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하다.
SBS의 새 월화 드라마 <조작>에 대한 첫인상은 '어중간하다'는 것이었다. 분명 가슴 뛰는 주제와 흥미로운 소재를 갖추고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몰입'이 되지 않았다.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도 충분히 기대감을 불러 일으킬 만큼 매력적이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드라마의 톤은 전반적으로 산만했고, 두서가 없어 보였다. 더욱 심각했던 건, 기존의 여러 작품들이 '짜깁기' 됐다는 인상마저 풍겼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고, 안타까웠다.
한마디로 무엇 하나 특별하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재료'들을 가지고 평범하다 못해 맛없는 요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원인은 무엇일까. 대답은 오히려 쉽게 발견됐다. 그건 아무래도 역설적으로 '재료'에 대한 과신이 아니었을까. <추적자>, <펀치>, <피노키오>, <피고인>, <귓속말> 등 SBS 사회극은 불패 신화를 이어오고 있던 터라 '사회 부조리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라는 주제가 일정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반드시 사로잡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1회부터 '성완종 리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을 전면 배치하면서 현실과의 접점을 높였다. 극중에서 민영호 C&C 회장(김종수)이 자신이 돈을 건넨 유력 인사들의 리스트를 남긴 후 숨진 채 발견된 장면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신이 로비를 벌였던 정계 인사들의 목록을 남긴 채 자살했던 사건과 판박이였다. 다수의 시청자들은 '어? 저거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잖아!'라며 반가워(?) 했을 것이다. 제작진은 분명 이와 같은 설정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초장부터 사로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조작>의 '진짜' 비장의 무기는 따로 있었다.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환호성을 불러일으킬 만큼 출중한 내공을 지닌 배우들이다. KBS2 <김과장>에서 열연을 펼치며 '믿고 보는 배우'로 등극한 남궁민의 존재는 드라마의 가장 큰 버팀목이었으리라. 그뿐이 아니다. 연기파 배우인 유준상과 엄지원, 그리고 8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 문성근도 무게감을 더했다. 자신의 공백을 '저럼한 세력이 만든 불행한 일'이라 규정한 그의 한마디는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더욱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뜨거운 기대와 관심은 다행스럽게도 높은 시청률로 돌아왔다. <조작>은 1회 11.6%, 2회 12.6%, 3회 10.5%, 4회 12.5%를 기록하며 경쟁작인 MBC <왕은 사랑한다> (7.2%), KBS2 <학교 2017> (4.1%), tvN <하백의 신부> (3.465%)를 압도했다. 하지만 이 경쟁의 승리는 '꿀잼'의 결과라기보다는 '볼 게 없어서..'에서 기인한 것이라 봐야 할 듯 싶다. 드라마의 '만듦새'로 얻어낸 성취라기보다는 '재료'들의 기대치로 얻어낸 착시라고 보는 게 정확한 평가다. 물론 경쟁작들의 부진은 <조작>의 앞길에 탄탄대로를 열어주겠지만 말이다.
<조작>은 '거대 언론에 맞서 사회 부조리에 대한 현실을 파헤치는 기자들의 치열한 삶을 담은 드라마'이다. 기자들의 세계, '언론'을 주무대로 삼아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고,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적폐'를 청산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기획 의도에서 밝힌 "진실을 좇고 '제대로' 취재하는 기자가 여전히 세상에 존재한다는 희망. '제대로 된' 기자는 여전히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안내하는 훌륭한 조타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 말이다.
물론 그와 같은 주제와 소재는 매력적이었지만, '정의'를 기점으로 선과 악을 칼로 무자르듯 (지나치게) 선명히 갈라버린 구도는 너무 뻔하게 다가온다. 스스로를 '기레기'라 자처하는 한무영(남궁민), <대한일보> 소속의 정의로운 기자 이석민(유준상) 그리고 '선을 넘은' 검사 권소라(엄지원)가 연대해 '어르신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적폐들과 한통속인 구태원(문성근) '대한일보' 상무와 대결하는 것이 뻔히 그려지는데 그 과정과 결과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구도와 캐릭터가 단조롭다보니 배우들의 연기도 평면적이다. 캐릭터를 해석할 여지가 없다보니 자연스레 배우들의 고민도 줄어들었다. 유준상과 엄지원은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평이한 연기에 그치고 있고, 문성근의 아우라도 생각만큼 발산되지 않는 듯 하다. 특히 남궁민은 '기레기로 위장취업한 김 과장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전작의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한 연기로 고전하는 분위기다. 대놓고 웃겨도 되는 <김과장>과는 달리 적당한 무게감이 뒷받침돼야 할 <조작>에서 약간 겉도는 느낌이랄까.
'하늘은 어찌하여 이 주유를 세상에 내고도 제갈량을 내셨단 말인가'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조작>에 대한 아쉬움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었다. 바로 tvN <비밀의 숲>이다. 연출, 대본, 연기 등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와 비슷한 뉘앙스의 드라마는 철저히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다. <비밀의 숲>의 경우에는 선과 악을 섣불리 규정하지 않는 인간 내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견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물 설정과 묘사에 심혈을 기울인 티가 팍팍 난다. 반면, <조작>은 세밀함과 깊이가 한참 뒤쳐진다.
어쩌면 <조작> 제작진은 그것이 케이블과 지상파의 차이라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선과 악이 명쾌하게 갈려 응원하고자 하는 대상에 확실히 감정 이입이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배우들의 연기도 더욱 '오버'스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밀의 숲>의 경우처럼 작가(이수연)를 검사 출신으로 착각할 정도의 현실감 있는 설정과 묘사에 이르지 못한 건 어찌할 생각일까. 왠지 모르게 어설프고 장난스러워 보이는 건 한없이 진지할 수만은 없었던 지상파의 한계란 말인가.
어찌됐든 <조작>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방송 첫 주에 동시간대 1위라는 든든한 전리품을 얻었으니, 5회부터는 좀더 안정감을 갖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 있을까. 전형적이라는 평가를 뒤집고, 긴장감 있고 몰입도 높은 이야기를 펼쳐보일 수 있을까. 첫 주에 받았던 이 '애매함'에 대한 결론은 다음주가 돼면 결론이 날 것 같다. <조작>을 계속 시청해야 할지, 미련을 버려야 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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