하게 탄탄하게 만들고 있고,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하면 바로 징계가 들어간다거나. 그 정도 공간까지 가야 우리는 일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는데, 그 일상이 무너졌을 때는 여행을 간다고 해서 그게 채워지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채워지는 게 아니거든요. 작은 단위에서 나, 그 다음에 내 가족, 내 구성체, 이 모든 부분이 일상적인 언어로 보람있게 채워져야 우리가 잘 살고 있다고 느낄 거거든요."


"기자 분들도 저한테 질문할 때 그런 질문을 가장 많이 하시고, 직장인들도 가장 많이 하시는 질문이, 당신은 꿈을 이룬 사람인데 우리를 봤을 때 어떻게 보이느냐?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과연 꿈을 이룬 사람인가, 를 생각해본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꿈이라는 게 단순히 만화가, 과학자, 연예인 이게 꿈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 만화가가 저는 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직업 앞에 그 직업을 어떤 태도로 수행하는 내가 있어야 하는 거죠. 저는 20대를 거의 욕망 덩어리로 보냈었거든요. 그것도 과한 욕망 덩어리로. 왜냐면 대학 입시 떨어지고 나서 바로 만화를 그리러 올라와서 굉장히 어렵고, 길에서 노숙도 하면서 지냈었기 때문에. 이상한 복수심이랄지, 화가 좀 몸에 많이 나 있었고, 잘 돼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제가 꿈꿨던 만화가는 굉장히 나이스하고, 유머러스하고, 멋있고, 좋은 작품 만들고, 이런 작가였을 텐데. 제가 보는 제 모습은, 제가 어렸을 때 꿈꿨던 모습과는 굉장히 다른 괴물이 돼 있는 거죠. 만화가라는 그 앞에 나를, 어떤 말로 수식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지가 제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부분인 것 같고, 그래서 꿈이라는 걸 꼭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 꿈은 뭐야' 물을 때 항상 직업으로 답을 듣지 않았으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어라고 질문을 했으면."


"우리가 살면서 정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자기 자신이 빠져버리기 전에 구출이 돼야 하는 것인데, 그 곳까지 자기가 갈 때 자기를 거들어 줄 사람들이 몇 명 없다는 사회 시스템 적으로도 그렇고, 왜 사람들이 더 자살을 많이 하는가, 이 사회가 그만큼 원색적이 됐기 때문에 그런 거죠. 더 잘하지 않으면 티도 안 나는 인생이고, 그러니까 서울에서의 삶만 생각해봐요. 집도 어디 1, 2억 가지고 구하겠냐고요. 빨리 그들이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게끔 사회적인 안전망이 있어야 되겠다."


'방송'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럴싸한 '해법'이 도출될 리 만무하고, 그저 두루뭉술하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밖에 공허히 날아다닐 수밖에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자기계발서의 오랜 지침을 반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럴듯한 말로 바꿔 표현했지만, 그건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동의어에 불과하다.



종교의 언어가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본질'을 바꾸는 데 일조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왜곡'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의 일상을 바꿔나가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지만 '왜곡의 언어'들은 '거기'에 머무른다. 정작 '청년의 지역'이라 불리는 이 사회를 바꾸는 데 시쳇말로 '1도 관심이 없다'


'흙수저'가 긍정적으로 살아본들, '속없는' 흙수저밖에 더 되겠는가? '금수저'와 흙수저'를 태생시킨 이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고통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고통으로 밥벌이를 하는 이른바 '멘토'들은 살 만한 세상이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멘토'에게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언어가 '기만'으로 가득찬 것인지, 윤태호의 것처럼 사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야 한다. 김규항은 "혜민이라는 중은 얼마 전 제 페이스북에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자기 중심이 없어서라느니 따위 이야기를 했다가 격렬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으로 큰돈을 벌고 유력한 문화자본가가 되었는데, 이또한 김난도의 것 못지 않게 기막한 책"이라고 꼬집는다.



"우리가 안갯속에 있으면 코앞도 무섭잖아요. 앞이 안 보이니까. 걱정을 모호하게 하다보면 모든 게 걱정거리가 되기 때문에 불안하고 이렇기 때문에, 실체를 확실하게 알고 나면 내가 가야할 길의 다리가 아무리 부러졌어도, 그 옆에 분명하게 내가 하나 건너갈 수 있는 길이 보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럴 때 그건 대비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정적인 감정은 방치하지 마시기를." (윤태호)


위로는 필요하다. <무한도전>과 같은 방송이 그 멤버들을 통해 시청자(를 비롯한 시민)에게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선물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유재석의 방송 분량에서 그 감동이 진하게 전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른바 (오글거리지만) '이 시대의 멘토'라고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돈을 벌)고 있는 이들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굳이 멘토 따위 필요도 없지만, 굳이 그것이 필요하다면 제대로 '선택'하자. 수박 겉핥기 식의 위로는 잠깐의 환각을 일으킬 뿐이다. '나의 문제'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당당히 말하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는 '나'를 넘어 '사회'의 것이라고. '나'만 벗어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벗어나야 해결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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