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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파일럿 대전의 승자 <미래일기>가 던진 묵직한 감동과 메시지

너의길을가라 2016. 2. 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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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한 자리에 둘러앉아 함께 TV를 시청(하는 환경이 강제되는)하는 명절 연휴는 '파일럿 프로그램'들의 '발표회(發表會)'와도 같다. 아니, 정규 편성을 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가름하는 생사(生死)의 갈림길 앞에 섰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연장(競演場)'이라는 표현이 좀더 적합할 것 같다. 너무 각박한가? 그렇다면 '기회의 장'이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지난 한 해 MBC 예능(을 넘어 예능계 전체)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일밤 - 복면가왕>,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출발은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이었고,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등에 업고 정규 편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영광을 잇기 위해 이번 설 연휴에도 수많은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야심하게 밥상을 준비했다. 과연 어떤 파일럿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MBC <듀엣가요제> 9.8%

MBC <미래일기> 7.8%

KBS 2TV <전국 아이돌 사돈의 팔촌 노래자랑> 6.9%

SBS <먹스타 총출동> 6.5%

KBS 2TV <우리는 형제입니다> 5.3%, 

MBC <이경규의 요리원정대> 5.3%

MBC <톡하는대로> 4.6%

SBS <나를 찾아줘> 2.5%


MBC <몰카배틀- 왕좌의 게임>처럼 아직(2월 9일 방송 예정)까지 방송을 하지 않은 야심작들이 있지만, 몰래카메라는 정규 편성으로 가기는 어려운 단발성 이벤트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위에 정리해 놓은 프로그램 중에서 '옥석'을 가려야만 하는데, 우선 방송사 간에 승자를 꼽자면 역시 '파일럿 부자'인 MBC가 '엄지 척'이었다. 



가수와 그의 팬인 시청자가 함께 콜라보 무대를 만드는 MBC <듀엣가요제>는 '또?'라는 반응을 뒤엎고 시청률 면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 우후죽순 생겨난 '음악 예능'에 대한 피로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음악 예능'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마땅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외에도 SBS <먹스타 총출동>, MBC <이경규의 요리원정대>는 2015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먹방'을 겨냥한 프로그램이었다. '적당한' 시청률을 거뒀지만, 정규 편성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오히려 '마지막으로 만난 건 2년 전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이었다'며 어색함과 불편함을 고백했던 유민상, 유운상 형제 출연한 KBC <우리는 형제입니다>가 화제를 끌었고, SNS를 바탕으로 '소통'과 '여행'을 잘 버무린 MBC <톡하는대로>가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설 연휴 파일럿 프로그램 간의 경쟁에서 진정한 승자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MBC <미래일기>를 선택할 것이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설정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예능에서 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이징 메이크업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시간도 단축되고 티도 거의 안 난다. 이번에 안정환 씨도 2시간 정도로 분장이 끝나더라. 출연자들 한 분은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이라고 하더라." (정윤정 PD)


<미래일기>는 타임워프(time warp)를 예능에 접목(椄木)시켜 시간 여행자가 된 연예인의 특별한 하루를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다. '역사적인' 첫 방송에 전직 축구선수이자 스포츠 해설가인 안정환과 '센 언니'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제시, 그리고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그야말로 팔방미인(八方美人))인 강성연 · 재즈 피아니스트 김가온 부부가 출연했다.


안정환은 39년 뒤인 80세의 자신을 마주했고, 제시는 엄마의 나이인 58세가 됐다. 강성연과 김가온 부부는 77세 동갑내기가 돼 결혼 40주년을 보냈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늙어버린 모습을 거울을 통해 확인하자마자 일순간 말을 잃어버렸다. 그것이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모습이건, 아니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이건 간에 '늙음'을 확인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한동을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생각했던 내가 상상했던 일흔일곱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너무 고생스러운 힘든 할머니의 모습이어서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었고, 한참을 보게 되더라고요." (강성연)


안정환은 백발이 된 머리에 주름이 잔뜩 생긴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한동안 그 어떤 말도 잇지 못했다. 손가락으로 얼굴을 만져보며 '늙음'에 적응하기 위해 애썼지만, 받아들이는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 부대낌은 '아름다움'에 더욱 민감한 여자 출연자가 더 심했을지 모른다. 58세라는 '젊은(?)' 나이로 분한 제시는 그 충격이 다소 덜했지만, 팔자주름이 깊에 팬 77세의 강성연은 낯선 자신의 얼굴이 믿겨지지 않는 눈치였다.


<미래일기>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건 출연자들에게 적합한 상황을 설정하는 능력이었다. 안정환에겐 '독거 노인'이라는 상황을 설정해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라든지 쓸쓸함을 잘 표현해냈고, 제시의 경우에는 엄마와 할머니를 함께 출연시켜 흥미를 더했다. 특히 늙어버린 제시가 더 늙어버린 엄마와 함께 공항에서 만나 서로를 보며 울컥했던 장면이라든지, 할머니가 늙어버린 딸을 알아버지 못하고 동년배 대하듯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웃음과 눈물을 함께 선물했다. 


노부부가 된 강선연과 김가온 부부는 서로의 늙은 모습을 바라보며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남편의 얼굴을 보며 강성연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김가온은 할머니가 된 아내에게 "자기는 정말 곱게 늙었다"며 "예쁘다"는 말을 끊임없이 건넸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담은 노부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들었다. 또, 서로 생의 마지막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이라든지, 신혼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노부부의 가슴 뭉클한 데이트 장면들은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적셨다. 



물론 '늙음'은 갑자기, 느닷없이, 닥치는 것이 아니지만, 언제나 '늙음'은 갑자기, 느닷없이, 닥치는 것이 아니던가. 물론 우리의 시간은 타임 워프처럼 '점프'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제시의 할머니가 자신의 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 자신의 늙어버린 모습을 바라보며 낯설어하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같이 나의 늙음을 목도하고, 확인하고, 체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일기>와 같은 경험은 오히려 절실하게 다가온다. 안정환은 "젊었을 때야 인기 많고, 돈 있고, 날고 기면 좋겠지만 나이 드니까 소용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잊혀지는 게 더 무섭다"며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강성연은 "돈으로 살 수 잇는 것들은 걱정하지 마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걱정하라"는 명언을 소개하며 우리가 삶에서 어떤 것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내일'만을 바라보며(사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 현실이지만)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미래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늙음'을 통해 지금 우리의 '젊음'을 이야기했다. 또, '노인'에 대한 세대를 초월한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우리도 언젠가는 노인이 되어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이미 우리는 조금씩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인 <미래일기>가 던진 메시지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웃음과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미래일기>는 정규 편성 가능성이 그 어떤 파일럿 프로그램보다 높다. 다만, 멤버를 구성해서 장기적으로 이끌어 갈 수 없다는 점은 약점이다. 매번 새로운 섭외를 통해 시청자들과 만나야 하는데, 이것을 '신선함'으로 유지시킬 수 있다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육아 예능'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까닭은 '아이들이 가진 천진난만함'이 주는 밝은 에너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노인'과 '늙음'이라는 주제는 다소 칙칙하고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그것은 때로 숙연함을 이끌어내지만, 우울함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전체적으로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했던 제시의 경우나 안정환이 초등학생과 축구를 하는 장면을 통해 웃음코드를 삽입한 것이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을 텐데, 정규 편성을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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