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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 '국뽕'에 취하고, '군국주의' 냄새 물씬 나는 달콤한 멜로

너의길을가라 2016. 3. 2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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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태양의 후예>는 생사를 넘나드는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군인과 또 하나의 최전선에서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사랑을 그린 멜로 드라마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등 멜로가 줄 수 있는 '판타지'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내는 김은숙은 그 특유의 '오글거림'을 <태양의 후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아이와 노인과 미인은 보호해야 한다는 믿음,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고딩들을 보면 무섭긴 하지만 한 소리 할 수 있는 용기,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상식, 그래서 지켜지는 군인의 명예. 내가 생각하는 애국심은 그런 겁니다" (드라마 속 유시진 대위의 대사)


김은숙의 놀라운 장점은 '여성'들의 판타지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그것마저도 능수능란하게 표현해낸다는 점이다. 거기다 송중기와 송혜교, 두 주연배우는 김은숙이 창조해낸 (비현실적이지만 가장 판타스틱한) 캐릭터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녹여내면서 이른바 '신드롬'을 이끌어냈다. <태양의 후예>는 방송 첫 회만에 23.4%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8회는 28.8%로 '대박 드라마'의 기준인 30%에 육박하고 있다.



드라마 OST는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줄세우기'를 하고 있고, 드라마 상에 나온 의류와 화장품은 '완판'을 찍고 있다. 경제 효과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태양의 후예> 촬영지인 파주는 중국인들의 '관광지'로 유도될 예정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누적 조회수가 10억 건을 돌파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태양의 휴예>가 '한류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만큼 '대통령'까지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도' 잘 나가는 '것'에 '숟가락 얹기' 신공을 발휘했는데,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태양의 후예>가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해 해외관광객 유치에도 기여하고 있다"면서 문화 콘테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뭐, 여기까지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발언이다.



헌데 박 대통령은 여기에 한마디 덧붙여 "태양의 후예가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관을 확립하는 데에도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관을 확립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패턴이 아니던가? 그렇다. 지난 2014년 12월 개봉했던 <국제시장>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당시 박 대통령은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국가배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국제시장>이 담고 있는 '보수적 가치'를 부정할 순 없지만, 그 장면에서 윤제균 감독이 의미하고자 했던 것은 '국가주의 문화'에 대한 풍자였다.




이 '블랙 코미디'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것에 대해 '조소'가 잇따랐고, 결국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영화를 직접 본 것은 아니며 신문지상 등 언론에 많이 나와 이를 인용한 것"이라 솔직히 고백해야만 했다. (적어도 그 장면에 있어서만큼은) 불필요한 오해를 받았던 <국제시장>과는 달리 <태양의 후예>에 깔려 있는 세계관은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군국주의(軍國主義) :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국가의 중요한 목적으로 생각하여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의 사회 구조나 국민의 생활 양식을 전면적으로 군사력 강화에 종속시키는 체제나 입장


제국주의(帝國主義) : 군사적, 경제적으로 남의 나라 또는 후진 민족을 정복하여 큰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는 침략주의적 경향


태양의 후예, 왠지 군국주의 냄새가.. <한겨레>, 2016. 3. 10. 황진미

'국뽕'에 취한 태양의 후예 <한겨레>, 2016. 3. 12. 이승한



이미 <태양의 후예>와 관련해서 '군국주의', '제국주의'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대중문화 평론가 황진미는 <한겨레>에 실은 글에서 "드라마의 세계관과 미학을 살펴보면 심상치가 않다. 드라마가 전형적인 보수우파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며, 아제국주의의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의 설명을 인용해보도록 하자. 


