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타델의 지배자 임모탄을 숭배하는 워보이 눅스(니콜라스 홀트)는 임모탄의 여인들을 데리고 도망친 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을 추격하는 차 안에서 이렇게 외친다. '멋지군, 끝내주는 날이야!'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2시간의 런닝타임 동안 관객들은 아마 눅스의 외침을 마음 속으로 계속해서 반복하지 않았을까? "멋지군, 끝내주는 날(영화)야!" 그렇다. 한마디로 'mad' 그 자체다.
2015년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시리즈 물인데, 3편에 이어 4편이 만들어지기까지 무려 30년이 걸렸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높은 기대를 받아왔다. 제작진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후반 작업만 3~4년이나 공을 들였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완성된 이번 작품은 그야말로 수작(秀作)이다.
"세상이 멸망하면서 누가 미친 건지 알 수 없어졌다. 나인지 이 세상인지.."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핵전쟁으로 지구가 초토화된 22세기, 두 가지 생명수인 물과 기름을 장악한 임모탄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매드맥스 3>를 기준으로 본다면 그로부터 45년 뒤의 세계를 다룬다. 사막을 떠돌던 맥스(톰 하디)는 임모탄의 부하들에게 납치돼 워보이에게 피를 공급하는 '피 주머니' 신세가 된다. '사람'의 존재가 '피 주머니'에 불과한 세상이라니!
임모탄과 민중(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당해보인다)들의 절대적(까지는 아니지만)인 지지를 받고 있는 사령관 퓨리오사는 임모탄의 여인(아내)들과 함께 탈출을 시도한다. 황량하고 황폐한 사막이 전부인 시타텔과는 전혀 다른 녹색의 땅인 어머니의 땅을 찾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분노한 임모탄은 부하들을 모두 이끌고 추격을 시작하고, 맥스가 퓨리오사를 돕게 되면서 영화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추격전이 펼쳐지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 영화는 추격 스토리다. 사막을 가로질러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을 말로 쓰기는 쉽지 않다.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 훨씬 쉽다." (조지 밀러)
퓨리오사가 운전하는 트럭인 워 리그(War Rig)에서부터 과거의 군악대를 연상시키는 두프 왜건(Doof Wagon)과 고슴도치를 떠올리게 하는 버자드(Buzzard)까지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는 그야말로 모든 종류의 차(오토바이의 활용도도 높다)가 등장한다. 조지 밀러의 말처럼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추격 스토리'이고,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압도적인 '카체이싱'을 선보인다. 그것도 2시간 동안, 끊임없이.
헤비메탈의 강렬한 전기기타 소리(특히 광기에 젖은 기타리스트의 연주는 가히 'mad'하다)와 흥분을 고취하는 드럼 소리, 시작과 동시에 이미 절정에 다다른 음악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추격전의 효과를 더욱 배가시킨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의 속도감 '쩌는' 자동차 추격전은 흔히 봐왔던 도심에서의 그것이 아니라 모래 폭풍 속의 사막, 넓고 무한한 그러면서도 죽음과 맞닿아 있는 공간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생명을 상징하는, 여인들을 사수하기 위해 펼쳐지는 트럭을 활용한 공성전(攻城戰) 개념의 액션도 흥미롭고, 장대를 활용해 트럭 안의 여인들을 낚아채는 발상도 감독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창의적인 장면들이 영화 내내 눈에 띈다. 놀라운 것은 그것들이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고, 영화 속에 절묘하게 녹아들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영화 속의 세계나 인물들의 캐릭터가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지 밀러 감독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매드맥스4'는 훌륭한 페미니스트 영화가 됐다" (샤를리즈 테론)
2시간 동안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아닌지 의심을 들 정도의 격정적인 추격전이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의 큰 줄기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정도'에서 그치는 영화가 결코 아니다.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그 안에 많은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으므로 영화가 끝난 후에야 '갸웃'거리게 되는데, 그건 어째서 이 영화의 제목이 '매드 퓨리오사'가 아니냐는 의문 때문이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퓨리오사의 존재감은 맥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히려 매드는 퓨리오사의 '협조'하는 역할, 다시 말해 보조적인 역할에 그친다. 그건 바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가 '여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여성들의 연대'를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전쟁으로 인해 멸망의 길에 접어든 22세기에도 여전히 지구는 '남성 중심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남성 중심적 세계관은 전쟁, 폭력, 학살, 지배, 복종 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임모탄은 워보이들을 통해 도시를 지배하고, 물리적 힘이 약한 여성들을 그저 아이를 낳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멍청한 남성들은 그 끔찍하게 생긴 임모탄이 '천국으로 자신들을 인도할 것'이라 굳게 믿고 충성을 다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죽음마저 불사하지 않고 목숨을 던진다.
이러한 남성주의적 세계관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주체가 남성(매드)이 아니라 여성(퓨리오사)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함께 탈출을 시도한 여인들과 어머니의 땅에서 만나게 되는 윗세대 여성들과의 만남, 그 공고한 '연대'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남성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에 있다고 강변한다. 영화 후반부에 눅스가 여성을 통해 임모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희생'을 깨닫게 된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필자이지만,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만큼은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한번으로는 도저히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볼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버락킴의 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투모로우랜드>가 말하는 지구의 미래? 이번에는 동심(童心)이다 (3) | 2015.06.04 |
---|---|
하드보일드 멜로 <무뢰한>이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사랑 그리고 '무뢰한' (7) | 2015.05.29 |
악(惡)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악의 연대기>를 펼쳐보라 (1) | 2015.05.15 |
여성 캐릭터의 누아르를 개척한 <차이나타운>, 아쉽게도 분위기만 남았다 (12) | 2015.05.04 |
구태의연한 고민과 식상한 해법, 실망스러운 <어벤져스2> (8) | 2015.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