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형사와 도사의 콤비? 소신으로 뭉친 <극비수사>

너의길을가라 2015. 6. 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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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刑事)와 도사(道士)의 콤비네이션?


언뜻 납득하기 어렵다. 두 번 생각해도 이상하다. 코미디 영화도 아닌 정극에서 이처럼 파격적인 조합을 선보일 수 있었던 까닭은 '실화'에 바탕을 둔 시나리오 덕분이다. <극비수사>는 1978년 부산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유괴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라는 자막은 관객들에게 감히 반발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감을 안긴다.


또, 이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하나'로 이끄는 원동력은 바로 '소신(所信)'이다. <끝까지 간다>의 고건수(이성균), <악의 연대기>의 최창식(손현주)와 마찬가지로 <극비수사>의 형사 공길용도 적당한 세상과 타협하는 인물이다.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경찰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관할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괴 사건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다 아내에게 '우리 애가 유괴됐어도 그럴 거냐'고 타박을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유괴 사건을 본격적으로 맡게 되면서 공길용은 변화한다. 유괴가 장기화되자 이미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범죄자를 잡는 쪽으로 수사의 방향을 튼 서울 수사팀과 자신들의 공적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느라 수사를 망쳐버리는 부산 형사팀과 달리 공길용은 '아이의 생사'에만 매달린다. "야! 이 더러운 새끼들아! 네 자식들이 유괴 돼도 그따구로 할끼가!"라고 일갈하는 그에게서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한편, 도사 김중산은 사주풀이를 통해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면서 '물의 기운을 갖고 있는 공길용 형사의 사주여야만 아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길용이 유괴 사건을 맡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이 모두 '포기'를 말할 때,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공길용의 뒤에서 힘을 불어넣으며 수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범인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33일 동안 그 하루하루를 넘기는데 옆에서 안보면 절대 모른다. 32일을 그 집에서 자면서 가족들을 지켜보면서 느낀 심정을. 수사관을 하면서, 경찰을 하면서 이 애를 찾을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 라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애가 살아있다는 소리에 정신이 없었지. 애가 살아있다는 얘기를 듣고" (김중산)


흔히 돈을 밝히는 '돈사'로 희화화되기 십상인 '도사' 혹은 '무속인' 캐릭터가 <극비수사>에서는 김중산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그것도 희극 연기의 달인이라는 유해진의 진중한 연기를 통해서 말이다.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스승을 비롯해서 '돈사'가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비록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만의 소신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는 김중산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준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영화인 <극비수사>이지만, 후반부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길린다. 힘있게 몰아가던 중반과는 달리 후반부는 다소 잔잔하게 흘러간다. 일부 관객들은 '후반부에서 힘이 빠진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극비수사>가 굳이 '유괴범 찾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붇지 않고, 공길용과 김중산의 고민 그리고 두 사람의 단단한 관계에 집중한 것은 오히려 돋보이는 선택이다.


부산 형사팀에게 모든 공을 빼앗기고, 자신의 승진과 동료의 징계와 맞바꾼 공길용과 스승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김중산이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장면들, 특히 두 가족이 함께 만나 냇가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은 '해피엔딩'의 진수를 보여준다. 어쩌면 <극비수사>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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