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버드 감독의 수작이다. 미래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다" (폴 매카트니)
폴 매카트니가 극찬을 쏟아낸 <투모로우랜드>는 꿈과 희망이 살아 숨쉬는 이야기를 통해 특유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왔던 디즈니의 문법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반복되는 주제의식, 공식 같은 패턴들은 고루(固陋)하고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쩔 수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우린 때가 잔뜩 묻어버린 '어른'들이니까.
하지만 <겨울왕국>이 그랬던 것처럼, <투모로루랜드>는 보고 난 '어른'들은 문득 깨닫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주입'당했다고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세계를 견인해왔고, 또 앞으로도 꾸역꾸역 이끌어 갈 힘의 원천은 바로 '꿈과 희망',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라며 어린 시절 자신을 찾아보게 된다면 이 영화는 제 몫을 100%한 셈이다.
<투모로우랜드>를 놀이기구에 비유하자면,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높이 87m에서 시속 100km로 2.5초만에 낙하하는 '자이로드롭'이나 세계 최고의 낙하 각도(77도)를 자랑하는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의 짜릿함에는 훨씬 못 미치고, 느긋하고 안락하게 돌아가는 회전목마보다는 스릴 있는 수준이라고 할까? 다시 말하자면, 어른들이 보기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고, 아이들이 보기엔 조금 난해하다.
영화 속에는 지구 온난화, 각종 자연재해, 인간의 탐욕과 금융 위기, 정부에 대한 불신, 시위와 폭동 등 어둡기만 한 상황들이 제시된다. 이렇듯 인류의 위기와 종말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투모로우랜드>는 그 제목만큼이나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가슴 속의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호기심 많은 십대 소녀 케이시(브릿 로버트슨)와 케이시와 같은 존재를 찾아내는 '모집자' 역할을 맡은 소녀의 모습을 한 로봇 아테나(라피 캐시디)가 있다.
일부 영화 평론가들은 이 지점에 착안해서 <매드맥스>와 마찬가지로 <투모로우랜드>도 지구의 미래를 '여성성(女姓性)'에 맡기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투모로우랜드>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맞다. 케이시와 아테나의 활약이 프랭크(조지 클루니)에 비해 훨씬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여성성'을 포착했다기보다는 '소년(녀)성'에 집중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천재 과학자 프랭크가 좌절한 채 은둔하고 있을 때, 그의 닫힌 생각을 바꾸는 힘의 원천은 케이시의 무한한 낙관성이었다. 그건 '여성성'에서부터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소년(녀)성'을 잃지 않은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다. 어린 시절의 프랭크와 애뜻한 감정을 공유했던 로봇인 아테나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디즈니가 '로봇'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프랭크와아테나와 애틋한 감정을 공유한 사인데, 프랭크는 아테나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흥미로운 것은 로봇인 아테나 역시 프랭크로부터 '0과 1'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또, 영화의 후반부에 아테나는 '꿈을 가진 사람끼리 협력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남기면서 이 말은 프로그램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채피>에서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인공지능 로봇 '채피'는 '사고'의 단계를 넘어 '느낄' 줄 안다. 이는 인공지능의 최후 단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프랭크를 향한 아테나의 마지막 고백은 마치 인간과 로봇의 정체성을 구분짓는 시대가 언젠가는 종결될 것이라는 예언처럼 들린다.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서 디즈니는 입을 닫는다. 디즈니는 오로지 '꿈과 희망', '긍정적인 생각', 낙천적인 태도'를 말할 뿐이니까. 디즈니에 매료된 동심들에겐 비밀이지만, 세상에는 적당한 비관론자의 존재도 필요한 법이다.
다시 말하지만 <투모로우랜드>는 어른들이 보기엔 유치할 수 있는 동심을 위한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고 티켓팅을 하길 바란다. 아무래도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데다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다보니까) 차근차근 설명하는 방식이라 지루할 수 있다. 영화를 감싸고 있는 특유의 낙천적인 정서가 강하게 드러나다보니 자연스레 긴장감도 많이 빠졌다. 차라리 런닝타임을 10분만 줄였다면 어땠을까? 제작비(1억 9,000만 달러)에 비해 오프닝 스코어(3,297만 달러)가 저조한 까닭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버락킴의 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성학교>, 소녀들이 들려주는 식민지 조선의 아픔 (1) | 2015.06.27 |
---|---|
형사와 도사의 콤비? 소신으로 뭉친 <극비수사> (4) | 2015.06.21 |
하드보일드 멜로 <무뢰한>이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사랑 그리고 '무뢰한' (7) | 2015.05.29 |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지구의 미래는 여성성에 달렸다 (10) | 2015.05.21 |
악(惡)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악의 연대기>를 펼쳐보라 (1) | 2015.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