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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영은수의 죽음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너의길을가라 2017. 7. 2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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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검사(신혜선)
가 죽었다. "선배님, 지금 시간 되세요? 잠깐 뵀으면 해서요." 윤세원 과장(이규형)의 오른쪽 어깨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김가영(박유나)이 말했던 '07'의 비밀을 알아 챈 영은수 검사는 황시목 검사(조승우)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라진 김가영에 정신이 팔린 황시목은 영은수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리고 김가영의 집에서 세 번째 희생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황시목은 황급하게 김가영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현장에 도착한 황시목은 시신을 덮고 있는 흰 천을 들춰 세 번째 희생자의 얼굴을 확인한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싸늘한 시신은 바로 영 검사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아니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전개였다. 시청자들의 섣부른 추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수연 작가는 과감한 진행을 선보였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영은수의 죽음'이라는 파격적인 수를 던진 이수연 작가에게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라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엇이 이윤범을 두렵게 했습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저 주시죠."

"평생 소명이라고 생각한 일이기 때문에 가족들 힘들게 했어. 내 식구들한테 해준 게 없어. 소명이고 일이고 다 사라졌어."


이수연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영은수의 죽음'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조그룹 이윤범 회장(이경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영일재(이호재) 전 장관을 움직이려면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가족'을 무너뜨러야 했을 테니까.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하고 아끼는 딸의 죽음이야말로 '침묵'하고 있는 영일재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을 게다. 만약 영은수가 부상을 입는 정도에서 그쳤다면, 영일재의 두려움은 더욱 커졌을 테고 침묵은 한층 깊어졌을 것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나락으로 떨어진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영은수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쥐고, 그 힘으로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재벌 회장과 그와 결탁한 권력 기관들의 추잡한 모습들. 부패와 비리라는 더러운 껍질이 표면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지만, 그 권력의 힘은 날이 갈수록 공고해지기만 한다. '진실'에 한걸음씩 다가서려 했던 사람들은 영 검사처럼 죽임을 당하거나

됐다.  

 

 


"왜 보고만 있었습니까! 왜 싸우지 않으셨습니까? 왜 그 긴 시간을 숨어만 있었습니까? 법을 무기로 싸우라면서요? 정작 본인은 뭐하고 있었습니까? 그게 가족을 위해서였습니까? 본인이 두려우셨던 게 아니라?"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영전한 이창준(유재명)이 영 검사의 장례식장을 찾아오자 영일재는 "네 놈이, 감히 여길! 나가, 이놈아! 네가 내 딸을 죽였어"라며 화를 쏟아낸다. 이때 황시목은 오히려 영일재를 향해 일갈한다. 별다른 감정 표현 없이 덤덤한 모습만을 보여줬던 황시목의 분노라 더욱 강렬하게 뜨겁게 다가왔다. "왜 보고만 있었습니까! 왜 싸우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따져묻는 황시목의 항변에 영일재는 고개를 숙일 뿐이다. 저 악귀와도 같은 이윤범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진실을 향한 발걸음은 어느 한 사람이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정한 누군가의 침묵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일재에게는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묵으로 일관하며 딸을 만류한다. 그렇게 하면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영은수는 멈추지 않고 '진실'을 향한 자신만의 싸움을 계속한다. 직접적으로 영은수를 살해한 건 윤 과장과 그를 사주한 이윤범 세력이겠으나, 한편으로는 '침묵'과 '방조'로써 이 거대한 '비밀의 숲'이 유지되는 데 일조한 영일재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닐까. 

 


'영은수의 죽음'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예상 범위를 뛰어넘는 전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죽음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이다. 영은수의 죽음은 기실 그의 아버지 영일재의 업보였음을 깨닫는다. 눈앞의 불의와 싸우지 않고 회피하려 했던 영일재의 두려움과 비겁함이 결국 자신의 후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의는 더욱 커지고 강력해진다는 점이다. 뒤늦은 싸움은 더 많은 희생을 가져올 뿐이다. 


비록 우리가 모두 황시목이나 영은수처럼 검사가 아닐지라도, 그래서 법을 무기로 저들과 싸울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싸워나가면 될 일이다. 우리 앞에 놓인 짐을 다음 세대로 넘기지 말자. 우리는 싸워야 하고, 그 최고의 적기는 바로 '오늘', 지금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영은수를 만들어 내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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