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유치한 영화 <메이즈 러너>가 던지는 결코 유치하지 않은 질문

너의길을가라 2014. 9. 2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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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사라진 초원에는 다소 작지만 빠른 '치타'나 '표범' 같은 육식 동물이 위세를 떨치기 마련이다. 대작 영화가 잠시 자취를 감춘 영화 시장에서 박스오프스 1위는 20일 26만, 7,865명의 관객을 동원한 <메이즈 러너>가 차지했다. 참고로 누적관객은 누적 48만 2,178명이다. '다양성 영화'라는 다소 기괴한 수식어가 붙은 <비긴 어게인>은 2위를 기록했고, 힘이 빠진 <타자-신의 손>은 그 뒤를 이어 3위다.


<메이즈 러너>는 제임스 대시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내용은 제목 그대로 '미로를 달리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미로 탈출을 담은 1부와 바깥 세상에서의 이야기가 그려진 2, 3부까지 출간된 상태이고, <메이즈 러너>는 소설 1부를 영화화한 것이다. 다소 김빠지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메이즈 러너>는 앞으로 시리즈로 제작될 것으로 보인다.



'글레이드'라고 이름 붙여진 공간이 있다. 위압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대한 벽으로 사방이 가로막혀 있고, 아침마다 열리는 문밖에는 매일 밤마다 살아 움직이는 미로로 가득하다. 게다가 밤이면 '그리드'라고 하는 괴물이 나타나 끔찍한 울음소리를 낸다. 30일마다 한 명씩 새로운 소년이 생필품과 함께 정체불명의 엘리베이터를 통해 운반되어진다. 기억이 모두 삭제된 채 말이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소년들은 공존을 위해 '집단'을 구성했고, '룰'을 만들었다. 삶의 터전을 일구는 한편 탈출하기 위해 미로를 달리고 또 달릴 '러너'를 뽑아 지도를 완성해간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가 등장한다. 기존의 소년들과는 무언가 다른 그의 등장으로 '글레이드'에 변화의 조짐이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났을 때, 이번에는 처음으로 트리사(카야 스코델라리오)라는 여자아이가 운반되고,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쪽지에는 자신이 글레이드로 보내질 마지막 사람이며, 움식과 물을 비롯한 생필품의 공급이 중단될 것이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이제 소년들은 극단의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토마스와 트리사의 등장은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면서 살아온 소년들에게 변화를 강요했다. 과연 그 변화가 가져올 결과는 무엇일까? 그들은 미로를 탈출할 수 있을까?


<메이즈 러너>의 간단한 줄거리를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표현해봤다. 역시 미로와 소년의 조합은 꽤나 흥미롭다. 그렇다고 해서 <메이즈 러너>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SF라는 장르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경향이 있을 뿐더러,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메이즈 러너>를 구성하고 있는 스토리의 뼈대를 짚어보자. '미로 속에 갇힌 소년들' 당장 드는 의문은 '그들을 가둔 건 누구일까?'라는 것이다. <올드보이>식으로 하면 '왜 그들을 가둔 것일까?'가 될 것이다. 어쨌든 핵심은 '미로'다. <메이즈 러너>가 관객들을 설득하려면, 이 부분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 다음 의문은 '왜 소년이어야만 했는가?'이다. 성인 남성이 아니라 아직 미성숙한 소년이어야만 하는 이유 말이다. 징그러운(?) 성인 남성이 아닌 소년들이 등장함으로써 불안감과 두려움을 비롯한 각종 감정들이 투명하게 드러났고, 관객들의 입장에서 이들이 겪게 되는 갈등과 반목을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메이즈 러너>가 소년들의 성장 드라마라는 것과 그 뒤에 '어른'들의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결국 <메이즈 러너>의 성패는 모든 스릴러 영화가 그러하듯이,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거대한 높이와 방대한 사이즈의 미로가 중는 압도적인 느낌과 미로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액션신이 충족시켜주는 짜릿함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역시 설득에 실패한다면 그저 유치찬라한 영화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메이즈 러너>가 관객들이 품을 법한 의문들에 제대로 대답을 하고 있는지는 영화를 직접 보고 평가를 해볼 것을 권한다. 다소 치사할 수 있지만, 뒷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만 알려두겠다.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와는 별개이지만, 미로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인 '글레이드'는 이중적인 의미에 대해 잠깐 언급해보도록 하자.


소년들은 미로를 탈출하기 위해 3년동안 온갖 방법을 다 시도했다. 물론 그 노력들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그들은 미로를 푸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체 능력이 뛰어나고 용감한 소년들을 '러너'로 뽑아 매일마다 미로를 달리며 지도를 완성해간다. 그처럼 소년들에게 '글레이드'는 탈출하고 싶은 공간이자, 한편으로는 '집단'과 '룰'이 갖춰진 안락한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후반부에 토마스를 비롯한 일부의 소년들이 미로를 탈출하기 위해 '글레이드'를 떠나고자 할 때, 갤리를 비롯한 몇몇 소년들은 '우리는 미로를 탈출할 수 없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라고 외치며 남기로 선택한다.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를 가두고 있는 이 시스템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꼼짝없이 갇혀버린 미로 속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공포와 불안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락과 평온을 느끼기도 한다. 익숙해져 가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시도를 멈춘다. 그저 형식적인 제스처만 취할 뿐, 실제로는 '이대로'를 읊조리는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미로는 위험하다. 괴물이 언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목숨을 건 탈출인가, 아니면 영원히 갇혀 살아갈 것인가? 이렇게 물어보자. 당신은 '갇힌 자'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가? '갇힌 자'의 숙명은 탈출하는 것인가, 그 안에 머무는 것인가?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메이즈 러너>는 다소 유치한 SF 영화일 수 있지만, 그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코 유치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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