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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과 전원책 합류한 <썰전>, '사이다'의 향연이었다

너의길을가라 2016. 1. 1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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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깃거리로서 '정치'의 주요 고객(소비층)은 분명 '아저씨(중년 남성)'였다. 흔히 정치를 '명절 밥상의 반찬'이나 '술자리 안주'로 비유하지 않던가. 명절에 밥상머리에 앉아서 한가롭게 잡담이나 늘어놓을 여유가 '아저씨'에게나 허용될 것은 뻔한 일이고, 술자리에서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며 목소리 높여 쌈질을 하는 것도 죄다 '아저씨'들 아닌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9시(혹은 8시)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정치 뉴스를 스포츠 경기 보듯이 집중하며 보는 이도, 돋보기 안경을 귀에 걸치고 종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점령하고 있는 정치 기사에 몰입하는 이도 '아저씨'들이다. 이 묘사는 낯설지 않다. 오래되고 오래된 일이다. 정치의 주요 소비층이 '아저씨'로 국한된 것 말이다. 


정치라는 이야기를 생산하는 자들이 정치를 '아저씨'들만의 전유물(專有物)로 만든 것인지, 애당초 가장 '정치적'인 '아저씨'들이 '정치'에 몰입도가 높다는 사실을 캐치한 생산자들이 정치의 언어를 '아저씨'들의 것으로 조정한 것인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아저씨'들의 것이었던 '정치'가 그 고루(固陋)한 언어를 탈피하고 젊은이들의 품안으로 파고든 현상에 주목할 뿐이다. 



2013년 2월 21일 처음 전파를 탔던 JTBC 시사예능 <썰전>은 그 포문을 열었던 매우 의미있는 방송이다. 물론 그 시초(始初)적 성격을 띠는 건 단연 '팟캐스트(podcast)'였다. <썰전>은 'TV판 팟캐스트'였고, 팟캐스트가 안고 있는 매체적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 (종편이라는 제한 요소가 있었지만)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썰전>은 팟캐스트가 이뤄낸 '정치와 예능의 융합이자 콜라보'를 재현했다. '기존의 방송사들이 '눈치'를 보느라 쉬쉬했던 내용들까지 과감하게 건드리며 대중들을 만족시'켰다. 대충 흉내만 내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의 이름답게 '썰[舌]'로 전(戰)쟁을 치를 정도로 뜨거웠'다. 20~30대는 이 독한 시사예능에 열광했다. <썰전>은 한동안 그 뜨거움을 유지했고,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시사예능'이라는 새로운 시도에 나섰던 <썰전>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과 강용석 변호사의 공이었다. 김구라의 능숙한 진행도 빛을 발했지만, 기본적으로 <썰전>의 방송 포맷은 특정 주제에 대해 '좌우'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두 패널의 호흡은 프로그램의 성패를 결정할 만큼 중요했다. 


정치평론가로서 오랜 기간 단련된 이철희 소장은 뚜렷한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각종 사안(事案)들을 막힘없이 명쾌하게 풀어냈다. 또, 차분하고 논리적인 접근을 통해 시청자들을 설득했다. 한편, 정치권의 인맥을 동원한 치밀한 '뒷조사'와 예능감을 통해 방송의 흥미도를 유지하는 데 애썼던 강용석 변호사는 <썰전>을 제법 풍성하게 만들어냈다. 



물론 <썰전>의 전성기가 계속 유지됐던 것은 아니다. '독한 혀들의 전쟁'이라는 기획 단계의 초심은 어느 순간 연성화(軟性化)되기 시작했고, 정치 · 사회의 주요 이슈를 다뤘던 1부에 비해 예능계의 뒷담화를 캐는 2부의 비중이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썰전>에 대한 관심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했다. 어쩌면 그 이유는 '독한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대중들이 '한계 효용체감의 법칙'에 걸려든 탓일지도 모른다. 


프로그램이 침체기에 들어서자 <썰전> 제작진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국공신'을 도려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변화는 공교롭게도 예기치 않은 곳에서 시작됐다. '도도맘' 김미나 씨와의 불륜설로 부담을 느낀 강용석 변호사가 하차를 결정하면서 패널진의 변화가 일어났다. 강용석 변호사의 대타로 출연하게 된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는 강 변호사만큼의 예능감은 없었지만, '떼'가 아니라 '논리'로 무장한 보수의 사고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정치권의 계속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이철희 소장이 하차를 결정하고, 총선 출마를 앞두고 있는 이준석 대표도 프로그램을 그만두게 되면서 <썰전>의 패널진은 완전히 물갈이됐다. 그 빈자리에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가 섭외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SNS와 인터넷은 기대감으로 들끓었다. 두 사람이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MBC <100분 토론>을 비롯한 각종 토론회를 통해 그 진가를 마음껏 드러내지 않았던가.


전원책 변호사는 MBC 100분 토론에서 최우수 논객상(출연 횟수에 따라 상을 준 것 같기도 하지만)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시민 작가의 경우에는 최근 JTBC <뉴스룸> 신년특집 토론 4인 4색에 출연해 특유의 '사이다' 발언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기에 네티즌들의 관심은 더욱 크기만 했다. 무엇보다 유 작가의 경우에는 '글로는 진중권을 이길 사람이 없고, 말로는 유시민을 당할 이가 없다'는 전설 아닌 전설의 주인공이 아니던가.



지난 14일 유시민과 전원책 두 사람이 합류한 첫 방송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그야말로 저돌적인 성격으로 거침없는 발언을 아끼지 않는 전원책 변호사는 시종일관 공격 본능을 뽐냈다. 그는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고,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반면, 유시민은 온화한 미소로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수위를 넘나드는 전원책 변호사를 달래가며 토론을 이끌어가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적시적소에 던지는 영리함을 보였다.


첫 번째로 제시된 논제인 '북한의 수소폭탄'과 관련해 '대화'와 '제재'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뜨거운 논쟁을 벌였고, 다음으로 전개된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에 대한 토론에서는 전원책 변호사는 "기존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이 갔는데 그렇다면 새로운 정치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쓴소리를 쏟아냈고, 유시민 작가는 "정체성은 찾는 것이 아니라 형성하는 것이라며 조금 더 시간을 줘야 한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현실 정치와 거리가 있는 두 패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현장감'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치권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패널의 연령층이 이전에 비해 다소 올라간 점도 아쉽다. 생물학적인 나이가 사고의 나이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칫 '아저씨'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로 귀결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새로운 두 패널이 때로는 격렬하게 맞부딪치고, 때로는 유쾌한 예능감을 과시한 <썰전>은 149회는 유료방송가구 기준 3.3%의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148회 방송보다 0.8% 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김구라, 이철희, 김구라 체제에서 영광스러운 1기를 보냈던 <썰전>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고, 그 시작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그야말로 '사이다' 그 자체인 두 사람의 패널이 시청자들을 위해 '정치'를 대중적인 언어로 더욱 시원하게 소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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