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하드보일드 멜로 <무뢰한>이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사랑 그리고 '무뢰한'

너의길을가라 2015. 5. 2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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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공식 초청돼 화제를 모았던 <무뢰한>은 상처 입은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담은 하드보일드 멜로 영화다.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의 각본을 쓰고, <킬리만자로>의 연출을 맡았던 오승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박찬욱 감독이 기획자로 참여했다. 무엇보다 배우 전도연이 출연한다는 것 자체로 기대를 한껏 모았다.



"이정재 선배님이 <무뢰한>에서 하차한다는 기사를 보고 내가 먼저 시나리오를 구해달라고 해서 봤다"


전도연과 김남길의 조합은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당초 남자 주인공으로 낙점되어 있던 이정재가 영화 <빅매치> 액션 훈련 도중에 어깨 부상을 입으면서 하차해야 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김남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나리오를 구했던 모양이다. 이미 드라마 <나쁜 남자>와 <상어> 등에서 진한 눈빛 연기를 선보인 적 있었던 김남길이었지만, 세월의 무게가 쌓인 탓인지 훨씬 더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혜경이요? 스스로 선택하는 삶이 아닌, 선택 당한 삶을 살아온 여자 같아요. 처음으로 이 여자가 선택하고 싶어진 남자가 재곤이 아닐까 생각했죠"


남성이 중심이 되는 '누아르'를 전복(顚覆)시킨 것이 <차이나타운>이라면, <무뢰한>은 기존 누아르의 틀을 마음껏 흔들어놓는다. 변주(變奏)의 맛이 있다. 온통 남자투성이인 이 영화에서 전도연은 오롯이 빛난다. 굳이 누아르가 아니더라도 남성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대다수의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대상화된 '객체'로 남는다. 하지만 <무뢰한>의 김혜경은 다르다. 자신의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한다.



"상처 위에 상처, 더러운 기억 위에 또 더러운 기억"


범인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형사인 재곤은 같은 이유로 살인범의 애인인 혜경에게 접근한다. 집 앞에서 잠복을 하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본 순간, '상처 위에 상처, 더러운 기억 속에 또 더러운 기억'을 쌓아가며 살아가는 자신과 닮아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모른 척 하려고 하지만 그 처절한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랑 같이 살면 안 될까?"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다니기에 급급한 애인(박준길)을 기다리는 혜경은 돈을 마련해달라는 요구에도 순순히 응한다. 겉으로는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술집 여자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녀는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는 재곤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나랑 같이 살면 안 될까?"라고 묻는 재곤에게 흔들리고, "진심이냐"고 묻는 그녀의 눈빛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무뢰한(無賴漢)

- 일정한 직업이 없이 돌아다니며 불량한 짓을 하는 사람

- 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일정한 소속이나 직업이 없이 불량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


'무뢰한'의 사전적 의미는 '양아치' 혹은 '깡패'와 동의어 수준이지만, 오승욱 감독이 영화 속에서 표현한 '무뢰한'은 '자기가 쟁취해야 하는 목표나,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행동이 있을 때, 선과 악의 개념 없이 어느 방향으로든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자면, '상처받은 연약하고 외로운 인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뢰한> 속에는 여러 명의 '무뢰한'들이 등장한다. 두 주인공, 거짓이라도 믿고 싶은 여자 김혜경(전도연)과 진심을 숨긴 형사 정재곤(김남길)이 그러하다. 또, 사랑을 빙자해 김혜경을 등쳐먹는 살인자 박준길,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한 없이 강한 척 하는 민영기(김민재), 정재곤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는 찌질하고 비열한 경찰 문기범(곽도원)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무뢰한이 될 수 있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의도치 않게 무뢰한이 되기도 한다"는 전도연의 말처럼, 영화 <무뢰한>은 '무뢰한'이라는 존재가 우리와 멀찌감치 떨어진 남다른 존재가 아니라, '나'를 제외한 '타인'을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라는 것을 거침없이 까발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bnt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남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가 무뢰한인 것 같아요. 요즘은 SNS를 통해서 자신의 의견들을 잘 피력하지만,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는 막상 숨잖아요. 바르고 깨끗한 사람인줄 알지만 결국 아니라는 거죠. 극중에서 제가 소변을 보고 냄새를 맡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 신을 보면서 많은 기분을 느끼실 거라 생각해요"


'하드보일드 멜로'라는 다소 무거운 타이틀 아래 인간의 밑바닥 감정들을 긁어모은 <무뢰한>은 날 것 그대로의 사랑을 보여주는 한편, 관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함께 던지고 있다. "당신은 혹시 누군가에게 '무뢰한'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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