드라마에서, 한국은 세계 곳곳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한다. 디엠제트의 긴장이 살아있는 분단국가지만, 아프가니스탄의 대테러 작전에서 미군과 연합작전을 펴고, 우르크라는 가상의 지역에 파병하였다. 한국의 대기업은 우르크에 태양광발전소를 건설 중이며, 산하 병원의 민간의료단을 파견하였다. 평화유지를 위해 파병된 한국군은 발전소와 노동자, 의료단을 지키는 임무를 맡는다. 현지 아이들은 한글이 적힌 헌옷을 입고, "기브미 초콜릿"을 외친다. 많이 보던 구도 아닌가. 드라마가 그리는 가상현실 속 한국은 미군의 하위 파트너로서 세계를 무대로 군사작전을 펼치며, 이러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국 자본이 전후재건과 의료지원을 명분으로 세계로 진출한다. 이것이 2003년 파병론자들이 취해 있던 아제국주의의 풍경이 아니고 무엇이랴.



여기에 유시진이 강모연을 돌려세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키는 장면이나 날아가는 헬리콥터에 전원이 도열해 경례를 하는 장면은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국가관을 확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경례'라고 하는 '유형의 물질과 의식'이 '애국심'을 구성한다는 믿는 보수우파의 논리가 더할나위 없이 충족된다.


황진미는 한국과 중국 시청자들이 <태양의 후예>에 열광하는 현상에 대해 "제국주의 경험이 없지만 21세기 패권국가로 도약하려는 중국의 무의식과 식민지 경험과 분단의 현실에도 아제국주의를 꿈꾸는 한국의 무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이 드라마가 일본에서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면 어땠을까?



한편, 황진미의 고민에 더해 티브이 칼럼니스트 이승한은 <태양의 후예>가 '미군에 뒤지지 않는 한국군이란 판타지'를 그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종차별적인 언어를 구사(실제로는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하는 '덩치 큰' 미군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유시진 대위를 통해 '비록 체구가 작아도 미군에게 밀리지 않는 실력을 지닌 한국군에 대한 자부심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의 특수부대 수준에 대한 자부심을 채우기 위해 '타국의 군대 수준을 터무니없이 깎아내'리고 있는데, 이런 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열등감'뿐이라 꼬집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스스로 '2등 신민'이 되기 위해 악착같이 애를 썼던 당대의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 않은가? 



<태양의 후예>에서 상당히 불쾌했던 장면 중의 하나는 강모연이 먹을 게 없어 쇠붙이를 빨고 있는 가상의 국가 '우르크'의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건네는 장면이었다. 나중에 이 장면은 '수은 중독'으로 연결되기도 했지만, 사실상 한국전쟁 직후의 씁쓸한 풍경이라 할 수 있는 '기브 미 쪼코렛'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이승한은 "한국인의 콤플렉스를 가상의 국가를 동원해 그에 대한 우위를 픽션으로 꾸며내는 것을 통해 초극하려 하는 행위, 보통 이런 걸 우리는 '자위라고 부른"다며 통렬히 비판한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현실에서의 개선이 아닌 픽션을 통한 정신 승리,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 더 나아갔음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자를 호출해 비교함으로써 우위를 확인하며 안도하는 천박함, 수치스러웠던 기억을 윤색하는 도피를 통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은 위험한 징조"라면서 '파시스트의 세계관'을 언급한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쳤다.


"파시스트의 세계관이 예술적이라는 얘기는, 그들이 현실과 허구를 마구 넘나든다는 뜻에서다. 물론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대중으로 하여금 허구를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태양의 후예>를 둘러싼 논란은 드라마의 열성 지지자들에 의해 매번 묵살되기 일쑤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 되받아치기 십상이다. 그것이 그리도 간단한 문제라면, 과거 일제를 비롯해서 군사정권 하에서 스크린을 비롯한 온갖 매체에 대한 '검열'이 왜 있었겠는가? 외면당하고 핀잔을 듣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태양의 후예>가 담고 있는 이상야릇한 세계관, 그 위험한 세계관에 대해 지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안에 담겨 있는, 그리고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시선들을 인지하고, 그 문제점들을 이해한 채 드라마의 '재미'를 즐길 필요가 있다. 이제 소위 '국뽕('국가'와 '히로뽕'을 합친 신조어로, 과도한 민족주의나 애국주의를 조롱하는 표현)을 자각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채 '송송커플'의 달달한 멜로를 즐기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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